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1000일 이랜드

1990년대 후반 이랜드(회장 박성수)는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다른 의류회사들과 마찬가지로 IMF 외환위기 속에서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을 맞는다. 80년 신촌 이대 앞의 2평짜리 가게에서 출발해 승승장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것.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던 직원들이 떠나고, 창고에는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전국의 각 대리점들은 더 이상 영업을 못하겠다며 하나둘 문을 닫았다. 이응복 부회장은 “이랜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고했다.(관련인터뷰 28·29쪽) 하지만 이랜드는 그리 호락호락한 회사가 아니었다.2000년 이전 : 1997년 박회장은 구조조정본부를 설치하고 대신증권 출신의 조희상 전무(CFO)에게 본부장을 맡긴다. 의류업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에 앞서 조전무는 회사 전반에 대한 실사를 벌인 끝에 현금흐름 등 회사시스템에 많은 문제점가 있다고 보고했다.이후 구조조정본부는 대대적인 회사정비에 착수한다. 이 와중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회사는 큰 회오리 속에 싸인다. 이후 회사측은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 28개의 계열사를 8개로, 사업부 역시 72개에서 51개로 대폭 줄였다. 신사복과 숙녀복 부문은 아예 퇴출시켰다. 인원감축도 단행해 3,600여명을 1,800여명으로 50% 줄였다.이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재무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외자유치를 추진해 98년 8월 미국의 워버그 핀쿠스로부터 3,200만달러를 유치한다. 또 99년 4월에는 아리랑구조조정기금에서 333억원을 지원받는다. 적자 사업부서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재무구조를 안정시키면서 99년 이후 회사는 서서히 회생의 가닥을 잡아갔다.2000년 3월 : 한고비를 넘긴 이랜드는 재도약의 발판을 준비한다. 21세기를 맞은 2000년 3월 박회장은 대내외에 지식경영을 선포하고 장광규 전무에게 실무를 맡긴다. 혁신의 키워드로 지식경영을 선택했던 것.이후 이랜드는 박회장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회사 전반에 지식경영을 뿌리내리는 데 노력했다. 성과관리(BSC) 개념을 도입해 사업부와 팀, 개인별로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했고, 지식관리(KMS)를 통해서는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개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특히 물류과정상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한 것과 1억원 매장 만드는 노하우 등은 사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능력 있는 사원을 뽑기 위해 열린 채용도 도입했다.채용에서 학력,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았고 여성과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도 배제했다. 정희순 상무는 “직원교육도 주입식이 아닌 체험 위주로 바꿔 신입사원 연수를 중국에서 실시하는 등 많은 변화를 꾀했다”고 소개했다.2001~2002년 : 2000년 내내 새로운 평가방법 정착과 직원들의 지식화에 매달렸던 이랜드는 2001년 초 함박웃음을 짓는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크게 증가하는 등 기대이상의 성과가 경영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특히 회사측의 시도에 반신반의했던 직원들의 인식변화는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장광규 전무는 “1년 내내 새로운 시스템이 성공을 거둘까 걱정을 했는데 2001년 초 이제는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2001년 말 회사측은 당초 약속대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일부 부서는 무려 1,100%를 타갔다. 자연 회사에는 활기가 넘쳤고,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임직원들 사이에 지난날의 어려움과 장래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2003년 1월 : 회사를 탈바꿈시킨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자고 주문한다. 이제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만들 시점이라고 여겼던 것. 이응복 부회장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화의 초석을 다지자”고 직원들을 독려한다.이랜드 경영진은 지난 3년간 큰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일부 직원은 아직 회사가 추구하는 혁신작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세계화라는 숙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3월26일 만난 이부회장은 “브랜드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지금 이랜드 전체 구성원이 해야 할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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