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신탁운용, 미래에셋투신운용 등 발빠른 대처...위기관리 필요성 일깨워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문제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어떤 투신사가 믿을 만한가’에 쏠리고 있다. 투신사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요소는 물론 다양하다.이중 해외사례를 놓고 보면 ‘위기관리 능력’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수익률만을 좇아 위험한 투자를 하지는 않는지가 투신사를 고를 때 좋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최근 투신업계에서는 SK글로벌 사태와 관련해 한국투신운용과 미래에셋투신운용이 조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사태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전 미리 관련 채권을 모두 처분할 정도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인 바 있다. 비록 투신업계 전반에 밀어닥친 환매 열풍으로 이들 두 운용사도 피해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전망이 밝은 것은 이런 점에서다.한국투자신탁운용분기마다 채권운용위원회… ‘성과’지난해 12월 황성배 한국투신운용 채권운용부 심사분석팀 과장(36)은 SK글로벌을 방문했다. 그가 본 것은 크게 두 가지.우선 SK글로벌이 SKT 지분을 팔아 차입금을 줄인 점과 수익사업 위주로 영업구조를 바꾼 점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자기자본에 비해 차입금과 지급보증액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었고, 영업수익률이 낮은 점은 부정적이었다.황과장은 보고 느낀 점을 이후 열린 채권운용위원회에서 보고했다. 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워낙 대기업이니 괜찮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후 의견을 모아 SK글로벌을 한투운용의 투자대상인 ‘투자유니버스’에서 제외하자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이 결정이 자칫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었던 한투운용을 ‘수렁’에서 건져준 것이다. 규모는 421억원어치. 투자유니버스에서 뺀 이후 운용역들은 3월11일 SK글로벌 분식회계 발표가 있기 전 이 채권을 모두 처분했다. 이런 결정을 가능하게 한 이들의 시스템은 어떤 것일까. 가장 큰 특징은 채권운용위원회를 두고 어떤 종목에 투자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이 위원회에는 사장을 비롯해 주식 및 채권운용부서장 등이 참여한다. 안동규 한투운용 채권운용전략실장은 “예전만 해도 채권시장은 만기만 잘 맞추면 됐던 까닭에 특별한 관리가 필요없었다”며 “지금은 매일 시가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위험 헤지를 위한 선물도 도입됐고 변동성도 커지는 등 예전과 같은 전략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해졌다”고 위원회 설립의 의의를 설명했다.다시 말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채권운용을 담당하는 펀드매니저가 기업을 심사하고 매매까지 하는 ‘만능’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즉 펀드매니저는 순수하게 펀드를 운용하는 역할만 담당하며 채권분석과 심사분석 등의 일은 따로 심사팀을 두고 진행하고 있다.구체적으로는 채권운용전략실 아래에 전략팀과 심사팀을 따로 두고, 서로 독립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이후 전략실에서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채권운용부에서 이를 참고해 실제 포트폴리오를 운용한다.이동진 한투운용 홍보팀장은 “SK글로벌 사태 이후 우리의 시스템이 여러 투신사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며 “채권운용규모만 14조원대에 이르는 등 시장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믿고 맡긴다’라는 신탁의 기본개념에 충실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미래에셋투신운용신속한 의사결정 ‘일등공신’“어느 정도는 운도 따랐죠. 어느 누가 신용등급 A가 투기등급으로 폭락하리라 예상했겠습니까.”김경록 미래에셋투신운용 채권운용본부장(40)의 말이다. 겸손한 듯 보이는 이 말에는 사실 미래에셋투신이 ‘내던진’ SK글로벌 채권을 매수한 어느 기관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다. 3월 초 매도한 채권은 모두 100억원 규모.채권 매매업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1개’라고 표현될 만큼 규모는 크지 않았다. 다만 이 매도를 통해 미래에셋투신의 ‘기동력’을 엿볼 수 있었다. 회사가 SK글로벌 채권을 매도한 것은 ‘분식회계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측보도가 막 나오던 때였다.급히 채권펀드매니저, 심사분석역 등을 소집해 회의를 가진 김본부장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과감히 팔기로 결정했다. 비록 SK글로벌 문제가 큰 소동 없이 넘어갈지언정 분식회계 의혹을 산 회사의 채권을 갖고 있다는 불확실성이 싫었기 때문이다.결국 1년여 전에 산 가격보다 5,000만원을 밑지고 팔았지만 이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미래에셋투신운용이 발빠르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이에 대해 김본부장은 우선 펀드매니저인 김성진 채권운용팀장에게 공을 돌렸다.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경우 주저하고 관망하기 쉽지만 손해를 보는 가격에도 과감하게 매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김본부장은 의사소통이 신속한 점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사안이 발생하면 보고서를 쓰거나 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반면 팀원을 재빨리 구성해 신속하게 결정합니다. 이런 점 덕분에 남보다 일찍 채권을 매도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최근 김본부장이 아쉬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카드채와 관련된 것이다. 미래에셋투신은 비록 카드채에 대해 투자자들이 과잉반응을 보인다는 분석이 있음에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만큼 조금씩 물량을 줄여나가자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우선 불확실성이 큰 장기채를 모두 팔았으며 최근 단기채도 줄이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카드채 부실 문제가 불거져 나와 이를 팔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는 한편 정부에서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MMF 제도 개선’에 대해서 찬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을 편입해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죠.따라서 정부가 MMF에 편입될 수 있는 채권의 신용등급을 더욱 올려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투신권의 발전에도 한몫을 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투신사들도 앞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돋보기 / 삼성투신운용 사례위기관리 ‘일등’, 환매사태 ‘속수무책’삼성투신운용 역시 문제가 된 SK글로벌 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업계에서는 3월11일 검찰 발표 전까지 많은 물량을 해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삼성투신운용의 대부분의 상품을 판매하는 삼성증권은 “SK글로벌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은 3월11일 전체 수익증권 판매잔고 대비 0.29%”라고 밝혔다.대략 삼성증권의 수익증권이 25조원대였음을 감안할 때 이 물량은 약 725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삼성증권은 다양한 투신운용사의 상품을 판다. 따라서 삼성투신운용의 펀드에 포함된 SK글로벌 채권은 725억원보다 훨씬 적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럼에도 삼성투신운용의 관계자는 ‘비결을 알려달라’는 인터뷰 요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지금 회사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투신협회 자료에 따르면 삼성투신운용에서 3월11일부터 3월19일 사이에 빠져나간 MMF 잔고는 무려 2조2,470억원.바로 이 점이 삼성투신운용이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였다. 비록 업계에서는 ‘위험관리 시스템 넘버원’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 환매사태에는 어쩔 수 없는 삼성투신운용의 고민을 엿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