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없는 달러박스 전시산업 고속 질주

석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28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 대한민국 섬유대전 ‘프리뷰 인 서울 2002’(Preview in SEOUL 2002)의 개막행사가 끝나자마자 전시장은 바이어와 참가업체간의 상담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국내외 180개 업체가 참가해 사흘 동안 이어진 전시회에는 1,700여명에 달하는 해외바이어가 찾았고, 총 13억3,000만달러의 상담과 4억2,000만달러의 계약이 이뤄졌다.일주일 후인 11월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는 서울국제농업기계박람회(SIEMSTA)가 개막됐다. 이 박람회에도 첫날부터 해외바이어를 비롯한 국내외 관람객이 몰렸다. 16개국에서 323개 업체가 참가한 이 박람회에 6일 동안 하루 평균 400여명의 바이어가 다녀갔다. 상담ㆍ계약실적은 총 4,000만달러 상당.서울국제농업기계박람회가 끝난 다음날인 11월14일 부산에서는 2002부산국제신발ㆍ섬유전시회(BIFOT)의 막이 올랐다. 17일까지 계속된 이 전시회에는 12개국 292개사가 참가했으며 해외바이어 500명을 포함, 연인원 25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참가업체들은 전시회 기간에 모두 1억3,000만달러 상당의 수출상담ㆍ계약 실적을 올렸다.지난 2002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이 같은 산업전시회가 모두 316회나 개최됐다. 보통 1개의 전시회가 평균 사흘 가량 계속되므로 1년 내내 전국에서 매일 2~3개의 전시회가 열린 셈이다. 이는 2000년 181회, 2001년의 226회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지난해 316회 개최… 대형화ㆍ국제화도 진전이 같은 성장배경에는 꾸준한 경제회복과 IT를 비롯한 몇몇 리딩산업의 세계적 도약이 있었다. 또 국내 전시공간의 지속적인 확충도 큰 힘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코엑스 이외에 변변한 전시공간이 없었지만 최근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와 대구전시컨벤션센터(EXCO DAEGU)가 잇달아 문을 열었고, 아시아 최대의 한국국제전시장(KINTEX) 등 각 지자체 주도하에 전시공간이 크게 늘어났다.국내 전시산업의 성장은 양적인 부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한국 전시산업의 메카인 코엑스(COEX)는 연이은 경사로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하나는 코엑스가 주최하는 한국 국제공장 자동화종합전(KOFA)과 서울국제농업기계박람회(SIEMSTA),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HOTO/DIGITAL IMAGING) 등 3개 전시회가 국내 처음으로 UFI(국제전시협회) 인증을 따냈으며, 다른 하나는 오는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KOFA를 중국과 공동 개최하기로 함으로써 처음으로 전시산업을 수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UFI 인증이란 해외업체 참가율 20% 이상, 해외참관객 비율 40% 이상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한 것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시회임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또 KOFA를 중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의 전시회도 컴덱스(COMDEX)나 세빗(CeBIT)처럼 세계적인 전시회로 자랄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를 지닌다.전시산업은 이 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굴뚝 없는 달러박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모두 17억5,000만달러의 상담ㆍ계약이 이뤄진 ‘프리뷰 인 서울 2002’의 경우 주최측인 섬유산업연합회와 대구시가 이 행사를 위해 들인 돈은 고작 9억원(약 87만달러)에 불과했다. 국내업체가 해외로 나가지 않고 바이어를 국내에 불러들여 수십억달러의 수출 증대 효과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의 전반적인 흐름 파악을 통해 국내 관련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보이지 않는 성과도 거둔 셈이다.전시회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프리뷰 인 서울 2002’ 행사기간 중 내한한 1,700여명의 해외바이어는 대한항공 등 항공업계를 비롯, 전시장 인근의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의 숙박업계, 음식점, 선물용품점 등의 수입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호텔신라 관계자는 “해외바이어가 1,000명 이상 내방하는 국제전시회가 열리면 삼성동 인근의 호텔은 물론 도심에 있는 호텔까지 특수를 누린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한국관광공사 분석에 따르면 전시회 등 국제행사 참석자들이 국내에 머무르는 기간은 평균 6.4일, 지출경비는 2,700달러로 일반관광객의 체류기간 4.9일, 지출경비 1,400달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수출ㆍ산업발전 촉진 외에 숙박 등 부대효과도정확한 분석자료가 나와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300여개의 전시회가 창출한 직간접 시장규모가 1조5,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전시주최자나 참가업체, 관람객들의 직접지출비만 7,000억~8,000억원에 이른다.교통ㆍ숙박ㆍ관광 등 간접시장 이외에 고용ㆍ생산증대 등에 따르는 경제파급 효과까지 합치면 수조원대 규모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전시회를 비롯한 국제행사에 외국인 한 명이 참가할 경우 승용차 0.2대, 텔레비전 5.97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그러나 국내에서 개최되는 모든 전시회가 ‘프리뷰 인 서울 2002’ 등과 같은 대규모 국제전시회는 아니다. 20여년 역사의 국내 전시산업은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했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가장 많이 지적되는 점이 유사 전시회의 중복과 영세 전시회의 난립이다. 전시기획사인 E사의 한 관계자는 “돈이 된다 싶은 전시회에는 금세 여러 개의 유사전시회가 난립, 제 살 깎기 경쟁을 벌인다”고 말했다. 국내에 60여개의 전시기획사가 있으나 대부분 직원이 10명 미만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전문가들 “문제점 많지만 앞날은 밝아”이 같은 영세성과 경쟁격화는 전시산업의 성장에 필수적인 대형화, 국제화에 걸림돌이 돼 왔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전시회 가운데 참가업체수가 400개를 넘는 전시회는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최근 코엑스가 3개 전시회에 대해 UFI 인증을 획득했지만 전시회 역사가 우리보다 짧은 중국의 경우 UFI 인증 전시회가 20개를 넘는다.전시공간의 부족문제는 부산전시컨벤션센터 등 각 지자체가 주도하는 전시장 건립이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 하지만 전시회가 숙박, 쇼핑, 관광 등 배후산업의 발전 정도와 입지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점과 아직 많은 참가업체와 참관객들이 서울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전시공간의 공급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코엑스의 경우 전시장 가동률이 75% 안팎으로 양호하지만 지방 전시장들은 10~30%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한국 전시산업의 앞날이 매우 밝다는 데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림대 전시학과 황희곤 교수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2위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전시산업이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과 육성의지, 관련기관이나 단체, 업계 등의 노력에 달렸다는 것이다.전시산업진흥회 김돈유 부장은 “전시ㆍ컨벤션 선진국인 독일은 연간 850여회의 박람회를 통해 90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이탈리아 밀라노 등도 박람회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며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전시회를 산업인프라이자 동시에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어 앞날이 밝다”고 밝혔다.돋보기 / 황희곤 한림대 교수 / 전시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제언대형화·국제화 위한 정책지원 서둘러야우리나라 전시산업은 연간 300회 이상 개최될 정도로 커졌고, 일부 대형화, 국제화가 이뤄졌으나 대부분의 전시회는 소규모다. 또 해외업체 및 바이어의 참가가 저조하여 실제 내용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전시회 주최사의 규모가 영세하고, 참가업체도 전시회 참가를 마케팅 수단으로 인식하기보다 단순 홍보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전시회 고유의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최근 대규모의 전시장을 건립함으로써 고질적인 전시장 공급면적 부족문제는 해소되고 있으나 실제 전시회 내용 및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최근 세계전시산업은 마케팅 수단일 뿐만 아니라 21세기형 고부가가치, 무공해 산업으로 인식돼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전시산업 선발국인 홍콩, 싱가포르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에서도 적극적인 육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후발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치열한 경쟁상태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이처럼 전시산업의 육성이 시급한 우리나라로서는,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전시회의 대형화, 국제화를 조속히 달성해 나가야 한다.아직 국제규모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전시회 주최자로서는 전시회 참가업체와 참관객의 편의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하며 해외전문전시업체와의 제휴 등 협력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전시회에 대한 해외광고 및 홍보활성화로 국내 전시회의 대외성가 제고는 물론 참가업체나 참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전시장(Venue) 운영자나 전시장치업체도 각 전시장의 특색 있는 이미지 정립을 위해 아이디어 창출과 서비스 관리에 획기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정부는 국내 전시회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 및 세제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연간 250억원 이상의 자금이 지원되고 있지만 국내 전시산업에 대한 지원은 아직 50억원대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유사ㆍ중복 전시회의 난립에 대해서는 동시개최, 공동주최 등을 유도함으로써 전시회의 대형화, 전문화를 촉진시켜 나가야 한다. 필요시에는 전시주최자나 서비스제공업체간의 협력 및 합병노력도 따라야 한다.지역별로는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를 육성함으로써 지역경제 발전과 전시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 전시산업진흥회에서는 연내 전시회인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인데 이를 통해 전시회 참가업체나 전시회 주최자로 하여금 귀중한 마케팅자료로 활용하고, 국내 전시회의 국제화를 앞당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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