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아요”

가정집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회사 직원들의 공통점은? ‘들어갈 때 하나같이 신발을 벗는다’는 것. 신발장까지 완비된 가정집 현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이다. 방문객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독립성을 추구하는 성향 또한 공통점이다. 영상편집업체 S&I의 송재혁 이사는 “업무 특성상 야간작업이 많다”며 “업무시간을 놓고 건물을 관리하는 분과 실랑이하기 싫어 아예 단독건물로 이사했다”고 가정집에 자리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방으로 나뉘어 있어 직원들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기도 용이하다는 설명이다. 칸막이를 치기 위해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정원이 있는 가정집으로 들어가면서 주차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방문하는 손님이 많아 이전에는 주차비만 한 달에 150만원이 넘게 나왔다.가정집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에는 담을 허물어 6대가 주차할 수 공간을 확보했다”고 CF음향업체 스톤사운드웍스를 운영하는 정승환 실장은 말한다. 남의 눈치는 보기 싫고, 그렇다고 사옥을 소유할 능력이 안되는 소규모업체에는 호젓한 가정집이 적격이다.이런 이유로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지하철 역세권을 중심으로 가정집들이 속속 오피스로 변신하고 있는 것. 서울의 경우 합정역을 중심으로 한 서교동 일대와 압구정역을 중심으로 한 논현동 일대가 대표적이다.서교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방수경씨(30)는 “본격적으로 가정집이 사무실로 바뀌기 시작한 지는 4~5년쯤 된다”며 “요즘은 세 집 건너 한 집은 사무실로 쓰일 정도로 늘었다”고 말한다.결혼정보업체 TMM은 대표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 회사를 차린 경우다. 서교동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TMM 본사는 지난 99년 5,000만원을 들여 사무실로 개조됐다. 100여평의 넓은 마당은 사업상 십분 활용되고 있다.미혼남녀를 위한 로즈가든파티는 물론 직원회식을 겸한 바비큐 파티를 열기에 훌륭한 장소다. “원래 살던 곳이기도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이만한 장소가 없어 이 집에 애착이 간다”며 “다른 곳으로 옮길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김기완 사장은 말했다.뷰티 관련 업체 로테하우스도 사업 목적상 압구정동에 있는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선택했다. 지하를 포함해 총 4개층 120평을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1,000만원에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와 외부를 개성 있게 치장했다.“우리 업종은 이미지를 파는 사업이다. 임대료가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단독건물이 주는 고급 이미지 때문에 이곳에 입주해 있다.” 이 회사 윤성근 이사의 설명이다.디자인업체 예스비주얼커뮤니케이션은 투자가치를 고려해 단독주택을 아예 구입한 경우다. “매달 월세로 300만~400만원을 지출하느니 차라리 그 비용으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지가 좋아 집값도 오를 것 같다.”김한 사장은 2년 전 서교동에 있는 대지 44평의 단독주택을 은행융자 2억원 끼고 3억7,000만원에 매입했다. 여기에 6,000만원을 더 들여 대대적으로 수리한 후 1층은 다른 업체에 세를 놓아 매달 180만원씩 월세를 받는다.김한 사장은 “다른 건물에 입주했을 경우 매월 지출하는 300만~400만원의 월세와 이곳에서 받는 월세를 합하면, 은행 이자는 물론 원금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당초 주택을 허물고 건물을 새로 짖는 방안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주거지라는 이유로 용적률이 낮아 투자 대비 수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가정집에 입주한 공공기관도 있다. 서울시 산하 늘푸른여성정보센터는 가출ㆍ성매매 소녀들을 상담하고 교육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가정 같은 아늑한 공간이 필요했다. 서울시가 서교동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2층 단독주택을 매입한 이유다.“우리 센터가 서울시청 본관이나 일반 오피스 건물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처받고 감수성 예민한 여자아이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까요.” 조정아 소장은 반문한다. 늘푸른여성정보센터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가출ㆍ성매매 소녀들이 이용하는 안식처로 활용되고 있다.가정집 사무실은 별도 관리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 이점이 있다.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점이 불편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S&I 송이사는 “화장실 청소부터 마당 청소까지 모두 우리들 몫이다.폭설이라도 내리면 직원들이 오전 내내 눈 치우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폭우 때는 늘푸른여성정보센터가 물에 잠겨 여직원 10명이 일주일 내내 복구작업에 매달리기도 했다.효율적인 업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건물출입과 업무 분위기가 자유롭다 보니 낮에 바짝 하면 끝낼 수 있는 일을 밤늦게까지 붙들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이에 따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야근을 금지하고 있다”고 예스비주얼커뮤니케이션의 김사장은 말했다.임대비용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공인중개사 방수경씨는 “같은 면적을 놓고 볼 때 가정집 사무실 임대비용이 일반 오피스건물보다 20~30% 비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사무실 개조비용까지 포함하면 적잖은 차이가 난다”며 “사용목적을 충분히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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