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정말 죽겠어요. 남편은 퇴직해서 집에 있지, 은행잔고는 자꾸 줄지. 마땅한 수입은 없고.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와봤어요.”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2동 동사무소 강의실을 찾은 한 50대 후반 주부의 말이다. 이날 강좌는 한국증권업협회가 주식투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시하는 ‘강사파견 무료투자교육’의 일환으로 열린 것. 열심히 받아 적어가며 강의를 듣는 20여명의 주부들 모습에서 일반인들의 투자교육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올 들어 일반인 대상의 맞춤식 무료 투자교육이 활기를 띠고 있다. 증권업협회, 투신협회 등이 교육주최자가 교육내용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찾아가는 투자교육’을 표방하고 나섰다. 수강자들이 듣고자 하는 교육내용을 파악해 그에 맞는 강의를 수강자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진행하는, 말 그대로 ‘맞춤식’ 투자교육을 하는 것이다.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대략 증권업협회는 20명 이상, 투신협회는 30명 이상의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교육요청을 하면 담당자와의 협의를 거쳐 교육이 이뤄진다. 지방의 경우는 제반 여건상 서울지역보다 수강자가 많아야 출강이 가능하다.자원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강사진은 대부분 현재 금융관련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오랫동안 근무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투자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아직은 초기단계라 맞춤식 투자교육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투자교육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점차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별도 팀을 만들어 6개월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친 증권업협회는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강의신청을 받았다.40여일이 지난 4월25일 현재 강의신청은 총 20건 38회에 이른다. 대학교 동아리를 비롯해 동사무소 문화교육 프로그램, 고등학교 개별학습 프로그램, 기업체 직원연수, 노인대학, 동창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의와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15회의 강의가 이뤄졌다. 투신협회도 지난해 9월부터 공무원교육원, 가나안 농군학교,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30회 가까이 강사를 파견해 교육을 하고 있다.그동안 교육을 받았던 수강자들의 대부분은 강의내용과 수준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협회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10%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김동연 증권업협회 연수부 부장은 “수강자들은 자신들의 생활공간에서 원하는 내용의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한다.투신협회도 강의 후 조사한 수강자들의 평가가 투자와 관련해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며 후한 점수를 줬다고 전했다. 반면 두 협회의 강의 수강자들은 구체적인 자산관리 정보와 도움을 얻는 데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일선 투신협회 이사는 “앞으로 수강생들이 지적하는 부분들을 반영해 더욱 효과 있는 교육이 되도록 꾸준히 개선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강의대상 지역이 서울과 수도권에 국한돼 있는 것이다. 증권업협회는 75명의 강사진 가운데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15명이나 되는데 아직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김동연 부장은 “투자자 교육팀을 조만간 확충해서 하반기에는 지방에서도 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신협회는 지방의 신청문의가 많지 않아 당장은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적정한 숫자의 수강자를 갖춘 신청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이밖에도 금융감독원 소비자교육실과 증권거래소 등도 ‘맞춤식’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경제ㆍ투자교육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사실 금융감독원은 다른 기관들보다 앞서 지난해 2월부터 소비자교육실을 열어 투자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지방자치단체 순회교육을 비롯해 현재까지 100여회를 개최할 정도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금감원 소비자교육실에서 연계하고 있는 교육의 특징은 금융관련 분쟁에 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하지만 대상은 교원과 구청직원, 구민 등으로 제한돼 있다. 송태회 금융감독원 소비자교육실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인 금융교육보다 교과서 게재, 교원 교육을 통한 파급효과에 더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증권거래소의 경우는 증권업협회와는 다르게 수강자들을 미리 세분화해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원하는 강좌를 선택해서 듣게 하는 것이다. 일반인의 경우는 월례강의로, 대학생과 초중고생 교육은 신청을 받아서, 교사들은 방학을 이용한 워크숍을 통해서 투자교육을 할 예정이다.비슷한 내용의 투자교육이 여러 기관에 의해 중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강창희 PCA투신운용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어느 나라든 초기에는 과당경쟁이 있지만 자연스레 역할분담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오히려 인위적인 정책당국의 조절이 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또한 “인생설계라는 큰 그림에서 투자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강사들의 자질향상이 시급한 과제다”며 특히 금융사에서 투자자를 상대하는 재무설계사(FP)들의 교육을 거듭 강조했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분석회계지도 강화의 실효성기업 회계를 좀더 투명하게 하자는 논의가 국내외에서 활발하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엔론과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이후 회계규정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회계제도 선진화 방안이 발표되는 등 논란이 한창이다.정부가 내놓은 회계제도 개선책은 기업과 외부감사인(공인회계사), 감독당국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확하고 투명한 회계정보를 시장에 제공하자는 취지다.회계제도가 바뀌면 기업의 책임은 더욱 커진다. 최고경영자가 인증 책임을 져야 하고 허위기재를 할 경우에는 대주주를 포함한 업무 지시자까지 처벌을 받게 된다. 주요주주나 임원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감사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고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갖추는 제도들도 개선방안에 포함돼 있다.공인회계사들에 대해서는 감사대상 기업의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해주는 업무를 금지시키기로 했다. 기업과 회계법인간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주기적(6년)으로 회계법인을 바꿔야 한다는 규정도 넣었다.문제는 실효성이다. 회계제도를 좋게 바꾸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면 분식회계를 막을 수 없다. 예컨대 감사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감사위원회 전원 동의’를 받으면 회계법인을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규정은 악용될 소지가 크다.다른 회계법인과 공동감사(Joint Audit)하는 경우에도 회계법인을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 두 회계법인이 공모하면 얼마든지 규정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1년에 네 차례 회계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한 ‘분기보고서’ 규정강화도 미약하다. 분기보고서 작성대상을 현행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서 1조원 이상으로 낮췄을 뿐이다. 분기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업이 88개에서 134개로 늘어나는 것이 고작이다. 자산규모 1조원 미만인 상장회사와 코스닥회사는 분기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회계규정을 어겼을 때는 처벌이 중요하다. 분식회계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회계부정으로 인한 벌칙보다 크다면 회계부정의 유혹은 계속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감독당국이 회계감리를 더욱 철저히 함으로써 분식회계시 적발확률을 높여야 한다. 법규 위반시에는 범칙금 부담을 대폭 올려야 한다. 아직까지는 분식회계 처벌 규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미국에서는 ‘세무 컨설팅 업무’ 제한이 논란의 핵심이다.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는 외부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은 해당기업에 세무상담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넣기로 했다. 그러나 회계법인들의 로비가 거세 한 발 물러난 상태다.이에 대해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은 “자신들이 한 일(세금절감)에 대해 자신들이 감사를 해서는 안된다”며 “회계법인의 세무컨설팅 업무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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