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기업 회장을 괴롭히는 정치적 배경

재벌·민영공기업 길들이기 서막인가

최태원 SK(주) 회장과 유상부 포스코 회장의 신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관련한 각종 배경들이 재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계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정치적 배경이다.여기에 걸려들기만 하면 어느 기업의 회장들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효과를 크게 보기 위해 이를 가장해 악용하는 내부 밀고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도 나중에는 정치적으로 엮이는 경우가 더러 있어 고약스러울 따름이다”고 귀띔했다.공교롭게도 최회장은 민영기업의 대표 격이고, 유회장은 민영화된 공기업의 리더 격이다.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정치적 배경이 일고 있는 것일까.먼저 최회장의 케이스.검찰은 최회장이 SK글로벌과 SK C&C를 통해 자신이 소유한 워커힐호텔 주식을 고가로 사들이게 한 부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비상장 주식의 가격산정 문제로 대주주가 구속된 사례가 없는 점을 들어 검찰의 ‘전격적인 행동’ 배경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그중 대표적인 것이 ‘쇼크요법을 통한 재계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재벌에 대한 새정부의 개혁의지를 볼 때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새정부는 “상속 및 증여 등을 통한 오너의 대기업 세습지배를 철저하게 차단하겠다”며 취임 전부터 으름장을 놓았었다.여기에다 새정부 출범 전 검찰의 최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전격적이며 초강경 조치는 더욱 신빙성을 높인다. 적어도 이 같은 사실을 새정부 수뇌부가 모를 리 없을 것이라는 게 정계 및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 내지 소환조사는 검찰총장 또는 그 이상의 고위층에게 보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회장이 재계 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분명 현정부이든 새정부이든 상층부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둘째는 유회장의 케이스.포스코 이사회가 3월 주총을 앞두고 유회장의 연임을 안건으로 상정하자 기관투자가들이 유회장의 전력을 내세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김종창 기업은행장은 최근 “유회장이 형사상 소추된 상태여서 추후 재판결과에 따라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이 미칠 수 있다”며 “이는 지배구조의 안정성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주주 입장에서 연임에 찬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김행장의 이 같은 발언배경에 대해 금융계는 새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포스코의 지분을 2.6%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듯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유회장에 관한 한) 어느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애매모호하게 빠져나갔다.국내외 신인도 추락 우려정치권의 분위기는 더욱 의혹을 부추긴다. 유회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새정부를 탄생시킨 민주당에서는 더욱 그렇다. 민주당 관계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유무를 떠나 (유회장이) 그 정도 (회장직을 유지)했으면 스스로 물러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민주당 다른 관계자는 “유회장이 직위에 연연해하는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던졌다.이와 관련, 재계는 두 회장에 대한 정치적 의혹들로 인해 기업들의 국내외 신인도가 추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가 정치권에 휘말려 다니는 모양을 보고 외국인투자가들이 ‘굿바이 코리아’를 외치며 떠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한 외국계 투자기업 관계자는 “한국 내 기관투자가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난히 새정부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짙다”며 “이런 경우 외국인투자가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한국 내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노무현 대통령 경제정책 제대로 읽기여성경제활동과 경제성장의 함수관계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청와대 대변인에 송경희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외신대변인에 이지현 SBS 기자 등 두 명의 여성을 골랐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민 앞에 서야 하는 중책을 여성에게만 맡긴 셈이다.여성에 대한 노당선자의 애착은 남다른 것 같다. 한두 명의 재능 있는 여성을 발탁해서 쓰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성장의 커다란 기둥을 여성에게 안겨줄 태세다.노당선자의 선거공약집 앞쪽에 나오는 ‘7% 신성장시대’도 여성을 염두에 둔 구상이다. 가사에 매달려 있는 여성들을 일터로 나오게 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담겨 있다. 국공립보육시설을 확대하고,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은 여성의 경제활동 유도와 직접 관련돼 있다.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지난해 49.1%로 선진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60% 안팎)보다 낮다.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노동 투입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 증가는 언제나 경제성장에 기여해 왔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이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농민들의 대규모 공단 이주가 있었다. 개발독재시대의 외자유치와 경공업 발전 전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터를 제공했고 농촌 인구를 급속히 도시로 흡수해 갔다.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는 노동 투입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에트연방(구소련)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1930년대 대공황 시기는 물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50년대까지 소련은 고도성장을 누렸다.니기타 후르시초프 소련 수상은 1956년 서방 외교관들을 크렘린으로 불러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는 당신을 묻어버리겠다”(History is on our side. We will bury you!)고 호언장담했다.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소련은 새로 투입할 노동력의 고갈에 직면했고, 자본축적도 급속히 둔화됐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결국 소비에트연방을 땅속으로 묻어버렸다.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생산요소 투입 증가로 경제성장을 꾀하는 전략에 신랄한 독설을 퍼부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기적을 이룬 네 마리 용(龍)에 대해서조차 “생산효율 향상보다 요소투입 증가로 이뤄낸 것일 뿐”이라며 “아시아의 기적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노당선자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유달리 강조한다고 해서 ‘생산요소 투입론자’라고 폄하하거나 ‘생산성 향상을 무시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노당선자만 외친 것은 아니지만 자본유치와 기술혁신, 사회비효율 제거를 강조하는 공약들도 무척 많다.여성과 고령자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실현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에 우리가 지나치게 기대할 이유는 없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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