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주유소 가기가 겁납니다”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정근씨(51). 올해로 31년째 택시를 몰고 있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다시 IMF 외환위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30년 넘게 운전을 하고 있지만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한 달 내내 일해 봤자 집으로 가져가는 돈은 150만원이 채 안됩니다.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는 돈이죠. 마누라 얼굴 볼 면목도 없습니다.”김씨가 개인택시를 몰고 나오는 시간은 보통 오전 9시 전후. 이때부터 오후 10~11시까지 하루 13시간 이상 거리를 누빈다. 하루에 300㎞는 족히 돌아다닌다. 자연 연료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동료들 중에는 하루 400㎞ 이상 뛰는 기사들도 있다.문제는 최근 들어 연료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점. 영업용이라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데 유가급등의 영향으로 이 역시 크게 뛰었다. 지난해 1월만 해도 리터당 409원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무려 577원까지 치솟았다. 40% 넘게 폭등한 셈이다.김씨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쓰는 연료량은 대략 50ℓ. 1년 전만 해도 하루에 약 2만원이면 됐는데 요즘은 3만원 가까이 든다. 순수하게 연료비로만 1만원 가량 더 나가는 셈이다. 이를 월간으로 계산하면 보통 18일 정도 일하니까 20만원 가량은 족히 된다.“1년 전부터 국제원유시장이 불안해지면서 LPG값도 계속해서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좀 오르다가 다시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제는 주유소 가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동료들 가운데는 연료비를 충당하느라 점심값을 아껴 보태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정말 죽을 맛입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입은 크게 줄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2002년 3월과 비교해 수입이 30~40% 정도 추락했다. 전에는 1시간 운전하면 1만원 넘게 벌었으나 요즘은 7,000~8,000원 정도를 버는 것이 고작이다. 하루 수입 역시 연료비 등을 빼고 나면 7만~8만원 밖에 안되고 월간으로는 120만~130만원밖에 안된다. 젊은 기사 가운데는 수입을 보충하느라 20시간씩 차를 모는 사람들이 있으나 김씨는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그러지를 못한다.“생활비를 대기가 사실 벅찹니다. 유가가 오르기 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만했지만 이제는 거의 포기했습니다. 집사람도 기대를 접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봤자 안되는데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그러다 보니 택시기사 가운데는 부인이 함께 돈을 버는 사람이 많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50~60%쯤 된다는 것이 기사들의 설명이다. 김씨 부인도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을 한다.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가계를 꾸리기 힘들어 부인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셈이다.개인택시 포기하는 동료 속출김씨가 택시운전대를 잡은 것은 72년. 고향인 경남 하동에서 올라와 서울에 머물다 형님의 권유로 처음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택시가 워낙 적었던데다 수입도 괜찮아 인기가 꽤 높았다. 수입의 경우 일반 화이트칼라의 1.5배는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76년인가는 인기 직업랭킹에서 택시기사가 4위에 오른 적도 있다고 한다.그러다 84년 개인택시를 구입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주위에서도 많이 부러워했다. 수입 역시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보다 꽤 높았다. 집도 장만하고, 1남 1녀의 자녀들 교육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택시 드라이버 김정근’의 전성기였던 셈이다.하지만 IMF 외환위기 시절에는 큰 어려움을 맞기도 했다. 손님이 반으로 뚝 떨어져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서 많이 풀렸다. IMF 이전 수준으로 수입이 회복돼 갔고, 경기 역시 호전되기 시작했다.이런 시간도 잠시. 이번에는 유가급등이 발목을 잡았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유가가 뛰었고, 이는 고스란히 김씨를 포함한 택시기사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더욱이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앞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어 앞이 캄캄하다.“사실 따지고 보면 개인택시 기사도 하나의 사업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연료비가 무서워 택시운전을 하기가 겁날 정도이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어민들이 기름값이 무서워 배를 띄우지 못하고 농민들이 하우스에 불을 피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들도 그들과 같은 상황입니다.”김씨의 소망은 아주 소박하다. 그저 택시운전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길음동에 25평짜리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욕심도 더 내지 않는다. 다만 마음 편하게 운전대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하루빨리 정부에서 영세한 개인택시 기사들에게 특별소비세 면세 등의 조치를 취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어나는 연료비를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지금대로라면 2006년쯤 되면 LPG값이 리터당 700원을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최근 서울시에서 택시를 증차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데 절대 반대합니다.세계적인 추세가 택시수는 줄이되 고급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개인택시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이것 역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김씨는 최근 동료 개인택시 기사 가운데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걱정스럽다. 지난 1년 사이에만 2,500여명이 다른 일을 찾아 운전대를 놓았다. “어쩔수 없는 노릇이지요. 생활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하루빨리 유가가 안정되고 경기가 풀려 다시 웃으며 운전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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