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2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서관 15층 LG전자 부회장실. 집무실 밖으로 호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전화벨도 쉴새없이 울려댔다. 이날 LG전자 핵심 경영진이 대거 승진했기 때문이다. 구자홍 부회장은 회장으로, 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김쌍수 사장은 부회장으로, 또 차세대 주력사업인 디스플레이&미디어사업본부 우남균 부사장 등 부문장들도 승진행렬에 가담했다.LG전자의 ‘승진잔치’는 2002년 경영실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해 18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1조원의 영업이익(전년 대비 29.2% 신장)과 4,900여억원의 순이익을 냈다.무엇보다 국내 가전업계의 맞수 삼성전자와 정면대결을 펼치고 있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PDP TV 등 디지털TV, 이동전화 단말기 등 정보통신사업 등에서 밀리지 않고 대등한 경쟁을 펼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자신감을 얻은 LG전자는 올해 들어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R&D 투자액도 지난해보다 약 20% 늘려 잡았다. 최근에는 자회사인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에 200만평 규모의 LCD 단지를 조성한다는 ‘벅찬’ 계획도 발표했다.‘1등 LG’에 대한 집념도 더욱 강해졌다. 구자홍 회장은 직원들에게 “‘무적해병’처럼 똘똘 뭉쳐 2003년을 출발점으로 삼아 1등 LG를 향해 전진하자”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오는 2010년 세계시장에서 ‘넘버3’ 기업으로 급성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당당히 내놓았다.LG전자의 이 같은 포부는 LG그룹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구본무 LG 회장은 ‘1등 LG’를 입버릇처럼 외치고 다닐 정도다. 현재 LG화학, LG홈쇼핑, LG투자증권, LG카드 등이 국내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며 선전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기업을 꿈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그룹 내에서 당장 세계시장에서 통할 기업은 LG전자가 어찌 보면 유일하다. 따라서 그룹 입장에서도 그룹 전체매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LG전자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과연 LG전자는 소니, GE, 노키아, 모토롤러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글로벌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제품경쟁력세계 1등 제품 4개 … 디지털TV 큰 기대구자홍 LG전자 회장은 지난 1월2일 시무식에서 “지난해 우리는 강한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만큼 성과를 거뒀다”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1등 LG’에 도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제품, 기술, 글로벌 경쟁력 등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 올라서야 가능한 일이다.먼저 제품경쟁력. LG전자는 가전, 디스플레이, 정보통신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2002년 매출액 중 디지털어플라이언스 부문이 32%, 디스플레이&미디어 부문 43%, 정보통신 부문 20%, 시스템 부문 5% 등으로 골고루 퍼져 있다.가전제품은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 있다.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는 부동의 세계 1위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은 국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1, 2위를 다툴 만큼 기세등등하다.광스토리지 CD롬, CDMA 단말기 등 정보통신 제품들도 1등을 굳건히 지키고 있거나 정상을 눈앞에 뒀다. 특히 휴대전화 단말기는 2001년 세계 시장점유율 10위에서 2002년 6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수출 2조6,000억원, 내수 1조원 등 모두 3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울러 LCD TV, PDP TV 등 LG전자가 크게 기대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제품들도 각각 세계 2, 3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고지점령을 앞두고 있다.디지털TV는 LG전자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시장의 성장성이 매우 밝기 때문이다. 김태균 디지털TV 마케팅그룹 과장은 “세계 디지털TV 시장은 2001년부터 연간 30% 이상 급성장해 2005년 260억달러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디지털TV 시장을 잡는다면 LG의 초일류기업 도약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LG전자의 디지털TV 기술 수준도 초일류다. LG전자는 디지털TV의 3대 기술인 핵심 칩셋, 디스플레이부품, 소프트웨어 분야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유럽과 일본 회사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특히 핵심 칩셋 분야에서는 지난 80년대 말부터 디지털방송의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왔다. 이로 인해 북미방식 디지털방송 표준인 VSB기술의 원천특허를 확보해 향후 20년 동안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로열티 수익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기술경쟁력연구진, 전체인력의 23% 차지지난 99년 6월 6시그마로 유명한 GE 관계자들이 LG전자 창원공장을 방문했다. 양문 여닫이 냉장고를 생산하는 LG전자 창원공장은 그룹 내에서도 생산성 향상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LG전자 6시그마의 ‘성지’다. 이들은 공장라인을 둘러보는 등 6시그마를 현장 점검한 뒤 ‘원더풀’을 연발했다. GE 관계자는 “유럽의 선진기업들도 창원공장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며 놀라워했다.LG전자의 뛰어난 생산기술력은 96년부터 도입한 6시그마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결과다. LG전자는 6시그마를 정착시키기 위해 초기에는 한 해에 ‘1인 1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승진의 필수조건으로 삼았을 정도다. 김완호 경영혁신팀 부장은 “가전사업이 성공한 것도 바로 경영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자체 분석했다.개발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 적지 않다. 2001년 3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PDP TV를 출시했고, 초대형 PDP공정 핵심부품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또 2001년 1월 세계 최대인 29인치 디지털 LCD TV를 개발했고, 세계 최초로 블루투스를 장착한 휴대전화 단말기 인증도 획득했다. 이런 신제품 개발능력은 LG의 기술력이 이미 세계수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라는 것이 LG측의 설명이다.R&D 역량도 크게 높아졌다는 평이다. LG전자의 R&D 인력은 국내 전체인력 2만5,000명 중 7,000명으로 23%에 달한다. 박사급도 2000년 이전까지 매년 20~40명 정도 채용에 그쳤으나, 이후 80~100명 정도 채용하고 있다. 그동안 R&D 투자비도 99년 4,200억원, 2001년 7,600억원, 2002년 8,200억원으로 꾸준히 늘려왔다. 올해는 9,800억원을 R&D 투자비로 사용할 계획이다.R&D의 산실인 연구소를 보면 국내에만 LG전자기술원, 디지털TV연구소 등 17개를 두고 있다. 또 해외에서도 미국 뉴저지의 LGEDA, 인도의 LGSI 등 13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개설한 중국 R&D센터는 현재 200명의 연구인력을 오는 2005년까지 2,000명으로 늘리고 1조7,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중해 글로벌 R&D의 중심지로 키울 예정이다.백우현 기술총괄담당 사장(CTO)은 “디지털 분야의 핵심기술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본격적인 시장성장이 예상되는 디지털TV, PDP 등 차세대 평면디스플레이와 IMT2000 등 이동통신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 및 신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글로벌경쟁력매출액 중 수출비중 60% 넘어LG전자는 전세계에 75개의 생산 및 판매법인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현지직원수만 3만여명. 2002년 해외법인을 포함해 약 34조원(28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4년간 연평균 21%의 고속성장을 한 것.또 LG전자 지난해 매출액 18조6,000억원 중 11조9,480억원이 수출로 벌어들인 금액이다. 이밖에 세계 1등 제품이 4개, PDP 등 2, 3위 제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전자업체 중 삼성전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이러다 보니 해외 유력기관과 언론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에어컨 ‘휘센’은 2001년 12월 독일 ‘IF Design Award’에 선정돼 디자인을 강조하는 유럽 가전 시장에서 ‘눈에 띄는’ 제품으로 떠올랐다.2001년 7월 영국의 유명 오디오전문잡지인 는 ‘홈시어터 종합 테스트’에서 LG전자 홈시어터 시스템을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선정했다. 또한 LG전자의 휴대전화는 소비자 정보잡지 가 2003년 2월호 휴대전호 부문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할 정도이다.그러나 아직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은 LG전자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삼성전자(85위), 국민은행, SK텔레콤, 포스코, KT, 한국전력 등 6개 기업이 들어갔으나 LG전자는 끼지 못했다.와 브랜드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선정하는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도 LG전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전우종 SK증권 애널리스트는 “LG의 제품들이 ‘고급’보다 ‘중급’에 가깝게 평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LG전자의 2010년 목표는 세계시장에서 ‘넘버3’에 드는 것. 그러나 이런 야심 찬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제품, 글로벌경쟁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재무구조에 대한 개선도 필수적이다. LG전자가 경쟁해야 한 세계적인 기업들은 한결같이 재무구조가 건전하다.실제로 부채비율을 보면 2001년 말 기준으로 소니 1.4%, 노키아 5.4%, 필립스 25.7%, 모토롤러 40.2%, GE가 88.8%였다. (동원증권 제공) 이에 비해 LG전자의 부채비율은 171%다. 지난해에는 200%를 넘어섰다. 또 R&D 역량을 높이는 것도 뒤따라야 한다.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삼성전자의 올해 R&D 투자비는 약 2조8,000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LG전자의 세 배다.LG전자의 초일류제품에어컨2002년 670만대를 판매, 세계 1위(14.3%)를 기록했다. 2000년부터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것. 세계 148개 국가에서 생산 및 판매하고 있고 41개 국가에서 시장점유율 1위다. 오는 2005년까지 35억달러, 중국시장 집중공략 등으로 40%를 목표로 하고 있다.전자레인지2002년 세계 2위에서 1위(23%)로 올라섰다. 세계 각 가정 전자레인지 4대 중 1대는 LG전자 제품인 셈. 지난 81년 6월 처음 생산한 이래 89년 영국, 95년 중국, 96년 브라질에 공장을 세워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중국 톈진공장에서 700만대 등 총 1,210만대를 생산했다.광스토리지 CD롬지난해 세계시장 25%를 점령했다. 거둬들인 수입은 18억달러. 제품성능 면에서 최고수준을 인정받아 컴팩, IBM, HP, Dell 등 주요 PC메이커에 지속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5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달성, 5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할 전망이다.CDMA WLL 단말기2000년 전세계 123만대 규모의 CDMA WLL(무선가입자망) 단말기 시장에 50만대 이상을 공급,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리더로 떠올랐다. 2001년 120만대 중 60만대 이상을 공급, 전세계 시장의 52%를 차지하며 선두자리를 굳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 이상으로 시장점유율 1위가 전망된다.PDP TV지난해 세계시장에서 13%를 차지해 세계 3위 수준에 올라섰지만 오는 2005년 점유율 20%로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LG전자의 주력제품. 지난 98년 세계 최초로 60인치 디지털 PDP TV를 개발, 판매한 LG전자는 2001년 3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연간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올해 말 연간 6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LCD TV지난해 세계 시장점유율 15%로 2위를 차지했다. 오는 2005년 세계 1위로(시장점유율 20%) 올라설 계획이다. 경쟁상대는 선발업체인 일본의 샤프사. LG전자는 이미 미국시장에서 99년 하반기에 15.1인치 제품을 일본 샤프사보다 높은 가격에 출시한 데 이어 현재 20인치, 30인치 등의 제품을 출시,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다.돋보기 / 경쟁업체들GE·소니·노키아·삼성전자 등과 ‘격전’LG전자가 ‘1등 LG’를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글로벌기업들은 어디인가.주력사업인 어플라이언스 제품들은 GE, 월풀, 마쓰시타, 삼성전자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 세계 1위(14.3%)인 에어컨은 다이킨(12%), 미쓰비시(10%) 등과 격차를 벌여 놓았다.역시 1등(23%) 제품인 전자레인지는 삼성전자와 독일의 밀레, 지누시 등과 순위다툼 중이다. 이밖에 냉장고와 세탁기는 GE와 월풀이 선두자리를 굳히고 있는 상황. LG전자는 양문형 냉장고, 드럼세탁기 등 프리미엄급 제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오는 2010년까지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승부사업인 디지털TV는 소니, 파라소닉,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과 삼성전자를 넘어서야 한다. 지난해 전세계 디지털TV 생산대수는 660만대. 업계에 따르면 이중 소니와 파나소닉이 각각 25%와 12%를 차지했다.오는 2005년까지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다. 휴대전화 단말기 부문은 노키아, 모토롤러 등의 벽을 넘어야 한다. 2002년 9월 말 기준으로 노키아가 35.9%를 차지하며 1등을 질주하고 있다. 그뒤를 모토롤러(14.4%), 삼성전자(10.6%), 지멘스(7.8%), 소니-에릭스(4.8%), LG전자(3.8%)가 뒤쫓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소니-에릭스를 따라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돋보기 / 기업문화펀 경영으로 ‘LG다움’ 정착IBM의 루 거스너 전 회장은 “조직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조직문화는 기업성장의 밑거름이자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럼 LG전자의 조직문화는 무엇인가. 구자홍 LG 회장은 ‘LG다움’으로 정리한다. ‘LG다움’의 문화란 어떤 일을 하든 1등답게, 재미있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는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는 논리다.‘LG다운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펀(Fun) 경영’을 사내문화로 정착시키는 것. 신바람나는 조직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CDMA 단말기사업부는 지난해 5월부터 ‘펀 데이’ 행사를 갖고 있다. 매달 한 번씩 숫자판에 화살을 던져 나온 5자리 숫자와 사번(5자리)이 일치하는 5명의 직원에게 휴가와 함께 상품권을 지급한다.다른 하나는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 LG전자는 ‘노사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상호대립적이고 수직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 대신 ‘노경관계’(노동자와 경영자 관계)라는 말을 쓴다. 가령 2002년 노경합동 중국연수 이후 노조가 성과급을 떼어 1등 기술을 개발한 R&D 인력에게 포상한 것은 LG 노경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회사측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