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제도 7월 시행예정…혼란 우려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딱지는? 신용불량자 딱지.’일정기간 이상 연체한 사람들을 별도로 분류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딱지로 경제활동에 커다란 지장을 받고 있는 사람이 2월 말 현재 전체 경제인구의 13%, 280만8,000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특히 경제활동인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30대와 20대 가운데 각각 83만명과 54만명에게 신용불량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을 방치할 경우 국민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연대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며 “개인워크아웃과 같은 갱생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실제 지난해부터 이런 위기의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면서 제도 마련 움직임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에 맺어진 개인워크아웃 협약은 채권금융기관간 협의를 통해 개인신용불량자의 파산을 막고 경제적 회생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한 것. 당시 워크아웃협약에는 은행, 카드, 상호저축은행, 할부금융, 보험 등 5개 금융권이 참여했다.그리고 이어 지난 12월에는 개인워크아웃제 확대 실시가 발표됐다. 개인워크아웃 신청대상자가 이전의 2단계(3개 이상 금융기관 총채무액 5,000만원 이하 신용불량자)에서 4단계(2개 이상 금융기관 총채무액 3억원이하)로 확대 적용된 것이다.신용불량자 갱생제도, 법제도 정비 필요또 올해 초에는 ‘참여정부’의 인수위가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전면 손질하겠다고 발표했다. 30만원 이상의 대출금을 3개월간 연체하면 전국은행연합회에 자동 등록돼 금융거래의 제약을 받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미국 등 금융선진국처럼 개인별 금융거래정보를 각 금융회사가 따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금융감독원과 개인워크아웃을 담당하고 있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김승덕 팀장은 “지난 3월22일 이러한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시민단체, 금융회사와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며 “4월 19일까지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신용불량자 갱생 제도들이 나올 때마다 늘 성실한 채무자의 빚을 갚을 의욕을 떨어뜨리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물론 이런 우려와 반발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신용불량자 가운데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일부러 연체를 하는 경우도 있다.하지만 실제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김정욱 국민은행 NPL(부실채권관리) 팀장은 “정상적인 상식을 갖춘 채무자라면 대출금이 연체되면 높은 이율의 연체이자를 물어야 하고, 한 번 신용불량자가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부러 연체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한편 정부에서는 올해 7월쯤 금융회사들이 자율 진행 중인 개인워크아웃제와 달리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개인회생제도’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7월 시행을 목표로 진행 중인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당초 법률명은 통합도산법)은 파산위기에 처한 개인의 채무를 재조정하는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개인회생제도는 봉급생활자와 총채무 3억원 이하인 자영업자가 대상이며, 법원심사를 거쳐 개인회생제도 대상자가 된 채무자가 최대 5년간 빚을 갚으면 남는 빚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이 법안에 대해서도 역시 악의적인 채무자들을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시행할 때까지 넘어야 할 걸림돌이 만만찮다.‘개인워크아웃제’와 ‘개인회생제도’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개인회생제도는 법원 주도로 채무자의 갱생을 도와주는 법적 제도인 데 비해 개인워크아웃제도는 채권금융기관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효력이 발생한다.또 개인워크아웃의 대상은 ‘금융기관에 대한 총채무액이 3억원 이하인 신용불량자’인 데 비해 개인회생제도의 대상은 급여 또는 소득이 있는 자 가운데 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법무부는 이와 함께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전 금융회사들이 자율 진행 중인 ‘개인워크아웃제’(신용회복지원제도)를 거치도록 할 경우 채무자의 재판청구권 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제도를 별개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각국은 개인파산자에 대한 청산형ㆍ재건형 법과 제도를 고루 마련해 놓고 있다”며 “당분간은 협약 형태를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통합된 도산법에 편입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제도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INTERVIEW 한복환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장“신용회복지원은 윈윈 전략입니다”서울 명동의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에 들어서면 이곳저곳에서 상담을 받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생 정도의 젊은 여자도 있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아저씨도 눈에 띈다. 모두들 평범한 우리 이웃인데 그들의 표정은 어둡고 지쳐 보인다.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지난해 논란 끝에 도입된 ‘신용회복지원’(개인워크아웃) 제도의 실제 운영을 맡고 있는 기구다. 금융감독원이 주도적으로 나서 5개 금융기관의 자율적 협약을 이끌어낸 것이다.지난해 10월부터 금융감독원에서 파견나와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한복환 사무국장(48)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신용회복지원기구가 너무 늦게 만들어졌다”며 “우리사회가 좀더 일찍 신용불량자 지원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렇게까지 신용불량자가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아쉬워한다.신용불량자를 돕기 위해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지원하는 방법은 상환연장, 분할상환, 이자조정, 변제유예, 채무감면 등이다. 물론 엄격한 사전심의를 거쳐야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다.그래서 원금을 깎아주는 것은 웬만해선 기대하기 어렵다. 위원회에서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채무 재조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면 금융회사들은 ‘공동협약’에 따라 이를 수용한다.2곳 이상 금융회사에 3억원 이하의 채무가 있는 신용불량자, 즉 ‘다중채무자’가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다. 한 곳의 금융회사에만 채무가 있으면 해당 금융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한다.한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로 넘어가면 빚을 못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금융회사들이 비협조적 태도를 보여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한다. 지원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발급해주지 않은 것이다.게다가 신용불량자들도 좀처럼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개인워크아웃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다 금융거래를 아예 끊고 숨어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2월 말 현재 총 2,603명으로부터 신청을 접수했으며, 이중 546명에 대해서는 채무조정안을 확정했고 나머지 2,057명에 대해서도 금융기관과 협의가 끝나는 대로 채무조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신용회복제도는 윈윈(win-win) 전략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의 채권회수 수단”이라고 한사무국장은 재삼 강조한다. 또한 “채무자의 경제적 안정,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회수 나아가 사회적 안정에도 기여하는 제도”라며 “이 제도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힘줘 말한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