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군수업체에 70억달러 지원

전통적으로 군수산업에 크게 의존해 온 실리콘밸리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이라크전쟁’을 전후해 주문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버블이 꺼진 지 3년 가까이 침체를 겪어온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일감’이 생긴 것이다.이라크전쟁 특수를 누리는 대표적인 회사가 사비테크놀로지. 전파를 이용한 물자추적시스템(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ㆍRFID)을 개발,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공장을 3교대로 가동하고 있다. 미군이 이라크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하는 작업을 돕기 위해 직원도 10~20명을 늘렸다. 지난 2월에는 미국 국방부와 9,000만달러 규모의 국방부 프로젝트 연장 계약을 맺었다.RFID는 제품이나 포장상자, 컨테이너 등에 제품에 관한 정보를 담은 소형 칩을 넣어 물자를 관리하는 시스템. 컨테이너나 각 물품에 붙어 있는 태그로부터 내용물에 관한 정보를 받아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전세계 40개국의 400여개 지역에서 2만7,000여개의 화물 컨테이너를 관리하고 있는 미군으로서는 각 컨테이너를 일일이 열어보지 않고도 화물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물자관리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91년 걸프전 때는 2만8,000개의 컨테이너를 일일이 열어 물자를 확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플랜트로닉스도 이라크전쟁의 혜택을 누렸다. 미국 육군으로부터 500개의 무전기용 특수 헤드셋을 4주 만에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 정도를 공급하려면 보통 16주가 걸리지만 이 회사는 전직원을 투입해 48시간 만에 시제품을 만들고 몇 주 만에 제품을 인도했다.노드롭그루먼은 지난 1월 미국 해군으로부터 잠수함에 핵무기 대신 크루즈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하는 사업을 3,400만달러에 따냈으며 새너제이 사무소에서는 레이더 경보 시스템 개발을 수주했다. 윈드리버는 화학무기 탐지용 소프트웨어 700대를 이미 중동지역에 공급했으며 25만6,000대의 주문을 받아놓고 있다.실리콘그래픽스는 최근 국방부와 2,600만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 매출에서 정부 및 군 관련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2~24%선에 머물렀으나 9ㆍ11테러 이후 35%선으로 높아졌다. IBM도 정부 관련 사업이 유일하게 늘어나면서 성장률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실리콘밸리에서는 군수분야가 유일한 돈줄이다. 미정부의 연간 정보기술 예산은 약 600억달러. 메릴린치는 이것이 올해 8%, 내년에는 12%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은 지난해 국방부가 실리콘밸리 지역 904개 기업에 약 40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에너지부도 이 지역에 23억달러나 지출했으며 액수가 집계되지 않은 국토안보부의 지출까지 포함하면 7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실리콘밸리 역사에서 군수산업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금광 열풍이 채 가시기 전인 1853년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조선산업이 발달했으며 2차 대전 때 조선업은 고용규모가 24만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HP도 군용 계측기가 성장의 발판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냉전시대에는 우주항공분야가 크게 성장했다. 특히 록히드마틴은 스탠퍼드대 출신의 우수인력을 바탕으로 방위산업 분야에서 급성장했다. 냉전이 끝나면서 실리콘밸리 경기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87~94년에 5만8,000명이 직장을 잃었다.방위산업이 위축된 실리콘밸리에 정보기술과 인터넷이 잠시 주력으로 자리잡았으나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크게 위축된 실정이다.이제 실리콘밸리는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군수산업이 재도약의 디딤돌이 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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