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은 ‘불안’ 마음은 ‘편안’

2000년 11월 조흥은행에서 퇴직한 최기철씨(54). 약 2억3,000만원을 명예퇴직금으로 받았다. 퇴직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최씨는 다른 직업을 여전히 물색 중이다.“창업했다가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린 퇴직자들 몇 명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보니 섣불리 일을 벌이기도 두려워집니다. 요즘 같은 때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부동산은 투자해 본 경험이 없어 리스크가 크다고 덧붙였다. 부동산투자라고는 내집마련밖에 없던 게 보통 직장인 아닙니까.”최근 최씨의 가장 큰 걱정은 목돈마련이다. 두 명의 자녀가 학비 부담이 큰 대학생인데다 다른 집 자녀들처럼 어학연수 정도는 보내고 싶기도 하다.“당장이야 절약하고 살면 생계를 못 이어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학자금 등 교육비가 가장 걱정됩니다.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으라고 독려할 수만도 없죠. 자녀가 더 크면 결혼도 할 텐데 그때 들어갈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퇴직금을 함부로 투자할 수가 없습니다.”퇴직금 안전운용을 지향하는 최씨는 일단 퇴직금을 크게 세 바구니에 나눠 담았다.5년 만기 8% 금리 은행 후순위채에 8,000만원을 넣었다. 3개월에 한 번씩 세금을 제외하고 나면 100만원 정도가 들어온다. 그리고 은행권보다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의 세금우대 1년 만기 정기예금에 1억원을 맡겼다. 저축은행에서는 한달에 약 60만원이 이자수익으로 나온다.“저축은행 정기예금을 이용하기 시작한 2001년 당시의 금리는 7%였습니다. 그나마 은행권보다 높았던 이 예금의 금리는 최근 5.7%로 떨어졌습니다. 저금리 시대에서 우리 같은 퇴직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최씨는 퇴직금 중 나머지 5,000만원은 투신권의 단기금융상품인 MMF에 넣었다. 이율은 4% 정도. 5,000만원은 유동자금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이율이 더 낮아지면 유동자금은 생활비로 편입되며 깎여 나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저같이 금융권에서 근무를 했던 사람도 막상 목돈을 굴리려니 어려움이 많아요. 프라이빗 뱅킹(PB) 등 재테크전문가들이 다양한 조언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은 부문에 투자하기가 꺼려지기 때문이죠.”직장동료였던 퇴직자들은 주로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최씨는 70~80%가 ‘집에서 논다’고 답을 했다. 은행에 입사했던 70년대에는 ‘명퇴’라는 용어조차 상상도 할 수 없던 지금의 50대는 미처 조기퇴직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매달 불입하던 국민연금도 아직 받을 수가 없습니다. 60세부터 지급된다니 연금을 받기에도 아직 멀었죠. 매달 100만원 정도 된다는 국민연금만 달마다 받아도 좀더 여유가 생길 듯싶어요.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더라고요. 국민연금 받는 나이를 낮춰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연금 고갈 위기라는 이유로 수령나이를 늦추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국민연금은 88년 부분 도입된 뒤 확대, 99년 본격적으로 국민연금시대가 시작됐다. 현재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소득있는 사람 1,600만여명이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다. 연금 수령 시작 나이는 고령화 추세에 맞춰 2013년부터 61세가 되고, 이후 5년마다 한 살씩 올라가 2033년 이후엔 65세로 고정될 예정이다.최씨는 국가와 각 기업의 퇴직자 정책 수립이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MF 외환 위기 때 급작스럽게 퇴직자가 발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나 기업에서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회구성원 전반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최씨는 퇴직자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저 스스로도 눈높이를 낮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변했고 제 위치도 달라졌는데 아직도 대우 받기를 원하는 사고방식이 잘못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그는 퇴직 후 지인이 사장인 기업에서 잠시 업무를 맡았다. 50대가 돼 합류하니 어려움이 많았다. 컴퓨터도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고 하는 일이 그 회사의 주요 업무가 아니라는 자괴감도 자신을 괴롭혔다는 것.“자존심이 많이 꺾인 채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죠. 지금은 이자가 높은 금융상품을 찾아 퇴직금을 운용하고 있어요. 비록 이자는 적지만 마음은 편해요”부동산임대 & 창업 / 우서한 전 국정원 직원임대료와 와인바로 ‘노후 든든’손용석 기자 soncine@kbizweek.com누구나 노년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 앉아 클래식을 들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우아한 모습을 꿈꾼다. 이런 생활을 매일 누리는 멋쟁이 신사가 있다. 우서한 비나모르 사장(58)이 그 주인공이다.“하루하루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기분입니다.”우사장은 2001년 11월에 30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쳤다.그가 본격적으로 노년생활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은 퇴직하기 1년 전. 퇴직 1년 전에 주어지는 준비기간에 그는 자신의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서울 홍익대 앞에 위치한 장모의 땅을 매입해 그곳에 6층짜리 건물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 6억2,000만원 가량의 개인자산과 2억8,000만원의 퇴직금. 여기에 은행으로부터 5억원을 융자받아 총 14억원의 자금이 있었다. 땅 매입가로 2억5,000만원을 쓰고, 10억원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1층에 와인바를 여는 데 인테리어비 6,000만원, 와인 구입비 6,000만원 가량을 지출, 총 1억2,000만원이 들어갔다.남은 자금 3,000만원은 와인바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여윳돈으로 두었다. 전체 6층 중 지상 1층에 자신이 직접 와인바를 운영하고, 2ㆍ3ㆍ4층은 임대층으로, 5ㆍ6층은 자신의 집으로 꾸몄다.월급쟁이로 30년 동안 6억원이 넘는 자산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처음에는 남들과 같이 월세방에서 출발했어요.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집을 사게 된 후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부동산 관련 경매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해 목 좋은 곳에 집을 싸게 샀습니다. 이런 식으로 30년 동안 15번 정도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부동산가격이 올랐던 거죠. 부동산투자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있었다기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물론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세대주택을 지었다가 분양이 되지 않아 낭패를 보았는가 하면, 주식에 손을 대는 바람에 집 한 채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10번 투자해 8번은 성공하는 부동산투자로 그만큼의 자산을 모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건물을 지은 후 1년이 지난 현재, 그의 손익계산서는 훌륭한 편이다. 와인바를 운영해 얻는 월 순이익이 500만원, 그리고 임대료로 750만원을 벌어들인다. 그중 250만원이 대출이자로 나가지만 월 1,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 셈. 연 수익률을 따져도 20%에 가깝다. 빌딩관리인을 따로 두지 않고 아내와 자신이 직접 청소하기 때문에 대출이자 외에는 나가는 돈이 없다.특히 와인바의 경우 입소문이 나 계속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그가 와인바를 직접 운영하게 된 계기도 유별나다. 지난 98년 우연히 국내 한 와인모임에 참가했다가 와인에 빠져버린 것.와인을 알아야겠다는 일념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PC통신에 와인동호회를 만들어 와인정보를 주고받았다.모르는 와인이 생기면 직접 와인 제조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아야 직성이 풀렸고, 틈만 나면 와인잡지를 읽었다. 이렇게 와인 지식을 쌓아 지금은 호텔에서 연회를 열 때 와인 종류를 고르기 위해 그를 찾을 정도가 됐다. 얼마전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마신 와인을 최초로 맞추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틈틈이 쓰던 와인 관련 칼럼이 지금은 책을 내도 무방할 만큼 두툼해졌다.가게이름인 ‘비나모르’도 현재 그가 인터넷에서 운영하고 있는 와인동호회명이다. 2001년 여름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박람회에 같이 갔던 아내가 “당신은 와인을 떼놓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와인바를 운영할 것을 권해 비나모르를 열게 됐다.현재 그가 운영하고 있는 비나모르는 서울 강북 최고의 와인바로 불린다. 저렴한 가격과 450여종에 이르는 와인을 구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와인을 사랑하는 우사장이 있기에 오늘날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돈보다 제가 좋아하는 와인바를 운영하면서 계속해서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쉰 적이 없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와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와인을 전파하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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