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본고장 이탈 리아 뚫은 ‘도도한’ 여장부

어린이 안전 최우선 고려한 디자인으로 승부, 유럽 . 미국 등 해외진출 적극 추진

도도(dodo). 프랑스어로 ‘자장자장’이라는 말이다. 엄마가 어린아이를 재우면서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정감 어린 말이다. ‘도도’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어린이용 가구의 대표브랜드를 뛰어넘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도도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어린이 유아용품회사인 치코(Chicco)가 선택한 제품이기도 하다.이 같은 도도가구의 성공은 여성기업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길준경 사장(43ㆍ사진)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길사장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지난 82년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에 유학, 2년 동안 실내건축을 전공한 실력가다.84년 귀국한 그녀는 기업체에 들어가 인테리어전문가로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져가던 길사장은 어느날 “가구사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뛰쳐나왔다. 91년 초 도도가구를 세우고 어엿한 사장이 됐다.주변에서는 “여자가 사업은 무슨…, 그것도 거친 남자들 속에서…” 하며 말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내 길을 가겠다”며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길사장이 가구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배경은 이렇다. 그녀에게는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다. 하느님이 아들에게 준 선물이다. “줄 수만 있다면 내 것을 다 주고 싶다”며 눈물을 삭이는 그녀다.듣지 못해 눈을 마주보며 몸으로 말해야 하는 답답함으로 가슴을 시커멓게 태운 날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들이 자주 책상서랍 모서리에 찍혀 다치는 것을 볼 때마다 엄마로서 가슴이 아팠어요.” 길사장은 다치지 않게 만든 책상을 사주겠다며 달포 가량 전국의 가구점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사업은 처음부터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길사장은 회사를 설립한 후 밤을 꼬박 새워가며 직접 그린 어린이 가구 디자인을 갖고 가구회사로 찾아갔다. “주문요청만 하면 다 될 줄 알았어요.” 찾아가는 회사마다 “손이 많이 간다. 아이들 가구라 판매가 안될 거다”며 거절했다.길사장은 직접 만들어볼 요량으로 기능공을 모았다. 그러나 “여사장 밑에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일하다 맘에 안 들면 망치를 집어던지고 사라져버린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사업을 왜 시작했나 하는 후회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죠.”91년 6월 서울 논현동에 40평 규모의 매장을 내고 침대, 책상, 서랍장 등 자신이 직접 만든 어린이용 가구를 내놓았다. 가격은 좀 비싸더라도 어린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무독성 페인트로 칠을 하고 곡면을 수작업으로 꼼꼼히 만들었다.“문을 열던 날 얼마나 설레었는지 몰라요.” 문을 열자 손님이 밀려 들었다. “수입가구냐. 디자인이 예쁘다. 아이에게 사주고 싶다” 등등 기대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길사장은 “상담을 하느라 입이 부르텄을 정도였다”고 말했다.첫날 이런 일도 있었다. 낮에 엄마가 딸과 함께 와 “너무 예쁘다”며 책상을 사갔다. 그런데 저녁에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애들 책상이 어른 것보다 비싼데 바가지 씌운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만든 동기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그는 서랍장까지 사갔다. 이후 도도의 열성팬이 됐다.이 일이 있은 후 길사장은 “성공예감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해 연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이상을 찾아가 얻어낸 성공이었지만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입점 후 가구매장 중 최고의 매출을 올렸어요. 매장 앞에는 구경하려는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이 같은 소문은 다른 백화점 입점 담당자들에게 알려졌고 이듬해부터 백화점에서 입점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길사장은 절대 무리하며 매장을 늘리지 않았다. 직영매장을 원칙으로 매년 3~4개씩 늘려갔고 지금은 13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길사장은 “올해 광역시를 중심으로 5개를 더 개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IMF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가구시장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국내 시장만 갖고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시장을 뚫기로 했다. 그녀가 공략대상국으로 삼은 곳은 가구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시장.“이탈리아에 수출하는 가구라면 기술, 디자인 면에서 최고제품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그래서 유명 가구박람회를 공략했다. 독일의 쾰른가구박람회와 이탈리아의 밀라노가구박람회 참가를 진행했다.도도가구는 지난 98년 이들 두 박람회에 참가신청서를 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담당자들은 “이름도 없는 한국의 조그만 회사가…”라고 말끝을 흐리며 만나기를 거부했다.길사장이 여기서 포기했다면 성공한 여성기업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현지에서 살다시피 하며 조직위 담당자를 찾아가 제품에 대한 설명을 했다. 1년여를 매달린 끝에 쾰른가구박람회 조직위로부터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조직위로부터 독창성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그녀는 설명했다.이렇게 해서 2000년 처음으로 쾰른가구박람회에 참가했고 2001년부터는 밀라노가구박람회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도도가구는 첫해에 공식적인 부스가 없어 통로 옆에 임시로 마련된 부스로 참가했지만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이듬해부터는 메인부스를 받아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매년 조직위가 먼저 참가요청을 해오고 있다”며 길사장은 웃었다. 도도가구는 국내 가구업체 중 유일하게 독일의 쾰른가구박람회와 이탈리아의 밀라노가구박람회에 출품하고 있는 업체다.도도가구는 세계적 유아용품업체인 이탈리아 치코사에 지난해 밀라노가구박람회 기간 중 전시했던 아동용 소파를 팔았고 추가 수출계약까지 했다. “최근 들어서는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 등지에 현지인들이 전시쇼룸을 낼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좋아요.”도도가구는 특히 지난해 설립한 미국 현지법인 도도아메리카를 통해 내년까지 미국 전역에 20개의 직영점을 내기로 하고 준비 중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5년 내 수출 1,000만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도도가구는 올해부터 침장류, 조명, 옷걸이 등 어린이용 소품을 유럽지역에서 수입해 파는 등 어린이 토털인테리어업체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회사 로고 변경 등 CI작업을 완료했으며 4월부터는 매장도 새 단장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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