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맞춤형 자산관리 상품

초저금리, 증시 침체, 부동산 경기 우려 등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시중 부동자금이 37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한국운행은 추산하고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돈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가운데 금융기관들은 이 부동자금을 잡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올 들어 은행 프라이빗뱅킹(PB) 시장은 더욱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국민, 신한, 조흥, 한미, 우리, 외환은행 등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잇달아 PB 점포를 개설하는 등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자산종합관리서비스)가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나오면 자산관리 시장 쟁탈전은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일임형 랩’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인들도 자산관리에 있어 전문가 활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기존의 자산관리 서비스들이 대부분 10억원 이상의 ‘큰손’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 규모의 자산을 가진 개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하지만 이번에 개정된 증권법 시행령에 따라 증권사 랩어카운트 상품은 일임금액의 최저계약한도가 없어지게 된다. 물론 증권사마다 입장에 따라 최저가입한도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성민 삼성증권 Fn 아너스(Honor’s) 영업팀 과장은 “삼성증권은 현재 대략 1억원 정도로 정할 예정”이라며 “다른 증권사들도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일임형 랩의 운영방식은 기존의 자문형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과장은 “운용주체가 개인에서 전문가로 바뀔 뿐이지 영업과 운용절차는 특별히 변할 게 없다”고 내다봤다.일반적으로 랩어카운트 투자는 증권사의 금융설계사(Financial Planner) 등 전문가와 상담하고 투자설문서를 작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설문서를 작성하면 증권사가 투자자의 성향을 세밀하게 파악한다. 증권사는 투자자산과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고객에게 다시 제시한다. 고객이 이를 받아들이면 고객의 돈을 투자해준다.고객이 유가증권의 종류, 종목, 매매방법을 결정하는 자문형과는 달리 일임형 랩은 유가증권의 종류, 종목 및 매매의 구분과 방법도 증권회사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운용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은행권에 뒤처졌던 부분이 이번 시행령 개정과 자산운용법 시행에 따라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일임형 랩의 또 다른 특징은 운영의 투명성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펀드의 경우 자신이 투자한 펀드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을 사고파는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일임형 랩에서는 자산운용 내역을 고객이 계좌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조완연 미래에셋 고객자산운용팀 대리는 “일임형 랩어카운트에 든 개인들은 계좌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시장상황에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고객에게 운용결과를 알리고 고객의 의사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등 사후관리도 고객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그리고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증권사는 자산 베이스로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고객 재산 불리기에 성의를 다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도 랩어카운트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장기적으로는 고객 자산의 증가가 곧 판매사 수입의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자산 서비스들은 자사 관련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수수료 없이 많은 부가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은행계 내에서도 부가 서비스 과열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주종규 HSBC 이사는 “다른 나라의 경우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얼마만큼 수익을 많이 내주었느냐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며 지나친 부가 서비스 경쟁에 대해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일임형 랩에 대해 은행 PB들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자산가들의 성향에 맞지 않아 그다지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영진 CHB PB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자산가들은 보수적이어서 매우 신중하게 투자를 한다.주식 같은 고위험투자는 대체로 꺼려 자산의 80% 이상을 은행상품에 묻어둔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지금의 은행 PB 서비스는 장기 베이스에서 철저하게 위험관리를 하며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자산가의 자산축적에는 다른 기관들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자신한다.이와 관련해 김신 금감원 증권감독국 조사역은 “은행이 안정성 면에서는 분명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증권사들의 신뢰도가 핵심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선두 증권사들이 브랜드 가치를 쌓고 신뢰도를 다져 간다며 승산 있는 싸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증시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증권사들은 선두주자들을 중심으로 사활을 걸고 ‘일임형 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쉬쉬’ 하고 있다. 그만큼 신경전이 치열한다는 방증인 것이다.업계 담당자들은 일임형 랩 상품의 출시시기에 대해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라면 입을 모은다. 하지만 김조사역은 “증권사들이 그동안 준비를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4월 전에는 상품이 나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투자상품의 선택폭이 넓어지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여러 가지 규제로 절름발이 상품으로 나와 제대로 이용도 할 수 없는 그런 불상사가 또다시 재현될지 지켜볼 일이다.돋보기 / ‘종합자산관리’와 ‘일임형 랩’은 어떻게 다른가?수수료 따로 안내면 ‘랩어카운트’‘일임형 랩’은 종합자산관리라는 큰 그림의 조각을 이루는 도구(Tool) 중 하나다. 은행의 PB센터나 고객이 될 때 받는 서비스와 랩어카운트 상품에 가입했을 때 받는 서비스는 구조상 크게 다를 게 없다.랩어카운트 계좌를 트면 적합한 유가증권 포트폴리오에 대한 상담 결과에 따라 자산을 운용해 주고 이에 부수되는 주문집행, 결제 등의 업무를 일괄 처리해 준다. 이후에는 투자자문과 투자, 운용보고서를 만들어 보내주고 담당매니저에 의한 투자계정의 평가 및 투자성과에 대한 자문, 그리고 고객의 의문에 대해 응답을 해준다. 은행에서 말하는 자산관리와 비슷해 보인다.하지만 이렇게 랩어카운트에 가입하면 수익증권에 가입할 때 내는 펀드수수료, 주식을 거래할 때 매번 내야 하는 거래수수료 등을 내지 않는다. 그대신 잔고평가금액에 따라 일정비율의 수수료를 낸다. 예를 들어 1억원 규모의 계좌를 텄으면 매년 그 2%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수수료 비율이 얼마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