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는 달걀노른자와 식용유가 주성분인 가공식품이다. 샐러드를 만드는 데 필수 재료이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만 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꼽히지 않는다. 현대 성인병의 주원인인 콜레스테롤과 지방함유량이 높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식탁에서 푸대접을 받는 일도 잦아졌다.하지만 마요네즈 하나로 창업의 씨앗을 뿌린 후 이를 발판으로 식품업계의 강자로 발돋움한 데 이어 지금도 변함없이 재계와 소비자들로부터 초우량회사로 평가받는 기업이 일본에 있다. 마요네즈 시장의 간판기업인 ‘큐피’가 그 업체다.지난 1925년 마요네즈를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이 회사의 역사는 일본 마요네즈 식문화의 변천사 그 자체다. 마요네즈라는 서구식 먹거리 보급에 앞장서 온 이 회사의 마요네즈 시장 점유율은 현재 가정용에서 70%를 달리고 있으며 업무용을 포함한다 해도 60%를 넘는다. 마요네즈를 생산하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개별회사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아예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큐피가 일본 국민들의 식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는지는 이 회사가 원료로 사용하는 달걀소비량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큐피는 2001년 한 해 동안 15만7,000t의 마요네즈를 생산했다. 이를 위해 40억개, 20만t의 달걀을 사용했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약 1억4,000만마리의 닭이 사육되고 있으며 이 닭들의 90%가 매일 달걀을 하 나씩 낳는다.일본 전체인구(약 1억2,600만명)와 비슷한 수의 달걀이 매일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60만t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말하자면 큐피 1개사가 사용하는 달걀의 양은 일본 전체소비량의 8%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마요네즈 시장의 절대강자 기업이지만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이 큐피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달걀소비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큐피가 창업 후 근 80년을 먹거리 사업 하나와 씨름하면서 축적한 노하우와 정신, 그리고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변신 노력이야말로 성공의 교본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이들은 주목하고 있다.성장의 젖줄은 철저한 수직계열화우선 큐피가 성장의 젖줄로 활용한 다각화 기법은 철저한 수직계열화다. 옆으로 벌리는 ‘횡적 확대’가 아니라 밑으로 내려간 ‘같은 우물 파기’다. 이 회사는 마요네즈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토대로 달걀 관련 사업, 이를테면 달걀가공품 판매와 달걀을 이용한 화장품 원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드레싱, 식초 등의 제조ㆍ판매를 통해 익힌 기술과 안목을 활용하기 위해 샐러드ㆍ야채 사업을 시작했다.통조림, 레토르트식품 사업도 전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샐러드ㆍ드레싱 사업을 하면서 채소를 많이 다루다 보니 여기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01년 매출을 기준으로 할 경우 큐피의 사업부문별 비중은 마요네즈, 드레싱이 38%로 가장 큰 돈줄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달걀 및 달걀가공품 28%, 통조림, 레토르트식품 19%, 야채ㆍ샐러드 9% 등으로 나타나 완벽한 본업 중심의 수직적 사업구조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각 사업부문과 업무기능을 섣불리 외부에 맡기거나 떼어내지 않고 자사의 노하우와 실력에만 의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전형적 사례라고 큐피의 성장전략을 재삼 주목하고 있다. 일류 전자ㆍ전기메이커들도 공장을 따로 두지 않고 전문업체에 위탁생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큐피의 마이웨이식 경영은 독창적 기업 컬러로 대접받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그러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큐피의 또 다른 저력은 불문율처럼 굳어진 품질 최우선주의와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고집스럽고도 집요한 노력에 있다. 품질에 대한 이 회사의 신념을 보여주는 본보기는 마요네즈 제조과정이다. 마요네즈의 주원료인 달걀은 보관도 어렵거니와 한 번 깨어지면 부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따라서 신선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가공기술과 설비가 필수다.이 회사의 각 공장에는 독자 개발한 달걀 깨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상자에 담겨 운반된 달걀을 기계가 하나씩 집어 껍질을 위에서 아래로 깨면 알맹이는 밑에 장치된 컵으로 떨어지고 여기서 자동으로 기울어지면서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된다.기계는 1분에 600개의 속도로 달걀을 분쇄해 다음 공정으로 넘기며 노른자와 흰자는 자동적으로 파이프를 통해 각기 다른 곳에 모이게 된다. 큐피는 모아진 노른자를 마요네즈에 사용하고 흰자를 제빵회사 등에 판매한다. 속도도 속도지만 재료가 신선함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히 나누어지니 고품질의 마요네즈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종업원 체험교육 통해 품질향상달걀처리 노하우는 기계에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외식업체 등에서 ‘3분 달걀’의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큐피의 삶은 계란은 생산과정에서 엄밀한 선도검사를 거친다. 삶는 공정에 들어가기 전 달걀들은 전용 라인을 거치면서 작은 막대기로 표면의 접촉검사를 받는다. 두드릴 때 나는 소리는 센서를 통해 수집되며 그 자리에서 불량품은 자동으로 솎아내도록 돼 있다. 따라서 유통과정에서 부패하기 쉬운, 금이 간 달걀들은 큐피의 검사기계를 아예 통과할 수 없다.하지만 큐피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고품질이 기계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큐피는 기계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다시 말해 종업원들의 마음가짐과 숙련도 향상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공장에 따라 다르지만 약 2,400명에 달하는 이 회사 종업원들의 60% 이상은 비정규직인 파트타이머들이다. 자동화가 갈수록 확대 보급되면서 현장 종업원들에 대한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생산라인의 중심을 이루는 인력이 파트타이머들이라고 해서 이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소홀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각 공정을 맡고 있는 종업원들은 ‘왜, 어떻게, 목적은…’ 등의 사고를 수없이 자발적으로 반복하도록 훈련을 받고 있다. 회사는 연수기간 중 파트타이머들에게도 연구실의 현미경을 들여다보게 해 식중독을 일으키는 각종 균들의 형태를 직접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왜 가열하는가 그 필요성을 스스로 판단하고 깨닫게 하기 위한 조치임은 물론이다.지난 2001년 11월 결산에서 2.604억엔의 매출을 올린 큐피는 2002년 매출이 거의 전년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서도 118억엔의 경상이익을 내 사상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마요네즈의 경우 일본 최강의 생활용품메이커 ‘가오’가 최근 저콜레스테롤 제품을 내놓고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는 등 큐피 브랜드가 마켓셰어 1위를 달리는 분야는 일본시장에서 모두 14개에 달하고 있다.큐피의 품질경쟁력은 ‘신선도 관리 시스템’으로 불리는 자체 정보기술(IT) 시스템에 힘입어 지난해 더욱 강해졌다. 이 회사의 제품재고일수는 마요네즈의 경우 3~6일, 2,800개 전 품목은 평균 12일 전후로 1997년의 23일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재고일수 단축으로 소비자들이 더욱 신선한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일선 판매점들의 결품 사례가 크게 줄어 불필요한 손실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오야마 고스케 큐피 사장은 자신의 품질철학에 대해 “식품회사는 가정주부를 대신해 먹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주부가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와 함께 “어떤 시대이건 강한 기업의 조건은 창업정신과 혁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단언하고 있다.마요네즈회사의 경영자이지만 처음 간판을 올릴 때의 각오와 다짐을 곱씹으면서 시대변화를 선도한 기업만이 강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