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화 속 틈새특수 ‘모락모락’

방산, 건설, 조선, 전자 . IT업종 등의 일부사업 수혜 기대...장기전일 때는 타격받을 수도

비즈니스의 냉혹함은 포화 속 전장에서도 어김없이 현실로 드러난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비즈니스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차갑게 움직인다. 주식시장에서도 ‘돈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없다’는 말 그대로 전쟁이 나면서 수혜 예상 기업들에 매수세가 몰렸다.이라크전쟁의 발발로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 대중동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대응방안 모색에 여념이 없다. 그동안의 전쟁경험에 비춰볼 때 수혜가 예상되는 기업들은 내놓고는 아니지만 내심 틈새특수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이번 이라크전쟁의 직간접 영향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문은 방위산업이나 전후 재건사업을 맡게 될 건설업이 주종을 이루지만 일부에서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가져올 민간수요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라크 대책반의 최동석 차장은 “대부분의 수출업체들은 전쟁의 영향으로 운송이나 구매, 발주 등의 지연에 따라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방독면, 텐트.담요, 군복, 군화, 양말 등의 주문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전쟁상황을 지켜보기 위한 위성방송수신용 셋톱박스, 휴대전화, 보안장비 등도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인다.최근 나온 91년 걸프전 당시 수출동향을 분석한 KOTRA 조사에 따르면 이번 이라크전쟁이 수출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1년 1~2월 걸프전 당시에는 수출이 급격히 얼어붙었지만 전쟁이 끝난 3월부터 9월까지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그러다 10월부터 그해 연말까지는 급등세를 보여 91년 전체로 봤을 때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대중동 수출증가율은 26% 이상 증가했다. KOTRA 홍희 차장은 “이번 전쟁은 걸프전 사례에 견줘봤을 때 기업 대응에 따라 중동시장에서 입지를 넓혀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특히 걸프전 당시 수출증가가 두드러졌던 기계류와 전기전자제품이 이번에도 수혜분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물론 걸프전과 이번 이라크전에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달라 전쟁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걸프전 발발 직전인 90년 한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5%, 이듬해 91년 1분기 GDP성장률은 10%였다.소비ㆍ투자 등 국내 수요의 견고한 증가세가 유지됐던 경기 호황기였기 때문에 외적인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러나 현재 국내 경제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비증가세 둔화와 설비투자 침체 등 성장이 정체된 모습을 보이면서 올 상반기 중 성장률이 4%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임태윤 수석연구원은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반미감정 확산과 미국에 대한 이슬람권의 추가테러 위협 등 불안요인이 다수 남아 있어 걸프전 때와 같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라크전이 6주 전후의 단기로 끝난다면 국내 경기가 일부 회복되고 틈새특수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KOTRA 관계자는 “이라크는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경제제재와 준전시체제가 지속되면서 사회간접자본(SOC)을 비롯해 건물, 토목, 기계설비 등 주요 프로젝트 추진을 미뤄왔다”며 “복구 프로젝트는 ‘제2의 중동특수’를 촉발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영국과 미국이 전후복구사업에 다른 국가의 참여에 대한 제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한국 업체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군수물자와 수송 특수아프가니스탄전과 걸프전 때 호황을 누렸던 방독면은 이번에도 군수물자 중 전쟁수혜 1호로 꼽힌다.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 방독면 30만개를 수출한 삼성물산은 지난 2월 삼공물산과 공동으로 방독면 20만개 800만달러어치를 중동 현지에 수출했다.삼공물산 관계자는 “이라크전이 화생방전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있어 방독면 주문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며 “관리직원까지 생산에 투입해 풀가동 체제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종합상사들은 중동지역 지사를 동원해 방독면과 군복 등 전쟁물자나 의약품, 생필품, 건설자재 등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물품의 수주가능성을 타진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이들 품목 대부분은 중소업체들이 생산한 것을 종합상사들이 수출대행을 하는 것이다.따라서 상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수익원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주력사업으로 매달리는 상황은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상사 수출주문은 6개월 이상의 장기거래이기 때문에 스폿성 물량 증가는 많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그래서인지 LG상사,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현대상사 대부분은 군수물자보다 플랜트 수출 특수에 더 기대를 걸고 있다.수송특수는 항공과 조선업종이 혜택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항공사 중에서 유일하게 중동지역을 운항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걸프전 때 군수물자나 병력 등을 수송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물영업 부문에서 전쟁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종도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미국은 어차피 복구자금을 이라크 석유증산으로 해결할 계획으로, 이럴 경우 대형 유조선 시장에 신규수요가 창출된다. 또한 고유가 현상에 따라 세계적으로 심해유전 개발이 활발해질 경우 해양 플랜트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 조선업체들은 올해 해양 플랜트 부문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높여서 잡고 있다.◇전후복구 특수전쟁이 끝난 뒤 복구사업을 담당할 건설업종의 특수가 예상된다. 주택, 공장, 플랜트, 원유 및 정유설비 등 각종 건설수요가 고르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주도하의 복구사업에 참여 기회가 제한될 가능성도 있어 관련업체는 조심스레 준비를 하고 있다.대우인터내셔널은 철강, 화학, 플랜트 등 사업본부별로 세부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주택건설 등 건설수요 증가에 대비해 철강, 시멘트 수출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과거 이라크에서 공사 경험이 있는 현대건설의 경우 전후 시설 개보수 공사수주에 과거 50억달러에 달하는 시공실적을 바탕으로 상당한 물량을 수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또한 SK건설은 전쟁으로 유전 관련 시설이 파괴될 경우 원유생산시설이나 정유시설 건설 및 복구사업에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후복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그리고 시스템 통합업체인 SK C&C도 전후 이라크 SI(System Integration) 구축사업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통신 및 IT 특수전자업계도 전쟁 틈새시장을 적극 노릴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전쟁으로 인해 해당지역과 주변지역에 휴대전화 등 통신장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전쟁통에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확인하고 피난처에서의 긴급통신을 위해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 걸프전 때도 일부 나타났다는 것이 업계 마케팅담당자들의 말이다.일부 전자업체에서는 지난 2001년 9ㆍ11테러 당시 파괴된 미국 펜타곤 건물에 모니터와 PC 수요가 쇄도했던 일을 떠올리고 IT 관련 제품의 성수를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들 품목의 보급률이 대부분 포화상태인 것을 감안한다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지난 아프가니스탄전 때 정보파악을 위해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던 위성방송수신용 셋톱박스도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품목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국내 최대 셋톱박스 생산업체인 휴맥스에 따르면 수출물량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사실 셋톱박스는 제품의 성격상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수요가 늘 수 있는데 실제 이 기간에 수출주문량 변화가 크게 없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휴맥스의 중동지역 수출은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한다.회사 관계자는 “뚜렷한 특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악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보다 계절적 요인에 따라 하반기에 수출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오히려 보안장비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전쟁 영향으로 지구촌 전체에 테러 우려가 확산되면서 디지털영상저장장치(Digital Video RecordㆍDVR)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올 들어 3월 초까지 DVR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 특히 테러 우려가 높은 미국과 유럽, 호주 등이 특수를 주도하고 있다. 업계 간판기업인 코디콤, 성진씨앤씨, 아이디스 등은 대표가 나서 해외영업을 챙기는 등 특수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돋보기 / 베트남전&걸프전 특수로 돈 번 기업들미국에 패전의 아픔을 안겨준 베트남전쟁(1960∼1975년)은 한국 기업들에는 급성장의 계기가 됐다. 당시 국내 산업은 가발, 플라스틱, 합판류 등 경공업이 중심이었다. 전쟁을 통해 철강제품, 수송장비, 화학제품 등의 수출급증은 한국의 산업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현대화하는 결정적 발판이 됐다.이런 가운데 몇몇 기업은 ‘월남재벌’로 거듭나게 됐다. 현대, 한진, 대우그룹이 바로 그들이다. 현대는 소규모 군 건설업체에서 베트남 내 항만준설공사를 미국측과 거의 독점계약으로 따내면서 고속성장을 이어갔다.마침내 75년에는 재계 3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운송 및 수송 전문 업체였던 한진은 월남전에서 주로 미군의 전투수행을 지원하는 수송 관련 사업 중심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이룬 사업실적을 바탕으로 한진은 결국 항공운수산업이라는 엄청난 이권을 거머쥐게 된다.대한항공의 씨앗은 대한민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뿌려졌던 셈이다. 대우그룹 역시 월남전을 등에 업고 재벌로 성장했다. 군복 등 섬유제품 수출의 급성장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사업기반을 확장해 나갔다.걸프전(1991년 1∼2월)에서는 (주)한화(옛 한국화약)가 대표적으로 특수를 누린 기업으로 꼽힌다. 로켓탄과 수류탄, 폭탄 등 주요 생산품목을 당시 주한미군이 대거 사들여 재고처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돋보기 / 이라크전 포연 속 반짝 특수언론, 군사관련 인터넷 사이트 이용 급증 … 전쟁 관련 게임ㆍ완구ㆍ서적도 인기전쟁에 대한 관심이 흥미나 돈벌이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쟁 관련 반짝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전쟁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가장 먼저 언론, 군사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 열기는 게임ㆍ완구ㆍ서적에도 이어지고 있다.웹사이트 분석 전문업체 랭키닷컴(www.rankey.com)이 9개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의 하루평균 방문자수를 집계한 결과 전쟁 발발 후 최고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전쟁이 터진 3월20일 기준으로 볼 때 실시간뉴스를 전하는 연합뉴스(www.yonhapnews.net)가 언론사 사이트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전자전’으로 불리는 이라크전에서 각종 첨단 무기체계가 선보이면서 군 당국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군사 전문 사이트도 때 아닌 인기를 끌고 있다.디펜스코리아(www.defence.co.kr)와 밀리터리리뷰(www.militaryreview.com)를 비롯해 국방부ㆍ육군ㆍ국가정보원ㆍ국방연구원 등 국내 사이트와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해병대ㆍ육군ㆍ중앙정보부(CIA) 등의 홈페이지에도 네티즌이 몰려 초기화면을 불러오는 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각종 전쟁게임들의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게임업계는 새롭게 전쟁게임 발매를 준비하는 등 반짝특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에이(EA)코리아는 2월11일 출시해 1,000장 정도밖에 팔리지 않던 이라크 배경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시앤시(C&C)제너럴’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4,000장 이상 팔렸다고 밝혔다.위자드소프트는 대테러 진압을 다룬 ‘레인보우6-레이븐실드’를 전쟁 발발 시점에 맞춰 내놓았다.게임뿐만 아니라 장난감 무기를 취급하는 완구업체들도 특수 기대에 판촉계획을 다시 짜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걸프전 때 각종 무기 완구가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급증했던 전례도 있고, 실제 전쟁이 시작되며 병기 완구를 찾는 소매점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교보문고 발표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되면서 등 전쟁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리고 후세인이나 이라크 관련 서적도 잘 팔리고 있고 비슷한 전쟁 관련 새 책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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