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확연하게 구분돼 ‘흥미진진’

어렸을 적 전쟁만화를 유독 좋아했다. 지금은 활동을 접은 만화가 이근철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당시 미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무스탕이고, 일본군 주력기는 제로이며, 독일군 주력기는 메사슈미트라는 따위의 시시콜콜한 상식을 얻은 곳도 이근철의 전쟁만화였다.일본에서는 고바야시 모토후미라는 작가가 독보적이다. 같은 전쟁만화는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꼼꼼한 고증이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반적으로 우익 논리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지만, 어디서 이처럼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전쟁에 관한 한 무불통지의 지식량을 자랑한다.요즘은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전쟁만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황무순씨의 정도가 눈에 띄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영화도 마찬가지다.한때 ‘미군이 독일군을 쳐부수거나’ ‘미군이 베트콩을 때려잡는’ 전쟁영화들이 범람했지만 지금이야 1년에 한 편 구경하기가 힘겹다. ‘우후죽순’이 ‘가뭄에 콩 나듯 한’ 지경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껏해야 정도일까.이처럼 만화나 영화가 전쟁을 외면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대중이 전쟁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는 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얻을 리 없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다.그럼에도 애오라지 전쟁 일으킬 궁리만 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깝다. 최근 미국 국방성 정책에 이론적 뒷받침을 한다는 한 전쟁전문가의 ‘펜타곤의 새로운 지도’라는 글을 우연한 기회에 읽은 적이 있다.세계는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핵심지역’과 후진적이고 비민주적인 ‘공백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공백지역은 끊임없이 핵심지역의 안위를 위협하므로 이를 제압해야 하며, 그 일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라는 내용이었다.지독스럽게 자기중심적인 이론이었지만 설사 그 주장이 구구절절 옳다 해도 공백지역을 제압하는 전쟁에는 상식적인 순서가 있다. 이번의 전쟁이 그 순서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전쟁만화는 확연히 구분된 선과 악이 있었기에 흥미진진하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과 악의 잣대가 복합적이기 이를 데 없는 지금 누가 누구를 선이라 추앙하고 또 누가 누구를 악이라 손가락질할 것인가.이번 이라크전을 보면서 복잡한 세상을 단순한 사람이 지휘하게 되면 피바람이 불기 마련이라는 역사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이 주의 문화행사쿨베리 발레단 4월3일(목)~5일(토)/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6시/LG아트센터/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고정관념을 뒤엎는 유머와 관능, 철학이 담긴 발레공연. 스웨덴 쿨베리 발레단의 안무가 마츠 에크(Mats Ek)는 유명 고전작품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해 세계 무용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그에 의해 다시 태어난 에서는 토슈즈를 벗어 던진 맨발의 대머리 남자 백조들이 춤추고, 용감한 지그프리트왕자 대신 나약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찬 왕자가 등장한다. 자유롭고 코믹한 백조군단의 뒤에는 의존적인 한 남자의 내면적 성숙과정이 내재돼 있다. (02-2005-0114)오페라 = 4월5일~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제누스오페라단이 창단기념 작품으로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의 를 선보인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오페라전문가들이 합심해 만든 무대. 파올라 그레고리오, 시모나 베르티니, 마리오 네오나르도 등 출연. 자코모 로프리에노, 지오바니 바르톨리 지휘. (02-574-8060)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 6월30일까지 유시어터. 백설공주를 짝사랑하는 난쟁이의 아픔을 그린 연극. 극단 유, 박승걸 각색ㆍ연출, 주인공 반달이에 최인경 권혁미 교체출연. (02-3444-0652)길 샤함 바이올린 독주회 = 3월31일 한전아츠풀센터. 르클레어 ‘2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모즈코프스키 ‘2대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바이올린 아델 앤소니, 피아노 김대진) 외.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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