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컨설팅사, 그들이 뛴다

글로벌 경쟁력 갖춘 외국계 틈새 비집고 '소프트랜딩' 성공

이야기 하나.‘열기구에 몸을 실은 나는 구름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일단 어디로든 착륙을 시도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이에게 묻는다.’ “여기가 어딥니까?”(Where am I) 돌아온 답변은 “당신은 열기구 안에 있지 않습니까.” 이때 나는 탄성을 지르며 되묻는다. “당신은 분명 컨설턴트죠? 그렇죠?”LG CNS의 컨설팅 부문인 엔트루컨설팅의 부문장 홍성완 상무는 신입컨설턴트들에게 강의를 할 때면 늘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기업들에 별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는 컨설턴트의 특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토종 컨설팅회사들이 시장에 뛰어들 만한, 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숨은 의도다.다국적 회사들의 철옹성처럼 보였던 컨설팅 시장에서 토종 업체들이 점차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컨설팅시장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국계 컨설팅사들의 ‘대형무대’가 돼 왔다. 토종 컨설팅사들은 이 시장의 거품이 빠진 2000년대 말부터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앞서 언급한 엔트루를 비롯해 네모파트너즈, N플랫폼과 이언그룹, 인터젠 등 20여개의 순수 국내 컨설팅업체들이 ‘실효성 있는 제안’ ‘토털 서비스’ 등을 주창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한국생산성본부 기업진단이 시초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사회의 컨설팅산업과 달리 국내 컨설팅 시장은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성장해 왔다.한국생산성본부에서 지난 1958년 문화연필 등을 대상으로 기업진단을 한 것이 비교적 경영 컨설팅의 모습을 갖춘 첫번째 사례라 할 만하다.공공기관인 만큼 정부나 공공기관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생산성본부는 99년에는 본격적으로 6시그마 경영혁신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능률협회컨설팅과 한국표준협회컨설팅이 역시 외국계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컨설팅 시장에 뛰어들었다.하지만 90년대 중반 벤처 붐과 함께 우후죽순 생겨났던 부티크 형태의 중소 컨설팅사들이 방황을 거듭하면서 국내 컨설팅 시장은 형성조차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또 금융위기 직후에는 글로벌 컨설팅회사들의 대거 유입으로 갑작스러운 시장확대를 경험하면서 컨설팅 시장의 거품을 맛보았다.그리고 현재 이 시장은 버블이 가라앉은 외국계 회사들의 제자리걸음 속에서 ‘한국표’ 회사들이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외국계 컨설팅회사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기업들이 비용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가격상의 이점이 있는 국내 업체들에 유리할 수 있죠.”대표적인 글로벌 컨설팅업체의 하나인 아서디리틀(ADL) 정태수 대표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부터는 공개경쟁에서 마주하는 업체들을 통해 달라진 국내 컨설팅회사의 경쟁력을 실감하고 있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실제로 지난 2001년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기업인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기업의 컨설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컨설팅을 받아본 기업의 76.0%와 받아본 적이 없는 기업의 91.9%가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실효성 있는 서비스’ 강조기업이 컨설팅을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첫째, 명분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이며 둘째,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컨설팅회사를 찾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게 또한 이들의 시각이다.이는 국내 업체들에 용기를 주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는 토종 업체가 다국적 컨설팅회사보다 실천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게 국내 업체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출신의 최영상 메타넷 사장은 “실천적인 정보를 준다는 게 국내 업체들만의 이점일 수는 없다”며 “다만 외국계 컨설팅회사들 역시 어떠한 좋은 경영 사례든 한국화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최사장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제 싹트기 시작한 이들 국내 자본의 컨설팅회사들이 외국계 자본 컨설팅회사들과 대립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국내 업체들로서는 다국적 컨설팅회사들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토종 컨설팅회사가 장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컨설턴트들의 자기계발이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또 외국계 컨설팅회사들은 컨설턴트가 파트너의 자리에 오를 경우 현업에서 너무 일찍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회사와 국내 회사들 사이에 인재가 순환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국내 컨설팅 시장의 규모는 작게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컨설팅이라는 말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는데다 자격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이처럼 시장규모에 대한 시각은 엇갈리지만 수요가 충분하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진다. 글로벌회사들이 90년대 후반에 맡아온 대형 프로젝트는 줄어 언뜻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지만 컨설턴트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문제는 컨설턴트를 요청하는 요즘의 고객들은 ‘눈이 높은 소비자들’(Sophisticated Customer)이라는 점이다. 정태수 ADL 사장은 “요즘은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마다 전에 비해 한국기업의 비즈니스 이슈가 훨씬 구체화돼 있음을 느끼곤 한다”며 국내 기업의 내부 인력 우수성을 강조했다.컨설턴트들은 흔히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때 ‘의사와 같다’는 말로 압축해 표현하곤 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처럼 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 그리고 그들은 요즘 스스로 영양제를 챙길 줄 아는 ‘똑똑한 환자’들을 접하고 있다. 이 똑똑한 환자들을 건강으로 인도할 국내 컨설팅산업의 ‘한국대표주자’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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