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쌍수 부회장 등 책임경영 앞장, CDMA 단말기사업부 등 핵심부서 부상
요즘 구자홍 LG전자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한다. 올해 들어서도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거의 응하지 않았다. 부문별 사업본부장이 책임경영을 하는 마당에 자신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LG전자는 간판격인 구회장을 정점으로 김쌍수 부회장(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 백우현 사장(CTOㆍ기술담당 최고책임자), 김종은 사장(정보통신사업본부장), 우남균 사장(디지털디스플레이&미디어사업본부장) 등이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회사를 효율적으로 이끌고 있다.구회장의 경우 전체적인 것만 관할할 뿐 구체적인 각 부문별 사업은 본부장들이 최일선에서 직접 챙긴다. 각 사업본부는 아래에 많은 사업부를 두고 실무적인 업무를 총괄한다. LG전자를 이끄는 핵심 포스트와 사업부를 소개한다.핵심 포스트김쌍수 부회장은 ‘1등 LG전자’의 선봉에 선 전문경영인으로 99년 산업자원부로부터 가전업계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될 만큼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96년 6시그마(혁신활동 프로그램)를 도입해 경영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등 뛰어난 리더십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부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6시그마 경영은 갈 길이 바쁘다고 무작정 떠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출발은 다소 늦더라도 측정분석을 통해 문제를 계량화하고 그 원인을 명확히 한 다음 개선을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LG전자가 국내 기업 가운데 경영혁신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데는 김부회장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또 김부회장은 2001년부터 ‘Great Company Great People’이라는 표어로 조직의 사기진작에 노력하고 있다. 핵심은 ‘이기는 조직’(질적 양적 측면에서의 경쟁우위 확보를 통한 높은 성과 창출), ‘글로벌 리더십’(기술, 생산성, 마케팅 등 경영전반에서 세계시장 선도), ‘신바람나는 조직’(일하기 좋은, 일할 맛 나는 조직문화와 분위기), ‘팀워크가 강한 조직’(노경 및 사업부간, 부서간, 개인간 높은 시너지 효과 발휘) 등 4가지로 요약된다.신바람나는 조직을 위해 ‘가사불이’(家社不二ㆍ가정과 회사는 하나)를 주창하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경영방침도 강조해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LG전자 냉장고 공장장 등을 거친 생산현장 출신답게 소탈한 성격으로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좋아한다.백우현 사장은 미국 가 ‘디지털 TV의 아버지’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디지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통한다. 특히 화상전화기, 디지털TV 등 디지털 제품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사용해 볼 정도로 남다른 식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MIT대에서 ‘통신·제어시스템’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이후 미국 GI사와 퀄컴사에서 기술담당 부사장 등으로 일하며 디지털TV와 케이블TV 등의 신호압축과 암호화 기술개발 등에 참여했고, 현재 미국 디지털 위성방송의 표준이 된 ‘디지사이퍼(DIGICIPHER) 시스템’과 케이블TV 중계방식인 ‘비디오사이퍼(VIDEO-CIPHER)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무를 관장하기도 했다.98년 LG전자의 CTO로 영입됐고, LG전자의 기술개발 방향 정립의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디지털TV, PDP, 디지털TV 핵심 칩 등의 개발을 진두지휘한 데 이어 IMT2000과 이동통신 단말기 개발에도 깊숙이 참여했다.국내 최초로 한국형 64인치 디지털TV를 개발해 출시했으며 세계 최고수준의 디지털TV 핵심 칩셋 기술력도 확보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최대 크기의 60인치 PDP를 개발했고, 세계 최소 두께의 PDP TV도 내놓았다.정보통신사업본부 사령탑인 김종은 사장은 74년 LG전자 오디오사업부 검사과에 입사한 이래 올해로 30년째 LG에서 한우물을 파고 있는 경영인이다. 입사 9년 만인 83년 오디오 품질관리 파트의 부장이 되면서 기존의 품질검사(QC) 개념을 한 차원 발전시킨 TQC (Total Quality Controlㆍ전사품질관리) 개념을 정립한 것은 지금도 LG전자 내에서 널리 회자될 정도로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이후 그룹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에 발탁돼 그룹 TQC 추진 사무국 부장을 거쳐 89년 이사로 승진한 후 93년 그룹의 사업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구조본 상무를 거치면서 일찌감치 LG그룹 내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선보였다. 특히 김사장은 99년 멀티미디어 사업본부장, 2000년 이동단말사업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그룹의 승부사업이자 미래산업인 디지털사업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김사장은 이동단말사업본부장 시절 휴대전화사업의 기술품질 역량강화에 사활을 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연 1,000만대 생산돌파와 글로벌 톱10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거뒀다.김사장은 내부적으로 ‘성과창출과 경영혁신은 현장에서’라고 강조하며 현장 경영마인드를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월 1회 이상 사업장 및 사업부를 정기적으로 방문, 직접 경영실적을 점검하고 현장에서의 당면과제 해결과 대안제시를 통해 사업추진력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우남균 사장은 LG전자의 대표적인 해외통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74년 수출2과에 입사한 이후 주로 해외근무를 하며 ‘글로벌LG’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전자 시카고지사 부장과 해외영업본부장(이사), 구주지역본부장(상무), 북미지역본부장(전무) 등을 차례로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특히 시카고지사장 시절 TV수주를 놓고 세계적인 전자업체인 GE와 한판 승부를 벌여 물량을 따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우사장은 탄탄한 팀워크와 탁월한 설득력을 바탕으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GE를 따돌리는 능력을 발휘해 미국 현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96년에는 해외법인의 관리효율화 방안을 직접 마련해 적극 실천, 마케팅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아울러 CD롬, LCD 등에 대한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북미 현지 매출확대 기반을 구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우사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탁월한 협상력이다. 강점인 ‘강한 설득력’을 바탕으로 신규거래선 개발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 해외지역에서 거래선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2000년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월드베스트어워드’를 수상했고, 역시 같은해 한국능률협회의 ‘한국창업대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핵심 팀LG전자에는 유능한 경영진 못지않게 능력 있는 팀 역시 많다. 해마다 뛰어난 실적을 내며 회사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CDMA 단말사업부의 존재는 돋보인다.96년 설립돼 해마다 70~80%의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1등 LG’의 견인차를 자부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우리에게 친숙한 ‘CYON’ 브랜드를 출시하고, ‘i-Book’이라는 걸출한 모델을 내놓으면서 정상을 향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 사업부는 지난해 1,600만대라는 엄청난 물량을 판매하면서 매출 3조5,240억원, 영업이익 3,427억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성과를 거두었다.이뿐만 아니라 2/4분기에는 이동단말기 부문에서 전세계 시장점유율 3.8%로 세계 6위를 달성한 데 이어 CDMA 단말기 부문에서는 시장점유율 19%로 세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에는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 빅5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기술경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인력만 1,200여명에 달한다. 뛰어난 기술력은 곧바로 제품으로 연결돼 8줄의 대화면이 가능한 ‘i-Book’으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고, IMT2000 카메라 내장 컬러폰 등 다양한 제품들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PDP사업부 역시 LG전자가 자랑하는 으뜸 부서다. ‘전자업계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 팀은 성과물마다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PDP사업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93년. 일본의 후지쓰나 소니, NEC 등에 비하면 10년 정도 늦게 출발한 셈이다. 하지만 97년 국내 최초로 40인치 PDP를 개발했고, 98년에는 세계 최초로 60인치 PDP를 내놓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한동안 체계적인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해 고전했지만 구미에 2,0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하면서 해결됐다. 이를 통해 연간 30만대의 PDP 생산체제를 구축했고, 부품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해 국산화율 70%를 이미 달성했다.이런 노력의 결과 2001년 7월에는 세계 최초로 60인치 PDP TV의 판매를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40인치 42인치 50인치 60인치의 생산라인을 갖춰 거의 모든 사이즈의 PDP 모델을 생산하는 최초의 회사가 됐다.PDP사업부는 올해 10월이면 2기 생산라인이 완공돼 연간 6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한다. LG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2005년 세계 PDP 시장에서 2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세계 최고의 첨단 디지털 전자업체’로 도약할 꿈에 부풀어 있다.시스템에어컨개발팀도 LG전자의 간판임을 자부한다. 시스템에어컨이란 실외기 하나에 여러 개의 실내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통칭하는 말이다.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천장 설치형 제품인 천장 카세트형 에어컨과 덕트 연결형 제품을 함께 일컫는다. 2002년 물량 기준으로 전세계 에어컨 시장의 23%(1,100만대)를 점유하고 있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44%(160억달러)를 차지하는 고부가가치형 제품이다.LG전자의 시스템에어컨은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02년 기준으로 54억원대로 성장한 국내 시장에서 60%에 이르는 시장점유율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공비결 뒤에는 불황기 때의 과감한 투자와 시장을 파고드는 마케팅 전략, 그리고 세일즈 엔지니어의 노력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를 바탕으로 LG전자 에어컨은 2001년과 2002년 연속으로 세계 판매 1위를 달성했고, 2005년까지 세계 시스템에어컨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돋보기 / 인재육성전략미래 경영자 조기육성과정 운영우수인재를 키우기 위한 LG전자의 노력은 집요하다. 경영진을 중심으로 21세기는 지식창조력의 시대인 만큼 인적자원이 미래사업 경쟁력의 원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LG전자의 인재육성은 선발에서부터 시작된다.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뽑는다. 채용전문가를 내부적으로 육성해 헤드헌팅에 활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전문가를 이용해 학연, 지연, 국적, 성별을 타파한 능력위주의 인재채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구체적으로는 타깃 리크루팅(Target Recruiting)을 실시하고 있다. 핵심 R&D 인력 중심으로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헤드헌터를 채용해 인재선발업무를 맡기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서치펌(Search Firm)을 활용하고 있다.또 글로벌 리크루팅(Global Recruiting) 제도를 정착시켜 해외유학생 및 현지인을 적극 뽑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버클리대 등 상위 20위권 이내 대학 출신 동포학생(석박사 포함) 30명을 채용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아울러 러시아 주요대학(모스크바대 등)에 재학 중인 학생을 한국으로 초청해 인턴과정을 개최하는 등 우수한 해외 주요대학 학생을 선발하는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제도는 앞으로 중국과 인도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일단 확보한 인재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으로 양성한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EMBA-DGM 과정(MBA 학위 과정)을 들 수 있다. 미래경영자 조기육성 과정으로 글로벌CEO로서의 위상과 능력을 배양하고, 업무수행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최신 경영이론과 실무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전 과정에 걸쳐 영어로 강의를 진행한다. 외부기관인 산업정책연구원과 같이 운영 중이다.CEO나 사업본부장 대상의 ‘디지털 AMP’ 교육과정 역시 눈길을 끈다. 각 사업본부별 비즈니스 이슈를 해결하고 신사업 성공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과정은 2000년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밖에 사업부장, 법인장, 연구소장 대상의 ‘디지털 MIP 교육과정’과 중간관리자 대상의 ‘디지털 리더 HPI 교육과정’, ‘디지털 영 HPI 교육과정’ 등은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