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적 접근’ 한목소리… 실제론 ‘물밑접전’

후보지 거론 지역 유치전략 마련 분주, 고속철도 분기역 둘러싸고 ‘신경전’ 치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지역의 이해관계로 풀어선 안된다. 미래의 한국을 위해 충청권은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하지만 교통여건, 기반시설, 수도 이전비용, 용지 등을 감안하면 우리 지역이 새 행정수도로 최적지다.”요즘 충청권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범충청권의 대승적 접근’이 중론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개별 지자체마다 행정수도 유치를 위한 전략 짜기에 여념이 없는 것. 충청남도 한 지자체 공무원은 “충청권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공식화된 마당에 욕심이 나지 않을 지자체가 어디 있겠느냐. 다만 경쟁이 과열되면 보기에 좋지 않고 여러 부작용도 예상돼 드러내 놓고 유치전을 펴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우리 지역이 최적지’ 줄다리기 시작실제로 충청권 지자체들은 대선 이후 일제히 행정수도 유치 전략 짜기에 나선 상태다. 천안시처럼 대외발표 등을 통해 활발하게 유치의사를 개진하는 경우도 있고 대전광역시처럼 행정구역 내 유치보다 ‘배후도시’로서 기능을 강조하는 ‘우회전략’을 펴는 곳도 있다.천안시는 최근 시의회와 외부 용역기관 등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 적지는 천안’임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천안시의회의 경우 지난 1월16일 “이전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뛰어난 환경ㆍ입지조건을 지닌 천안지역이 최적지”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 대통령직 인수위에 전달하기로 했다.또 능률협회 매니지먼트가 천안시에 제출한 ‘천안발전종합계획’ 내용을 인용, “토지이용계획과 국토의 공간적 중심성으로 볼 때 행정수도로 적지”라고 발표했다. 이전 후보지 가운데 장기 발전계획을 통해 행정수도 수용 전략을 제시한 곳은 천안시가 처음이다.대전광역시는 기초지자체와 달리 충남, 충북과 행보를 맞추는 모습. 염홍철 시장은 “대전ㆍ충청권 모두의 대승적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기본입장을 견지하면서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행정수도유치추진기획단을 구성해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대전발전연구원에 ‘행정수도 입지가 대전에 미치는 영향 및 효과분석’을 의뢰하는 한편 매일 이와 관련한 회의를 개최하는 등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대전시는 행정수도를 행정구역 내에 유치하는 것보다 인근지역에 유치, 배후도시로서 이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천안시와 같은 생활권인 아산시도 최근 행정수도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아직 행정수도 이전의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입지여건으로 볼 때 아산신도시가 적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아산시는 지난 1월17일 기존의 충남도청 유치추진위원회 활동범위를 행정수도 유치 추진까지 넓히는 비공식모임을 가졌다.논산시도 기존의 도청유치추진위원회 활동범위를 행정수도 유치로 확대하고 기획담당관실을 중심으로 유치안 검토작업을 시작했다.호남고속철 분기역 유치전은 ‘전초전’한편 충청권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호남고속철도 중부권 분기역 유치경쟁을 두고 ‘행정수도 유치전’의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부고속철도에서 호남고속철도로 갈라지는 분기역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둘러싼 지자체간 접전은 수년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분기역 유치를 원하는 지자체가 천안시, 오송지구, 대전광역시로 압축돼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와 일치한다.당초 건설교통부안은 대전광역시를 분기역으로 삼아 익산까지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것. 그러나 지난해 초 건교부 용역결과 천안시를 분기역으로 해 공주~익산을 연결하는 게 낫다는 발표가 있었다.발표 직후 대전광역시는 즉각 반발, 대전발전연구원 등을 통해 활발한 유치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1월21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호남고속철도 대전분기 정책 세미나’를 열어 당위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이재욱 대전광역시 공보관은 “분기역 설치는 지역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유치경쟁이 치열하다”며 “기존의 고속철도노선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6조원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대전 분기역이 최적안”이라고 주장했다.충북 오송지구 역시 중앙일간지 등에 광고를 싣는 등 분기역 유치에 열심이다. 반면 건교부 용역결과에 따라 ‘최적지’로 1차 선택된 천안시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 천안시의 한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지 결정에 교통요인의 비중이 큰 만큼 이전 후보지로서는 분기역 유치를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히고 “고속철도 경부선과 호남선이 동시에 지나는 분기역을 유치하는 것은 행정수도 유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돋보기 / 대전·충청권 광역단체장 회동“지역별 유치경쟁 자제하자”지난 1월17일 오후 4시20분. ‘제11차 대전·충청권 행정협의회’가 열린 충청북도 도청 2층 소회의실에 염홍철 대전시장과 이원종 충북지사, 심대평 충남지사가 나란히 들어섰다.공식적인 참석자는 3개 시도의 광역단체장과 기획관리실장 등 총 6명. 이날 행사를 주최한 충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협의회를 통해 충청권 공동발전 방안 등 지역발전의 큰 틀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이날 협의회 석상에 오른 안건은 모두 5개.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동 노력’,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구간연장 및 조기건설 건의’, ‘전자교통카드 지역간 상호사용 추진’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충북도청 주변에서는 단연 행정수도 얘기가 꽃을 피웠고, 실제로 5개의 안건 가운데 맨먼저 논의되었다.구체적으로 이날 모임에서 광역단체장들은 행정수도와 관련, 3가지 내용에 대해 협의했다. 먼저 ‘행정수도 충청권 유치 공조체제 확립’에 대해 논의했다. 충청권 발전을 위해 유치성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지역별 유치경쟁보다 대승적 차원의 유치여건 공동조성에 힘을 쏟자는 발언이 주류를 이루었다.이어 ‘충청권 수도이전 공동 논리개발 및 대응방안 연구’ 문제도 다뤘다. 3개 시도의 연구기관과 학계가 공동연구를 해 충청권 이전의 타당성을 홍보하는 방안과 일부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대응논리를 내놓는 것에 대해서 머리를 맞댔다. 이와 관련, 광역단체장들은 단계적으로 공동세미나를 열어 충청권 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데 합의했다.마지막으로 범충청권 도민 유치의지와 역량을 결집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3개 광역단체장들은 대전충청권 발전협의회와 시민단체 중심의 유치활동을 전개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취급했다. 회의는 세 사람이 회의장에 들어서며 손을 맞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하지만 행정협의회가 끝난 후 충북도청 주변에서는 이날의 모임결과를 놓고 과연 3개 광역단체가 언제까지 공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특히 행정수도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점까지 이런 기류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이날, 충북도청 건물에는 ‘호남 고속철도 분기역은 오송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대전시장과 충남지사가 떠날 때까지 허공에서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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