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능 ‘No’, 다기능 ‘Yes’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임희승씨(27)는 최근 한국후지필름의 ‘파인픽스 30i’라는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30만원에 이 기종을 구입한 임씨는 본전을 톡톡히 뽑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기능 외에 MP3플레이어, 녹음기능도 결합된 복합기이기 때문이다.“크기가 작아 매일 핸드백에 넣고 다녀요. 출근할 때는 MP3 기능으로 음악을 듣고, 회사에서는 중요한 회의를 녹음해요. 필요할 때마다 사진도 찍고 음성이 포함된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죠. 비슷한 가격대의 디지털카메라 대신 복합기인 ‘MP3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한 제 선택이 탁월하죠?”두 가지 기능 이상이 결합된 퓨전제품 ‘복합기’가 뜨고 있다. 복합기의 진화속도도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다. DVD(Digital Versatile Disk)와 VCR가 결합된 ‘DVD콤보’나 MP3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가 결합된 제품은 고전적인 복합기로 여겨질 정도다.이 같은 복합기들의 탄생배경에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가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란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융합ㆍ복합돼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은 크게 휴대제품과 사무용품, 가전기기로 나뉜다.휴대제품 중 디지털카메라, PC카메라, MP3플레이어, 음성녹음기는 결합이 자유롭다. 메모리ㆍ중앙처리장치ㆍ입출력장치로 이뤄지는 기본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에 MP3플레이어와 녹음기가 결합된 한국후지필름의 ‘파인픽스’(Finepix) 30i와 40i 시리즈는 한국후지필름의 디지털카메라 중 10%를 점유한다.카시오의 ‘MP3 디지털카메라 녹음기’ 제품도 지난해 6월 출시돼 1만대 이상 판매됐다. 김영민 카시오 마케팅부 주임은 “디지털카메라 기능만 있는 제품의 점유율이 30%인 반면, 디지털카메라에 MP3플레이어와 보이스레코더가 결합된 제품의 점유율은 70%에 이른다”고 전했다.27만원 상당의 올림푸스 ‘DM-1’은 디지털녹음기와 MP3플레이어를 복합한 제품. 임현정 올림푸스 마케팅전략팀 대리는 “목소리를 압축해 저장하는 디지털녹음기 기능을 반대로 적용하면 압축된 MP3를 재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가 결합된 ‘폰카’(폰카메라)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노키아, 소니에릭슨 등 휴대전화생산업체들이 지난해 출시한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가 국내에서만 130만대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했다.올해는 휴대전화의 국내 전체 수요인 1,500만대 중 50%에 이르는 750만대가 카메라 내장형일 정도로 급증할 전망이다.다른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처럼 ‘폰카’ 역시 진화를 거듭한다. 휴대전화에 MP3플레이어 기능을 첨가한 ‘MP3폰’, PDA를 복합한 ‘PDA폰’ 등에 이어 캠코더가 결합된 ‘캠코더폰’까지 등장해 제품간 경계 허물기가 가속화되고 있다.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말 20초의 동영상이 촬영되는 ‘캠코더폰’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30분 분량의 동영상 촬영과 편집이 가능한 제품을 출시했다. 삼성전자측은 “올해 전체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10~15%에 달하는 100만~200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돼 카메라폰에 이어 또 한 번의 빅히트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이밖에 휴대전화에 고성능 초소형 TV수신기 및 안테나를 채용한 TV폰은 지난 99년 출시된 이후 단종됐으나 올 상반기 안에 삼성전자가 신제품을 재출시할 예정. 역시 단종됐던 손목시계형 휴대전화 ‘워치폰’도 복합기 붐을 타고 국내 시장에 재출시될 계획이다. 텔슨이 4월부터 판매할 예정이고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에 유럽시장에 우선 판매한 후 국내 시장의 상황을 엿볼 전략이다.사무용품에도 ‘퓨전’ 바람이 불고 있다. 후지제록스가 99년 출시한 디지털복사기 기반의 프린터, 팩스, 스캐너 융합제품인 ‘에이블(Able) 시리즈’는 후지제록스의 전략상품이다.윤도용 후지제록스 팀장은 “96년 디지털복사기를 출시했을 당시 디지털 제품의 점유율은 1%도 안됐다”며 “그러나 점유율이 점차 상승해 지난해는 복사기 기반의 디지털복합기가 전체 복사기 중 25%에 이르렀고 올해 말에는 융합제품이 50~55% 이상 점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제록스와 더불어 신도리코, 롯데캐논, 삼성전자, 한국HP, 엡손코리아 등도 프린터와 복사기, 팩스, 스캐너 복합 사무기기 판매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가전기기 시장도 융합 트렌드를 피해갈 수 없다. 삼성전자 ‘DVD콤보’와 LG전자 ‘DVD콤비’, 대우일렉트로닉스의 ‘DVD콤보 투플러스’ 등 DVD와 VCR 복합기는 50만~70만원대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다.삼성 DVD콤보는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50% 가량 증가했다. 2002년 초에 출시된 후 50여만대가 판매된 LG전자의 DVD콤비는 70만원대로 고가임에도 현재 DVD플레이어와 VCR를 합친 전체매출 가운데 30%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의 콤보 투플러스는 지난해 월 평균 6,000대 이상이 팔려나갔다.토스터와 전자레인지를 하나로 합친 ‘토스트 전자레인지’도 편의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상품을 2001년 9월 출시한 LG전자의 경우 전체 전자레인지 판매량 중 토스트 전자레인지의 비중이 증가해 현재 35%에 이른다.맞벌이부부에게 특히 인기를 있다는 후문. 삼성전자의 ‘토스트 플러스 전자레인지’는 지난해 100%의 매출증가율을 나타냈다. 대우일렉트로닉스가 내놓은 ‘라디오 전자레인지’와 ‘쌀 저장 김치냉장고’도 인기 퓨전제품이다.쌀 저장 기능을 첨가한 김치냉장고는 출시 이후 월 2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보이고 있으며 올해 들어 수요가 두 배 가량 늘었다. 라디오 전자레인지는 지난 2월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30% 증가했다.정일재 LG경제연구원 부사장은 “복합제품이 소비자에게 주는 경제성과 편의성이라는 효용이 커져 개별기능의 단품을 사는 것보다 복합제품을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해질 때 소비자의 구매 의욕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노무현 대통령 경제정책 제대로 읽기재정 조기집행과 경기활성화정부는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상반기 중 예산 집행을 늘리기로 했다.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중소기업 자금지원과 지방교부세 지급을 앞당겨 상반기 중 2조5,000억원의 재정자금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정부가 예산을 앞당겨 쓰는 ‘재정 조기집행’은 일종의 경기부양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업무보고를 받은 후 “재정의 조기집행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을 제도적으로 해소하라”고 지시한 것은 경기조절 수단으로써의 재정 효과를 높이라는 얘기다.정부가 씀씀이를 늘리면 누군가의 소득이 그만큼 늘어난다. 늘어난 소득의 일부는 다시 소비로 쓰여 또 다른 누군가의 소득으로 잡힌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면 시중에 돈이 많이 돌기 때문에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그러나 재정 지출 확대가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측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기업과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지만 한편에서는 정부의 저축이 그만큼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정부가 돈을 쓰기 위해 은행예금을 인출하면 민간에서 빌려 쓸 자금이 부족해지고,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다른 경제주체들이 금융시장에서 끌어다 쓸 가용자금이 줄어든다. 재정지출이 늘어날수록 시중 자금이 고갈되고 실질이자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민간부문을 내쫓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나타난다.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물가상승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금리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소비심리나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정부 돈이 민간으로 흘러들어도 은행이나 금고로 곧바로 들어가 사장될 수도 있다.자본시장이 개방되고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경제에서는 재정지출의 효과가 더욱 제한적이다. 199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과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원으로 일했던 마커스 플레밍의 이론(Mundell-Fleming model)에 따르면 ‘작은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에서 정부지출 증가는 환율을 떨어뜨려 수출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경기를 살리는 데는 기여를 하지 못한다.정부 지출(소비) 증가 → 정부와 민간부문을 포함한 국민저축 감소 → 해외투자 감소 → 달러수요 감소→ 원화가치 상승(환율하락) → 국산품의 달러환산가격 상승 → 수출감소로 이어져 정부 지출 확대의 긍정적 효과를 완전히 상쇄한다는 설명이다.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충분하게 ‘작은 경제’인지, 환율변동과 자본의 유출입이 완벽하게 자유로운 ‘개방경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분명한 것은 경제가 개방될수록 재정지출 확대가 경기 활성화에 반드시 기여한다고 장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상반기 중 예산지출을 늘리는 만큼 하반기에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재정 조기집행은 일종의 ‘조사모삼’(朝四暮三)이기도 하다. 하반기에 정부 지출을 늘리려면 재정의 건전성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것도 정부가 고려해야 할 문제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