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소프트웨어 ‘난공불락’

‘대리·차장·부장’ 직급 폐지 … 글로벌 145개 지사 중 10위권

2001년 말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 ‘오라클9i’를 출시하면서 제품명에 한 단어를 덧붙였다. 다름 아닌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당시 래리 엘리슨 회장은 오라클이 구축한 DB를 뚫는 해커에게는 100만달러의 포상을 하겠다고 장담까지 하고 나섰다.당시 수많은 해커들이 덤벼들었지만 성공한 사람이 없었고, 이는 오라클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후로 지금까지 오라클 DB 제품에는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화재나 폭파와 같은 대형재해가 발생해도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고, 보안인증을 14개나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DB 제품 중의 하나가 됐다.사내교육 학점제로 인사고과에 반영한국오라클은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회사인 오라클의 한국지사다. 다국적 IT기업답게 독특한 사내문화를 자랑한다. 그중에 하나가 오라클에는 사장, 팀장, 본부장 등을 제외한 직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리, 차장, 부장 등의 직급을 모두 없애버려 직원들은 모두가 ‘선배’나 ‘선생’으로 통한다.이교현 기업홍보팀장은 “직급이 없는 만큼 내부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소통이 원활하다”며 “신입사원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렇게 잘 뚫린 커뮤니케이션으로 현재 사내 동호회만 20개 이상 결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내에 총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다. 신입직원들은 입사하자마자 컴퓨터나 비품은커녕 책상도 없는 그야말로 ‘제로’의 상태에서 시작한다. 필요한 사무집기는 모두 본사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해 주문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컴퓨터가 고장이 나도 마찬가지다.해당사원이 직접 본사 담당자에게 문제점을 알리면 네트워크에 연결된 담당자가 현지에서 원격조정으로 고쳐준다. 이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사가 전세계 150개국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센터를 본사 단일시스템으로 전환한 데 기인한다. 전세계 4만2,000여명의 사원이 매일 자신의 활동내용과 요구사항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보고하는 ‘일일 결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오라클은 스파르타식의 교육과정으로도 유명하다. 직원들은 담당업무 관련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분기마다 5~6개의 과정을 수강해야 한다. 모두 학점제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점 취득이 인사고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직원들은 교육비, 체력단련비 등으로 연간 170만원을 사용할 수 있다.지난 89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금까지 국내 기업에 필요한 e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해 국내 정보화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창립한 지 10년 만에 국내 최대 ERP업체로 떠올랐고, 지난 2001년에는 세계 최대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젝트인 포스코 통합ERP를 예상기간보다 3개월이나 앞당겨 구축해 화제를 모았다.지난해도 KT, 코오롱그룹, 오뚜기, 동양화학그룹 등 다수의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했으며, 현재 국내 6,000개에 달하는 기업을 주고객사로 두고 있다. 97년에는 국내 소프트웨어업체 중 최초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2,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여 왔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울산, 광주에 사무소가 있으며 총직원수는 810명이다.홍보활동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들이 많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적극 펼치고 있다. 국내 IT관련 대학교수 등이 주축이 된 ‘오라클 아카데미 이니시어티브’(OAI)와 회원수 10만명이 넘는 ‘오라클 사용자 모임’(OTN)이 대표적 지원단체다. OTN을 지원하기 위해 사내 e마케팅팀에 전담인원을 두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 신제품의 출시 전에 모든 OTN 회원들에게 신제품의 샘플을 보내 사용해 본 소감을 참고한다.기업용 메일시스템으로 MS에 도전장전세계 오라클에서 한국오라클의 위상도 높다. 매출액 비중으로 전세계 145개 오라클 지사 중 10위권. 한국을 배우고 싶다는 타 지역 직원들을 위해 잇달아 글로벌회의를 주선하는가 하면 모바일 솔루션을 개발하는 연구소도 한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이팀장은 “본사에서 국내 모바일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판단한다”며 “본사와의 핫라인을 통해 개발 진행상황을 주고받는다”고 밝혔다.오라클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기업이다.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시가총액을 따지면 국내 상장기업을 모두 합친 규모와 비슷하다.오라클이 공급하는 제품으로는 먼저 e비즈니스를 위한 DB ‘오라클9i’와 웹미들웨어인 ‘오라클9i 애플리케이션 서버’가 있다. 또 ERP, 전략적 기업경영(SEM),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솔루션 등을 하나로 통합한 ‘e비즈니스 스위트’도 주력제품 중 하나다.최근에는 기업용 협업 소프트웨어인 ‘오라클 콜래보레이션 스위트’를 선보이며 기존 마이크로소프트의 ‘MS익스체인지’가 주도하고 있는 기업용 메일시스템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 제품은 e메일, 화상회의, 팩스, 캘린더, 문서검색 등으로 구성된 통합형 기업 업무지원 프로그램.마크 자비스 오라클 마케팅 총괄 수석부사장은 “e메일뿐만 아니라 음성사서함, 팩스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전화나 웹브라우저로 이들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며 “기업이 모든 자료를 하나의 저장소에서 관리할 수 있어 엄청난 비용절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오라클은 미국 경제지 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갑부에 매년 5위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인 엘리슨 회장의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입양아 출신으로 대학을 중퇴한 그는 77년 친구들과 함께 DB 프로그램을 만드는 벤처회사를 창립해 지금의 오라클로 일궈냈다. 소련 전투기 미그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비행기에 빠져 있으며 1억달러를 들여 16세기 일본 마을을 본떠 만든 대저택에 살고 있다.Interview / 윤문석 한국오라클 사장“토털 e비즈니스솔루션 제공에 주력”“국내 기업들이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e트랜스포메이션은 필수적입니다. 인건비나 설비투자에서 비용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윤문석 한국오라클 사장이 강조하는 e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변신’으로도 불리며 기업이 e비즈니스를 실행하면서 각종 제도와 조직을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 맞게 고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즉 기업이 IT라는 인프라를 이용해 고객관리, 물류망 구축, 조직 재구성 등을 재구축하는 ‘변신’을 의미한다.윤사장은 여기서 오라클의 역할을 ‘수도꼭지 이론’으로 설명한다. 즉 정보를 물로 비유할 때 물이 저수지에서 수도꼭지까지 이르는 과정을 오라클이 담당한다는 것. “물은 저수지를 빠져 나가면서 여러 과정을 거쳐 각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전달됩니다. 정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일반인들에게 제공되기까지의 과정을 오라클이 담당하고 있습니다.”윤사장이 이끄는 한국오라클은 2001년 ‘닷컴 거품’이 빠질 때도 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존 고객사들의 유지ㆍ보수로 꾸준히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앞으로 그는 한국오라클이 개별 솔루션 공급보다 기업의 비즈니스 현안에 주안점을 둔 종합적인 e비즈니스 컨설팅과 토털 솔루션 제공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포털 및 무선인터넷 솔루션 분야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요구에 맞는 제품, 솔루션 및 서비스도 제공한다.최근 국내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중소ERP업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이다.“지금은 서로가 시장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서로가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싼 가격에 공급해 같이 공존할 수 있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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