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채무 모두 해결해 드립니다”

사키오카 사장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영업신념에서 비롯…지난해 경상이익 94억엔

30%에 가까운 고율의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본의 소비자금융업은 ‘금융사각지대’에서 ‘불황’을 먹고사는 업종이다.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가 부족해 은행, 보험사 등 저금리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쓰기 어려운 채무자들이 단골고객이다. 자금시장이 얼어붙고, 샐러리맨과 영세상공인 등 일반 서민들이 돈 가뭄에 목이 탈수록 더 각광받는 비즈니스다.그러나 일본의 소비자금융업계는 최근 강한 맞바람에 노출돼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지난해까지 고성장 가도를 달리며 콧노래를 부른 것이 사실이었지만 나라 전체의 불황 주름살이 너무 깊어지자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다중채무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지자 아예 법의 힘을 빌려 신용사회로부터의 퇴출을 자청한 자기파산자 수는 2002년 한 해 동안 일본 전역에서 2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금융계 관계자들은 자기파산자의 대다수가 소비자금융업체들과 직간접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 등 저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태에서 기존에 진 빚을 갚을 날짜가 돌아오면 채무자들은 으레 소비자금융업체의 창구를 두드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은행과 소비자금융업체를 전전하며 ‘돌려 막기’를 시도하다 두손을 드는 것이 자기파산자들의 공통된 코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기파산자가 늘어날수록 소비자금융은 골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사정 또한 소비자금융업체들에 역풍을 안겨 주고 있다. 4대 소비자금융업체 중 하나인 프로미스는 2002년 10~12월의 3개월간 대출창구를 찾아온 신규고객이 전년 동기보다 무려 18%가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불황을 먹고사는 업종이라지만 경기가 너무 나빠지자 소비자들이 ‘돈 빌리기’를 겁내며 지갑 끈을 바짝 동여매고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9월 뉴욕증시에 상장금융계 관계자들은 신규고객 감소는 영업기반에 직격탄을 날리게 돼 있다며 이 경우 기존고객에 대한 대출확대로 공백을 메워야 하지만 채권부실화의 공포가 소비자금융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이에 따라 매년 수백억엔씩의 순익을 올리며 타금융기관들의 부러움을 사왔던 호시절은 막을 내리고 3월 말 결산부터는 소비자금융업계에도 마이너스의 그림자가 짙게 깔릴 것이라고 이들은 진단하고 있다.대출잔액 등 외형 규모로 본 실력은 중견업체에 불과하지만 ‘닛신’은 성장템포와 내실, 그리고 외부에 비친 성적을 말해주는 주가와 영업전략 등에서 일본 소비자금융업계의 역풍을 보기 좋게 비켜가고 있는 업체다.1960년 마쓰야마라는 지방도시에서 첫 간판을 올린 닛신은 2002년 3월 결산기의 대출잔액이 1,500억엔 수준에 머물렀다. 시장에 풀어놓은 돈이 1조엔을 넘는 소비자금융업체들이 수두룩한 현실에 비춰 본다면 덩치 자체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사이즈다.하지만 이 업체의 경상이익은 대출잔액의 6%가 넘는 무려 94억엔에 달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로 본다면 대출잔액은 21%, 경상이익은 2.3%가 늘어났다. 증시의 평가도 만만치 않다.최대업체인 다케후지의 주식 시가총액이 지난 99년 이후 마냥 내리막길을 달리고 도쿄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이 맥없이 무너진 위기 상황에서도 닛신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있다. 일본 소비자금융업체로서는 사상 최초로 2002년 9월 뉴욕증시에 상장을 달성했을 만큼 해외투자가들로부터도 저력을 인정받고 있다.닛신의 독주와 관련, 전문가들은 타 업체들이 고개를 돌린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든 특화전략과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주관과 신념이 거둔 성공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고이율의 돈을 빌려주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소비자금융업체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의지해 돈을 갚거나 죽도록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학생들에게 돈을 갖다 쓰라고 유혹하는 겁니다. 나는 나의 회사에서도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경계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이끌고 있는 올해 41세의 사키오카 히데오 사장은 대학입시 공부를 위해 도쿄로 올라와 있던 20여년 전 소비자금융업체의 꾐에 빠져 큰돈을 빌려 쓴 후 아주 쓴맛을 본 경험을 갖고 있다.용돈이 궁해 5만엔을 빌리러 간 그에게 소비자금융업체는 ‘괜찮다’며 30만엔까지 갖다 쓰라고 권했고 순간적 충동을 못이겨 거액의 채무자가 된 그는 그후 죽도록 고생을 했던 것. 그는 혼이 날까봐 집안어른들에게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 채 눈덩이처럼 불어난 원리금을 갚기 위해 공사현장 등에서 6년간 아르바이트와 씨름해야 했다.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장사임은 분명하지만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영업을 한다는 닛신의 컬러와 주관은 사키오카 사장의 이 같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닛신의 영업전략 중 타 업체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다중 채무를 하나로 일원화한 대출이다. 여기저기에서 빚을 걸머진 다중채무자에게 다른 곳의 대출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돈을 지원해주고 채무관계를 닛신 한곳으로만 집중시키는 영업방식이다.대출금리 연 20%대로 크게 낮춰타 업체들과의 채무, 거래 관계를 청산하고 자금차입 창구를 한곳으로 모으도록 하는 닛신의 전략은 경쟁업체들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한 방해전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닛신은 영세 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 지나친 고리로 지난 99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자 오히려 이때부터 돈 없는 상공인들을 위해 자금지원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쳤다.닛신은 다중채무를 일원화한 대출의 금리를 연 20%대로 묶어 놓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40% 이상을 받아 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우대다. 보증인을 세우는 방법과 대출회수 시스템도 독특하다.다른 곳에서 빌려 쓴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을 만큼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업내용이 나빠도 보증인만 세운다고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가 쓰러졌을 때 보증인이 입을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그대신 닛신은 대출신청인의 채무상황과 연체시의 변제방법, 보증을 설 때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사전에 낱낱이 공개하고 협의한 후 돈을 내준다. 대출기간을 막연히 정하는 타 업체들과 달리 60개월 동안 원리금을 균등분할해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대출 후에는 다른 곳에서 쓴 돈을 틀림없이 갚았는지 사후확인에 나선다. 이 같은 대출에 주력하는 이유에 대해 사키오카 사장은 채무자를 하루라도 빨리 빚의 수렁에서 구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채권자를 하나로 단일화하면 채무자의 걱정이 덜어지는 한편 닛신에 세울 보증인을 찾는 과정에서 채무자 자신도 모르게 타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니 새로운 인생설계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영세상공인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려는 닛신의 전략은 타 금융기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은행 및 타 대형회사들과의 제휴로 이어지고 있다.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 대한 대출심사기법과 정보수집에서 아무래도 한계를 안고 있는 타 금융기관들이 닛신의 힘을 빌려 영세상공인들에 대한 시장 개척활동 강화에 나선 것.신세이은행은 2002년 11월 닛신과 75대25의 비율로 신세이비즈니스파이낸스를 설립한 후 닛신의 노하우를 활용, 저인망식 고객잡기에 나섰다. 닛신은 산요전기의 신용판매 자회사에 12명의 직원을 파견시켜 영업과 대출채권 회수에서 그동안 쌓은 실력과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대형금융기관에서 푸대접을 하고 물리친 고객 중에도 우량거래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잠재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고 한푼이라도 더 싸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과대선전과 무리한 자금회수로 따가운 비판을 받는 업체들이 즐비한 일본 소비자금융업계에서 사키오카 사장과 닛신은 별난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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