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통신·의약품 시장 ‘경계주위보’

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고율의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를 판정하는 등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한국에 대한 전방위 통상공세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특히 이번 공세는 세계 경기가 극도의 침체를 보이는데다 하이닉스반도체가 회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와중에 불거졌다는 점에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계관세는 수출국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이 자국 관련산업에 미치는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수입국이 수입품에 부과하는 특별관세를 의미한다.미국 상무부는 4월1일(현지시간) 한국산 D램 반도체를 대상으로 한 상계관세 예비조사에서 정부 보조금이 지급된 것으로 판정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반도체가 미국에 직수출하는 D램 반도체에 대해 57.37%의 잠정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0.16%의 상계관세를 예비판정했다.물론 이번 예비판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실사를 거쳐 오는 6월14일쯤 정식 상계관세율을 결정하고, 실제 관세부과 여부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판정이 내려지는 7월29일께 확정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예비판정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통상압력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하이닉스 상계관세는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는 4월2일 각각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표,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대외통상 전선에 또 하나의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먼저 USTR는 연례 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WIPI)과 의약품 분야의 미국 기업 지식재산권이 한국 기업들에 의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정부가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인 WIPI를 정하는데 부적절하게 개입한데다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또 의약품의 약관 재평가제도, 최저 실거래가제도, 참조가격제도 등도 미국 제약회사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박에 자동차에 대해서는 관세율(8%)을 철폐하거나 대폭 인하할 것을 요구하는 등 지난해와 비슷한 주문을 했다.정부, 하이닉스 관세율 낮추는 데 총력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문제도 다시 한 번 문제 삼았다. 일례로 제지업체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 여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음을 밝혔다. 미국 제지업계는 최근 한국정부가 일부 업종에 값싼 설비투자금을 지원해주고 설비확장에 세금혜택을 준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주한 EU상의 역시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근무시간, 잔업원칙, 정리해고 등 고용문제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겨달라고 한국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 노동조합의 행동에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하며 근로기준법 안에서 근무시간 등을 탄력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아울러 한국의 검역과 통관절차를 간소화하고, 인사 전산 등 비마케팅 요소를 공동 운영할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모조품에 대한 엄격한 단속, 외국 로펌의 지점설립과 외국인 변호사의 활동 허용, 부동산 실거래 신고를 입법으로 강제, 법인세 연결납세 제도의 조속한 도입 등도 요구했다.이제 문제는 미국과 EU의 통상압력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느냐 하는 점이다. 아직은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를 제외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이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실제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특히 미국측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제지는 앞으로 반도체에 이어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EU와는 반도체 외에 조선문제가 걸려 있다. EU는 지난해 10월 우리 정부를 WTO에 제소한 상태다.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이유에서다.정부는 일단 하이닉스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데 힘을 모을 방침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다른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특히 쟁점으로 떠오른 하이닉스 보조금 부분에 대해 4월 말 미국 실사단을 대상으로 “채권단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금융지원을 했을 뿐 정부 보조금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아울러 여러모로 한국에 부당한 조치가 내려졌다고 보고 WTO에 제소하는 문제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분석유가상승과 스태그플레이션소비자물가가 지난 3월 한 달 만에 무려 1.2%나 올랐다. 이 같은 추세가 1년간 이어진다면 물가상승률이 연간 15.4%에 달할 것이다. 정부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다.물가가 오른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기상악화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했고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한꺼번에 인상됐다. 신학기를 맞아 각종 납입금과 학원비 부담도 늘어났다. 석유류 제품 가격도 뛰었다.물가가 오르면 일차적으로 가계의 부담이 커진다. 동일한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가불안이 서민생활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물가를 잡으려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통화량이 줄어들면 경기가 위축된다.물가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중요한 목표다. 불행하게도 이 두 가지 목표는 서로 상충된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면 경기가 침체되고, 경기를 살리는 데 힘쓰면 물가가 오르는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이를 경제학에서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으로 설명한다. 물가를 세로축에, 실업을 가로축에 배치한 후 밑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 멋진 필립스 곡선이 생긴다.필립스 곡선은 정부의 경제운용 계획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다. 물가상승과 실업의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최적점을 필립스 곡선에서 찾아내는 일이 중요한 정책과제다. 최적점에서 만나는 세로축의 물가상승률과 가로축의 실업률이 정부 경제운용의 목표가 된다.정부는 올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각각 3%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5%대도 이 같은 토대에서 결정됐다.문제는 유가 불안이다. 전쟁으로 석유공급이 급작스럽게 줄어드는 충격(Supply Shock)이 나타나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동시에 물가도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가 대표적인 사례다.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은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동시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높였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최근 “미국ㆍ이라크전쟁이 12주 이상 지속되면 물가가 4%대 초반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전쟁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유가가 어느 정도 오를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책당국으로서는 변화된 상황에서 적정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찾아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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