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카드채로 본 투신사들의 위기관리 현주소

독립적 심사분석 기능 도입 등 중장기적 체질개선 절실

중소기업 사장인 김모씨. 요즘 매일 증권사 지점에 출근 도장을 찍을 정도다. 다름아닌 머니마켓펀드(MMF) 때문이다. 지난 3월11일 검찰의 SK글로벌 분식회계 발표 이후 MMF는 일주일간 김사장의 최대 골칫거리였다.“증권사에서 인출한도를 정하는 바람에 급히 쓸 자금 1억원을 찾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한도도 매일 변하더군요. 하루는 3,000만원이라더니 다음날은 1,000만원 이상은 안된다는 식으로요. 증권사에서도 사과만 할 뿐 뚜렷한 대안은 없는 듯했습니다. 워낙 난감했던 터라 앞으로는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할까 합니다.”투신권 영업기반 ‘휘청’SK글로벌 사태 이후 투신권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김사장처럼 많은 투자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MMF 환매에 나서면서 영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MMF는 투자신탁사(투신사)의 대표적 단기금융상품.단기임에도 은행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최근 미국ㆍ이라크전쟁 및 북핵 문제 등의 정세불안으로 지난 2월19일의 잔고는 전년 말 대비 11조3,325억원이 늘어난 60조8,000억원에 달할 정도였다.반면 SK글로벌 사태 이후 ‘제2의 대우채’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신탁협회에 따르면 3월11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 동안 빠져나간 MMF 잔고는 16조5,87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투신권의 전체 펀드에서 유출된 규모는 18조8,400억원. 대부분의 환매가 MMF에서 이뤄졌다.MMF가 투신사의 ‘효자’상품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우선 MMF의 수익률 구조다. (돋보기 참조) MMF는 대부분의 다른 투신권 상품과는 달리 장부가로 평가된다.대신 시가로 평가한 금액과의 차이가 0.5% 이상 벌어지면 시가평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시중금리가 더 올라 MMF가 시가로 평가돼 손실을 보기 전에 환매한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또 다른 이유는 카드채 위기다. 최근 카드사의 영업환경이 악화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카드채에 대한 불안심리를 갖게 됐고, 이는 카드채가 많이 편입된 MMF 환매요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이런 현상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투신업계의 영업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신사가 워낙 많다 보니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위기의 씨앗이 됐다”며 “MMF의 수익률을 미끼로 법인고객을 끌어들이려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용도가 낮거나 만기가 긴 채권을 편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영업방식뿐만이 아니다. 수조원대에 달하는 채권형 펀드를 불과 한두 명의 펀드매니저가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안동규 한국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전략실장은 “IMF 사태 이전까지는 회사채시장이 보증채 위주로 운영됐기 때문에 채권투자에서 기업을 분석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무보증채로 시장환경이 변한 지금도 당시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이런 문제점이 얽히고 설켜 결국 투자자들의 펀드 대량 환매 소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투자자들이 믿고 신뢰할 만한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 정부, 투신사 할 것 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투신권, 위기관리능력 필요다행스러운 점은 펀드 환매 소동이 그리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대량 환매 소동에는 투자자에게 정확히 얼마를 내줘야 할지를 모른다는 점도 한몫 했다.반면 지난 3월19일 열린 SK글로벌 채권기관협의회를 통해 SK글로벌의 채권단공동관리가 확정됐고, 이를 통해 각 투신사는 SK글로벌 채권에 대해 50% 이상 상각을 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이제는 얼마를 내줘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돼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제거된 셈이다.그러나 이런 ‘전망’에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여전히 환매를 못해준 MMF가 상당수 남아 있다는 점이다. 3월12일 4조9,720억원에 달했던 일일환매규모가 18일에는 1조6,590억원대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 당분간은 MMF 잔고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익명을 요구한 한 투신사 팀장은 “상각비율은 결정됐으나 바로 정상적인 환매가 이뤄지진 못하고 있다”며 “아마도 다음주(3월24일 이후)에나 정상 환매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환매를 원하는 투자자가 계속 몰리면 자금 마련이 힘든 증권사가 이들의 요구에 모두 응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어 그 시기는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아울러 SK글로벌 사태가 터진 이래 거래가 안되던 카드채도 3월19일 거래가 성사되는 등 점차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지금은 카드채 및 SK글로벌 채권 등의 문제에 주목하기보다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투신권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에 주목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많다.신용평가사가 매긴 신용등급에만 의존하지 말고 투신사가 직접 기업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그 하나다. 실제 검찰의 SK글로벌 분식회계 발표 전 나름의 시스템을 통해 이 채권을 모두 처분하는 등 위기관리 능력을 보인 한국투신운용, 미래에셋투신운용 등은 모두 심사분석역(Credit Analyst)이 소신 있게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 있었다.돋보기 / MMF의 수익률 평가는 어떻게 하나금리 급등하면 원금 까먹을 수도머니마켓펀드(MMF)는 장부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시가로 평가한 금액이 장부가와 0.5% 이상 차이가 나면 즉시 시가평가를 채택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금리 급상승기에 잔존만기가 긴 MMF일수록 시가평가로 인한 손실로 수익률이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다음의 사례는 MMF의 시가평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며, 과연 손해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투자자 A씨는 2월1일 예상수익률 연 4.5%인 MMF에 1,000만원을 입금했다. 이 펀드에 포함된 채권의 평균잔존만기는 100일(0.28년)이다.만일 금리가 단기간에 1.79% 상승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이 펀드의 수익률은 0.5%포인트(0.28년×1.79%) 하락한다. 이 경우 시가로 평가했을 때와 수익률이 0.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MMF의 예상수익률은 연 4.0%로 낮아진다.만일 이런 상황이 A씨가 가입한 지 한 달이 된 2월28일에 발생했다면 A씨는 원금손실을 입게 된다. 한 달 동안 A씨가 MMF 가입으로 올린 수익률은 0.375%(4.5%/12)인 반면, 그동안 입은 손실은 0.5%이기 때문이다. 결국 A씨가 2월28일에 환매신청을 하면 그는 998만7,500원(1,000만원×(0.5%-0.375%))을 돌려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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