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자원관리체계의 근본적인 재구축 절실...국내 대기업, 제도 우수해도 인정 못받아
형편이 되는 회사라면 높은 연봉을 제시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스카우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급인재이다 보니 당장에 회사의 기대에 걸맞은 큰 성과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 들어온 순간부터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높은 연봉이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펀더멘털한 요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조직행동론을 연구한 프레드릭 허즈버그에 의해 입증됐다.사실 인재경영이니 핵심인재의 확보니 하는 것이 한국적 현실에서 사치스러운 문구일지도 모른다. 세계적 조사기관인 테일러넬슨소프레스(TNS)가 얼마전 발표한 세계 주요국 직장인의 애착도 조사결과는 한 마디로 참담하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조사대상 33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소속 직장에 대해 애착이 가장 낮다는 얘기다.97년 외환위기와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은 직장인들로 하여금 회사에 정을 떼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다급한 상황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정교하지 못했다. 외과적 수술(구조조정)에는 과감했지만 환자(기업)의 수술후유증(구조조정의 부작용)은 신중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샐러리맨들은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개인의 삶에 미치는 직장의 영향력이 가정의 그것보다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은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는 단순하고도 메마른 기본적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일터의 ‘퀄리티’(Quality)는 아주 낮을 수밖에 없다.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직장을 ‘훌륭한 일터’(Great WorkplaceㆍGWP)로 만들어야 한다. 직장이 일터인 동시에 쉼터이고 나아가 자기계발의 터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인재가 모여들고 그들이 떠나지 않으면서 강한 로열티를 보이게 된다.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GWP가 돼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기계가 핵심자산이고 사람은 그저 노동인력이란 산술적 계산방식으로 표현됐던 대량생산시대가 완전히 끝났다. 이제 보유 인재의 역량과 그들의 독창성이 핵심자산인 지식정보화시대다. 당연히 일터의 퀄리티가 낮아서는 핵심자산을 지켜낼 수 없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기업을 GWP로 변모시켜 가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관리(Human ResourceㆍHR) 체계의 근본적인 재구축이 필요하다. 매년 지가 선정하는 100대 기업에서 해마다 상위에 오르는 미국 생활용기 제조유통업체인 컨테이너스토어는 ‘가정 같은 회사’를 지향한다. 2001년 신입사원 선발 당시 204명 모집에 무려 2만7,482명이 몰렸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이 회사의 홍보담당자 코프랜드는 “거창한 경영이론, 액자 속의 경영철학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상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원칙에 의해 회사가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컨테이너스토어에는 오로지 6가지 원칙만 존재할 뿐이다. 이 회사의 골든룰(Golden Rules) 가운데 하나는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라’(Fill the others’ basket)는 것이다.시가총액규모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시스코시스템스는 90년대 후반에 HR 정책의 기본 모토로 ‘가정과 일터의 통합’을 내걸었다. 당시 HR담당 임원이었던 바버라 벡은 “직장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는 데서 한 발 나아가 그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회사에서 집으로, 집에서 회사로의 이동이 병목 구간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로 출근하면서 아이가 걱정되는 구성원에게 탁아시설을 제공했고 퇴근하면서 미진한 업무가 거슬리는 종업원들을 위해 각 가정에 초고속통신망을 깔아줬다.이들을 비롯해 GWP로 꼽히는 주요 기업들의 특징은 관계관리(Relationship Management)의 측면을 성과위주의 과제관리(Task Management)와 동일한 비중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부의 신뢰수준을 끌어올리는 업무 구성원이 재미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업무를, 판매량을 늘리는 과제 불량률을 낮추는 과제 등과 같은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특히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경영관리에서 전위화되고 있는 것은 관계관리의 측면이다. 구체적인 기법에서는 커뮤니케이션체계, 리더십강화프로그램, 성과보상체계, 인재육성체계, 개인비전의 수립지원체계 등의 개발로 나타난다.한국기업들은 사실 ‘가정을 보완하는 역할’이란 측면에서 그 어느 나라 기업들보다 탁월한 제도와 관행들을 갖고 있다. 삼성, 현대, LG의 계열사들을 비롯해 국내외 웬만한 중견기업들은 모두 구성원 가족의 의료비,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사내 행사에 가족을 초대하고 구성원 부모에게 효도선물을 주기도 한다.또 관혼상제에서는 직장의 구성원들이 많이 동참해 고락을 함께하는 관행이 정착돼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두고 싹터 왔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대단히 밀착돼 있다. 최근에는 자녀들의 겨울방학 캠프도 기업단위로 이뤄지는 곳이 적지 않다.문제는 이 같은 우수한 제도와 관행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며, 이 역시 구성원의 관계를 관리하는 경영관리가 취약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