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CEO들의 ‘잠 못이루는 밤’

수입상 부상 경영환경 악화 . M&A, 상장문제 등 내부문제로 동분서주

‘세월아, 빨리 흘러가 다오.’ 황두열 SK(주) 부회장,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 김선동 S-Oil 회장,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 등 4대 정유사 CEO들은 요즘 ‘하루가 한달’ 같은 심정이다.이들 CEO의 심사가 괴로운 것은 우선 대외적 경영여건이 점차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02년 말 수입상이 시장점유율 10%대를 육박하는 등 기세등등하게 시장을 잠식해가는 바람에 손익구조에 이미 ‘빨간등’이 켜졌다. 여기에다 ‘이라크전쟁’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초긴장의 연속이다.그렇지만 이들의 말 못할 ‘진짜’ 고민은 회사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대외적 악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부 문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풀어야 한다. 국내 정유업계를 이끌고 있는 4명의 CEO가 모두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황두열 SK 부회장(60)은 요즘 35년 석유 인생에서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SK글로벌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SK는 SK글로벌 지분 39.9%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또 받아야 할 순채권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SK글로벌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간다면 계열사 중 피해규모가 가장 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황부회장은 지난 68년 대한석유공사를 통해 정유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98년 석유사업부문장 및 에너지판매 사장을 거쳐 2000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어려운 시험지를 앞에 놓고 해법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그는 앞으로 세 가지 난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우선 적대적 M&A 위협을 물리쳐야 한다. 최근 지분매입을 늘린 외국인들이 M&A를 노릴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또 SK글로벌 ‘구출작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잘못하면 40%에 가까운 지분과 빌려준 돈을 모두 날릴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주유소는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만약에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400여개의 주유소가 모두 다른 정유사에 팔린다면 SK 입장에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마지막으로 내부 직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사실 SK 내에서는 이전부터 그룹에 대한 불만이 적잖았다. 그동안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최근에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상경시위를 벌인 것도 부담스럽다. 황부회장이 지난 3월에 울산 공장 출장을 세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휴일도 잊은 채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60)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 지난 73년 LG정유(당시 호남정유)에 입사, 94년 대표이사를 맡은 뒤 10년간 내실위주의 경영으로 회사를 순탄하게 이끌어왔다. 하지만 올 초부터 꼬리를 무는 난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우선 LG 지주회사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홍역을 앓았다. 지주회사가 비상장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지분의 50%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LG정유는 법적 요건을 채우지 못한 채 지주회사에 편입됐다.현재 (주)LG가 보유한 지분은 48.83%로 0.17%가 여전히 모자란다. 0.17%의 지분은 이준용 대림 회장의 자녀들이 갖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귀띔했다. 허회장이 지분 50%를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끝내 0.17%를 사들이지 못했다. 결국 0.17% 매입문제는 까다로운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상장문제도 허회장의 골치를 지끈거리게 한다. 그는 지난 2월 대우와 한화증권을 주간사로 선정하는 등 연내 상장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도사리고 있다.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셰브론텍사코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주식시장이 죽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상장할 수도 없는 문제다.상황이 이런 데도 주간사를 선정, 연내상장을 준비하는 것은 자칫하면 2,000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물어야 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 LG정유는 지난 90년 자산재평가를 실시하면서 2003년 말까지 상장을 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물기로 약정했던 것. 따라서 상장을 할 수도,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지난해를 ‘최악의 해’로 보낸 김선동 S-Oil 회장(60). 김회장은 올해를 ‘재기의 해’로 삼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김회장은 지난 74년 S-Oil의 전신인 쌍용정유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후 그는 거침없는 성공신화를 일궜다. 91년 쌍용정유 사장으로, 2000년에는 회사이름을 변경한 S-Oil 회장으로 승진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업계의 이단아’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공격경영을 고집했다. 수차례 기름값을 전격적으로 인하해 동종업체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잘나가던 김회장이 위기에 몰린 것은 지난해 7월. 분식회계 혐의로 전격 구속,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사의를 표명, ‘김선동 신화’는 땅 밑으로 꺼지는 듯했다. 이 와중에 그는 평생 감당할 마음고생을 한꺼번에 겪었다.그러나 3월26일, S-Oil 이사회에서 김회장은 대표이사로 재신임을 받음으로써 부활했다. 이번 이사회에서 유호기 사장, 아람코의 알 아르나우트와 함께 3인 공동대표를 맡게 됐지만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귀띔이다.김회장은 요즘 매일 정시에 출퇴근한다. 주총 이전까지 현안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챙긴다고 한다. 그의 경영복귀 이후 주가가 급등해 ‘김선동 주가’라 불릴 정도로 시장에서 그를 밀어주는 것도 이런 그의 행보에 힘을 보탠다.그러나 아직 2심 계류 중이라는 점이 여전히 김회장을 괴롭힌다. 2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된다면 그의 앞날에 또 한 번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52)은 요즘도 회사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지난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으로 500여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서사장이 현대오일뱅크 사령탑에 오른 것은 지난해 4월. 2000년 1,700억원, 2001년 3,300억원 등 2년간 5,000억원 가량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특급소방수로 투입된 그는 이를 악물었다.우선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고삐를 바짝 죄었다. 대주주인 IPIC에서 5,400억원을 조달하고 비수익성 주유소 등 자산매각을 통해 196억원을 조달했다. 또 두 차례에 걸친 명예퇴직으로 전직원의 25% 가량을 줄이고 비정유 사업부문도 분사하는 등 비용절감 등을 통해 320억원을 절감했다.그러나 총부채가 약 3조원에 달하며, 부채비율도 350%로 4대 정유사 중 가장 높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도화 정제시설도 10%로 가장 낮은 것은 물론 미래 성장엔진을 찾기 위한 사업다각화는 꿈도 못꾸는 처지다. 이들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가 서사장의 남은 과제다.서사장은 최근 대구에서 3일간 머물렀다. 현장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관리직 사원들과 함께 주유소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현장 직원들의 이야기와 소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과연 서사장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위축된 임직원들과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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