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러스’ 출시로 국산 대형차 3파전 돌입… “고급차 수요자는 경기 영향 둔감”
입력 2006-08-30 11:54:47
수정 2006-08-30 11:54:47
“이자관계(dyad)가 삼자관계(triad)로 변하면, 심각한 구조변동이 야기된다. … 삼자관계에서는 두 사람이 제3자를 지배하는 다수로 등장하거나 제3자에 대항하는 동맹이 될 수 있다.”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이렇게 얘기했다. 시장에서도 ‘3파전’이 형성될 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를 지켜보게 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기름값도 들썩이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은 ‘대형’이 화두다. 한동안 신차 없이 국내 대형차 시장은 에쿠스(현대차)와 체어맨(쌍용차)이 둘로 가르고 있었다. 그런데 기아차가 신차 오피러스로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국산 대형차 시장은 오랜만에 삼파전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기아차의 오피러스는 1997년 엔터프라이즈 이후 6년 만에 나온 대형차 후속모델이다. 아직 대형차 라인업이 없는 GM대우차와 르노삼성차도 대형차 시장을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다.또한 올해 수입차업계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라, 국산 메이커들은 더욱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올해는 대형차 시장이 뜨거운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시장판도 바뀌나기아차는 지난 3월12일 신차발표회를 열고 시장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이 자리에는 현대ㆍ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1999년 이후 정회장이 직접 신차발표회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그만큼 회사측이 이 차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국내에서만 연간 3만5,000대 이상 팔아 준대형급 이상 대형차 시장을 30%까지 장악하겠다는 게 목표다. 또 미국에서 올 10월부터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2만5,000대 수출을 통해 내수와 합쳐 연간 6만대를 판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기아는 내수시장에서는 오피러스의 차체나 광고 등에도 회사이름을 일절 노출시키지 않고 차명만 부각시킨다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마치 토요타의 렉서스가 그랬던 것처럼 독립 브랜드로 키워나간다는 것이다.오피러스는 외형으로 보나 마케팅 전략으로 보나 (재규어나 벤츠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유럽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주요 공략 대상도 자가운전을 즐기는 젊은 전문직 고소득층, 여성 운전자 등 수입차 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잡았다.기아의 공세에 맞서서 ‘수성’ 입장이 된 현대와 쌍용. “오피러스는 ‘니어 럭셔리’(Near Luxury)급이라 타깃 고객이 다르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기아차도 “오피러스는 초대형인 에쿠스, 준대형인 그랜저XG와는 수요고객층이 다른 대형차로, 시장 포지셔닝(Positioning)에서 차별화가 확실하다”고 밝혔다.하지만 현대와 쌍용이 ‘공식 입장’처럼 느긋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대형차경쟁이 가속화되는 데 따라 럭셔리 지향의 하이 오너 고객층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고객을 겨냥, 3월 중에 2003년형 다이너스티를 내놓을 예정. 2003년형 다이너스티는 고급사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발됐다.체어맨의 쌍용차는 수입차업체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신차 오피러스 출시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12월 가격인상 없이 배터리 세이버, 후방연동 아웃사이드 미러 등이 기본 장착된 체어맨을 출시했다. 또한 양사 모두 올해 안에 차체 일부 변경 모델을 내놓아 대응할 계획이다.대형차 라인이 없는 르노삼성과 GM대우는 ‘아직 어떤 계획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양사가 조만간 대형 럭셔리 차를 한국에 들여올 것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GM대우가 대형차를 들여온다고 가정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호주 GM홀덴의 3.8ℓ급 ‘칼라이즈’와 5.0ℓ급 ‘스테이츠맨’이다. 또한 르노삼성 제롬 스톨 사장은 최근 “대형 럭셔리 세단인 제3차종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면서 조만간 대형차 시장에 진입할 뜻임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대형차를 자체생산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르노 본사의 최고급 차종인 3.5ℓ ‘벨사티스’가 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INTERVIEW / 이지원 현대ㆍ기아차 국내 마케팅사업부장 전무“고급차 독립 브랜드, 세계적 추세”전쟁으로 유가가 불안정해지는 등 대형차를 마케팅하기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본래 대형차의 경우 고객이 경기에 덜 민감한 편입니다. 따라서 오피러스도 최근의 경기 불안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초기 판매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향후 시장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탄력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겠습니다.오피러스가 타깃으로 삼는 고객은 어떤 사람들입니까.내수시장에서는, 30대 이상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수출에서는 대형차를 갖고 싶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운 층으로 브랜드보다 실속 있는 차종, 즉 가격 대비 우수한 상품을 선호하는 고객층을 공략할 계획입니다.기아라는 회사명을 감추는 브랜드 전략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고급차종에 대한 독립 브랜드 전략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또 오피러스는 기아의 사운을 걸고 개발한 모델이므로 이 차만의 품격과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독립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오피러스는 향후 기아의 ‘flagship’(함대를 이끄는 배, 토요타 렉서스의 프로젝트명이 F1 ‘플래그쉽 넘버1’이었음)가 될 것입니다. 안으로는 승용차부문 라인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점점 확대되고 있는 국내 대형차 및 고급차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역할을 오피러스가 해낼 것으로 기대합니다.특이하게 한 차종에 대한 멤버십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던데.상위층 오너를 겨냥해 개발한 대형 고급차인 만큼 여기에 걸맞은 차별화된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오피러스를 소유한 분들에게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용 콜센터 문을 열고, 오피러스 전용 홈페이지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