단기간내 미해결시 600~650 박스권 장세

2002년 12월30일. 폐장일의 증시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장이 시작된 직후 잠시 주춤하던 종합주가지수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기 시작한 것. 시장참여자들이 ‘어라’ 하는 사이에 무려 30포인트 이상 밀리며 620선을 위협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패닉’이라고밖에 형용하기 어려운 투매가 이어졌다.그러나 오후 들어 반발매수세가 유입되면서 가까스로 620선을 지지, 627.55를 기록하며 2002년 증시의 문을 닫았다. 전 거래일에 비해 29.37포인트(4.47%)나 떨어진 셈이다.증시전문가들은 이날 증시폭락의 원인을 ‘북한 핵문제’로 풀이했다. 북한 핵문제에서 촉발된 불안심리가 이날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폐장일로는 사상 최대의 하락률을 기록하는 실망감 속에 마감됐다는 분석이다.물론 북한 핵문제만이 이날 증시의 폭락을 야기한 요인은 아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 핵문제가, 그것도 수급이 취약한 연말에 한꺼번에 몰렸다는 측면이 이날의 투매양상을 불러온 복합요인으로 지목됐다.통상적으로 현금수요가 많은 연말에는 증시자금이 현금화돼 나가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날은 한동안 순매수를 보여 왔던 외국인마저 ‘팔자’ 공세에 나서 지수하락을 더욱 부추겼다.조홍래 동원증권 리서치센터장(부사장)은 “다른 요인도 증시하락에 반영됐겠지만, 최근의 증시 약세는 95% 이상이 북한 핵문제라는 요인에 의해 좌우됐다”고 분석한다. 당초 한ㆍ미ㆍ일 공조를 통해 신속히 매듭지어질 것으로 판단됐던 북핵 긴장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있는 점이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다는 설명이다.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미국이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북핵문제가 단기간에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주식시장은 당분간 지수 600~650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장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처럼 북핵문제는 그 실마리가 잡히기 전까지 우리 증시의 관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북한은 지난 93~94년에도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핵을 협상무기로 삼았었다. 따라서 그당시 주가움직임이 지금의 투자결정에도 어느 정도 유효한 참고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라는 다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93~94년의 양상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증시전문가들은 “이번 대북 악재의 경우는 장세 반영도에 지나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처음 부각됐던 93~94년에 비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것이다.93년 3월12일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하루 하락(2.0%)한 뒤 곧바로 반등했다. 또 94년 6월14일, 이른바 ‘불바다 발언’이 나왔을 때 3일 동안 3.3% 하락한 뒤 재반등했다. (그림 참조)반면 지난 12월 말에는 5일에 걸쳐 무려 11.5%가 하락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의 과잉반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93년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던 시점은 주가가 바닥을 다지던 시기였다. 그후 반등과 조정을 거쳐 700대 중반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93년 6월11일, 북한이 NPT 탈퇴를 유보했을 때는 오히려 둔감하게 반응했다. 이 같은 호재가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세로 이어졌다.그러다가 93년 후반, 800선을 돌파하는 랠리가 나타났고 94년 6월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온 뒤 지루한 장세를 연출하다가 재상승, 10월의 제네바합의를 전후로 1,000고지를 돌파하는 급등장세를 보였다.증시전문가들은 북핵문제로 인한 긴장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각국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보조를 맞추기 어려운데다 전개방향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전망에서다.김승식 삼성증권 연구원은 “북핵문제의 재발원인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비타협적인 강경 일변도 외교정책과 남한을 볼모로 한 북한의 모험주의 외교정책에서 비롯됐다”며 “미국이 이라크전 이후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 최소한 올해 상반기 내내 우리 증시를 압박하는 주된 외생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설령 북한 핵문제가 조기 타결되더라도 우리 증시가 상승에너지를 다시 결집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전과 북핵문제 등 심리적 요인에 펀더멘털 측면도 양호하지 않아 당분간 시장반전은 어렵다는 시각이다. 더구나 우리 증시의 에너지충전을 위해서는 미국 주식시장의 반등이 관건이나 최근 미국 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반면 임송학 교보증권 팀장은 “북한 핵문제와 새정부 탄생에 대한 정책적 리스크가 최근의 주가하락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같은 우려는 지난 12월 말의 지수하락에 거의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문제가 예상외로 일찍 가닥이 잡힐 경우 증시자금의 연초 환류 속성에 맞물려 꼬인 수급의 가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연초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북한 핵문제가 93~94년처럼 지루한 양상을 재연할지, 아니면 발빠른 타결로 상승기대감을 이끌어낼지 투자자들에게는 기다림과 판단의 시간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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