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파크의 최강자 또다른 변신시도

도쿄디즈니랜드(TDL)는 도쿄를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다. 어린이들은 동화 속 나라와 천국을 연상하며 도쿄디즈니랜드에 가보고 싶어 애를 태운다.20대 전후의 젊은 여행자들도 꿈과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채 시간만 허용된다면 다른 일정을 미루고 도쿄디즈니랜드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시간을 금쪽같이 쪼개 쓰는 비즈니스맨들도, 출장차 도쿄에서 잠시 머무르는 샐러리맨들도 일부러 틈을 내 도쿄디즈니랜드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연령과 세대는 달라도 한국여행자들이 도쿄디즈니랜드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적이고도 편안한 분위기에 있다. 시간에 쫓기는 비즈니스맨들과 샐러리맨들이 일부러 디즈니랜드를 보러 가는 속셈을 들여다보면 디즈니랜드의 최대 강점으로 소문난 이 같은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도쿄디즈니랜드는 오는 4월15일로 개원 20주년을 맞는다. 대주주인 게이세이부동산(지분율 18.4%), 미쓰이부동산(5.1%), 게이세이전철(5.2%) 등이 지바현(3.2%)과 손잡고 오리엔탈랜드라는 운영회사를 세운 것은 1960년의 일이지만, 이 회사가 디즈니랜드의 문을 연 것은 1983년의 일이니 사람으로 치면 올해 성년의 나이를 맞게 되는 셈이다.도쿄역에서 게이요선 전철로 태평양 바닷가를 따라 약 30분 달리면 닿는 지바현 마이하마역 앞 일대 260만평 부지에 자리잡은 도쿄디즈니랜드(TDL)은 개원 후 20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진기록을 남겼다.2001년 부대시설로 새로 문을 연 해양테마파크 ‘디즈니 시(Sea)’와 합쳐 지난 한 해에만 무려 2,550만명의 입장객을 유치했으며, 지금까지의 누적입장객수는 3억명을 넘고 있다. 일본 전체인구의 두 배 훨씬 넘는 숫자의 입장객이 TDL을 찾아와 웃고 즐기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돌아간 것이다.입장객수만 기준으로 한다면 TDL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톱을 달리는 테마파크로 성장,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본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찬사까지 얻게 됐다. TDL은 경영실적에서도 눈부신 신기록 행진을 지속 중이다.2002년 3월(2001회계연도)결산에서 2,811억엔의 매출과 238억엔의 경상이익을 올린 오리엔탈랜드는 오는 2003년 3월 결산에서는 지난해 실적을 껑충 뛰어넘는 호성적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 증권업계는 오리엔탈랜드의 올해 3월결산 수치가 매출 3,438억엔, 경상이익 305억엔으로 외형과 내실에서 모두 창립 후 최고수준에 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디플레이션의 불황한파가 맹위를 떨치고, 일본 국민들 모두가 지갑을 호주머니 깊숙이 감춰둔 상황에서 올린 실적임을 고려한다면 빛나는 성적이 아닐 수 없다.TDL의 경쟁력으로 다른 어느 테마파크도 넘볼 수 없는 종업원들의 접객태도와 완벽한 고객마인드를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고객들이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 상하지 않도록 편안한 서비스를 하면서도 물 흐르듯 매끄럽게 고객을 섬기는 자세가 ‘다시 찾고 싶은 도쿄디즈니랜드’를 만든 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따라서 3,500여명(2002년 3월 현재)의 종업원이 한마음 한몸으로 고객마인드로 무장하고 최고ㆍ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TDL은 일본산업계로부터도 ‘서비스사관학교’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발상의 전환 주도하는 ‘지획부’하지만 TDL이 세계테마파크의 최강자로 우뚝 서기까지는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에 만전을 기한 회사측의 안목과 센스가 절대적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 일본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TDL은 현재 ‘디즈니 시’와 쇼핑 등을 위한 상업시설, 호텔 등의 부대사업을 마이하마 일대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들은 최근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모두 지난 96년에 만들어진 2010년 비전에 담겨 있던 것들이다. 수십년 앞을 설계하면서 담아두었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구체화시킨 것들이 테마파크 최강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명성을 높이는 데 힘이 된 것이다.성년의 나이를 맞은 TDL의 저력은 세계 넘버원의 테마파크에 만족하지 않고 잠재적 위기에 대비해 돌파구를 미리 확보하려는 데서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오리엔탈랜드는 2002년 말 5명의 정예사원으로 구성된 특별 태스크포스를 ‘지획부’(知劃部)라는 명칭으로 설치하고 도쿄 도심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입주시켰다.태스크포스를 TDL의 본거지가 있는 마이하마 일대의 자사 건물에 두지 않고 외따로 떨어진 곳에 둔 이유는 간단했다. TDL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구상에 전념하자는 뜻이었다. 성공의 길을 질주해 온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분위기가 다른 곳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앞으로 먹고 살 새 사업을 찾아달라는 주문이었다.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TDL의 이 같은 포석이야말로 자신들이 쌓은 아성을 뛰어넘어 더욱 강한 고수익 체질의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TDL이 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발군의 집객력과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 것들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도쿄 외곽의 지바 마이하마 일대에만 머물지 않고 더 넓은 곳으로 뛰어나와 더 많은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고품격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전문가들은 TDL이 미국의 월트 디즈니처럼 판권비즈니스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키마우스 등 지금까지 사용해 온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 외에 TDL만의 고유 캐릭터 개발과 보급에 힘을 쏟는 한편 출판물 등을 통해서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시계 등 젊은 고객들로부터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상품의 판매도 TDL의 적극적인 사업확대가 예상되는 품목이다. TDL은 2002년 9월 문을 연 도쿄 최고의 명물 신축건물인 ‘마루빌딩’에 ‘아르키메데스 스파이럴’이라는 이름의 기계식 시계전문점을 오픈했다.TDL은 시계점 설치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았으나 건물주인 미쓰비시부동산의 끈질긴 권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건물 자체의 명성과 TDL이 직영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면서 이 시계점은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다.전문수리기사를 상주시키고 있는 이 시계점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서도 일부러 고객이 찾아올 만큼 인기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어 미래 역점사업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TDL은 또 합작이나 단독투자 형태로 일본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사업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오리엔탈랜드 본사에는 TDL의 명성과 선진 경영 기법을 전수받으려는 제휴 희망 기업들의 신청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이들 희망기업은 대규모 부지를 소유한 부동산 관련 업체나 영업부진에 시달리는 호텔, 리조트를 소유한 회사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오리엔탈랜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휴선으로 끌어들여 즉시 사업반경을 넓힐 수 있다.일본 언론은 TDL과 손을 잡으려는 희망 기업들이 국내외에 수두룩하게 널려 있어 이 가운데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이 TDL의 또 다른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투자분석가들은 TDL의 변신 노력과 관련해 △월트 디즈니의 그늘에서 어떻게 빨리 벗어나 독자적 컬러로 옷을 갈아입을 것인가(탈디즈니), △사업무대를 마이하마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어떻게 전국적으로 확대시킬 것인가(탈마이하마)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디즈니라는 간판으로 특정지역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명실상부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경영위험을 흡수할 수 있는 고수익 신사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노무라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변신을 서두르려는 TDL의 판단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지적한 후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략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좀더 과감하고 획기적인 카드가 뒤따라야함을 시사했다. 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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