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 보틀캔 주스 ‘없어서 못판다’

먹거리 포장은 컬러(색깔)와 나름대로 정해진 관계가 있다. 차게 해서 마시는 청량음료와 주스 등은 시뻘건 컬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불볕더위에 지친 한여름에 붉은 용기에 담긴 청량음료에 덥석 손을 뻗칠 소비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미국의 코카콜라가 붉은색을 심벌 컬러로 내세우고 빨간 캔으로 지구촌을 점령했지만 이는 예외적 상황일 뿐이다. 맥주가 그린색 병에 담겨져 있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빛의 투과로 인한 변질을 막기 위해 짙은 갈색 병을 쓴다지만 그린색은 소주나 화학약품을 연상시키기 쉬워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유혹을 감퇴시키기 십상이다.일본 음료 시장에서 먹거리 포장과 컬러의 이 같은 전통적 상관관계를 뒤집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선두주자는 산토리. 산토리는 과일주스를 청색과 검은색 알루미늄 용기에 담아 내놓은 파격으로 컬러 관행에 도전장을 던져 대박을 낚았다.2002년 4월 첫선을 보인 고쿠리는 원액함량 30%대의 저과즙음료이지만 주스 시장의 통념을 뒤집은 청색용기가 등장 초부터 큰 화제가 됐다. 강한 원색계통의 청색 알루미늄 보틀캔에 담긴 고쿠리는 특히 성인남성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첫해 판매목표의 두 배가 넘는 720만상자(24병들이)가 팔려나가 동종업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일부 품귀사태를 빚을 만큼 ‘불황 속 대호황’을 누린 고쿠리의 승승장구 비결을 일본 전문가들은 세 가지 각도로 정리하고 있다.첫째, 주스이면서도 탄산음료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한 청색을 용기포장에 채택해 소비자들에게 도발적 인상을 심어준 것이 적중했다는 것이다. 또 음료를 마실 때 가장 식감이 뛰어난 보틀캔(병 모양의 캔)을 사용, 남성 소비자들을 집중 공략한 것이 들어맞았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고쿠리는 남녀별 구입자 분포에서 8대2 정도로 남성 소비자가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셋째, 청량음료는 가정 소비용으로 대용량의 1.5ℓ들이 제품을 같이 내놓는 것이 업계의 당연한 관행이었지만 산토리는 이를 외면했다. 그리고는 400g 소용량 제품만을 고집하면서 남성 소비층을 넓혀갔다.산토리의 이 같은 전략은 탄산음료와 100% 주스 사이에서 별달리 마실 만한 것이 없다고 식상해 하던 남성 소비자들에게 고쿠리를 인기 브랜드로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튀는 컬러와 남성적 이미지를 앞세워 성인남성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이 대박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산토리는 보틀캔을 채택하면서 용기구멍을 일반 페트병 음료보다 30% 이상 크게 만들었다. 페트병 음료가 구멍지름을 2.8㎝로 만들고 있는 데 반해 고쿠리는 이를 3.8㎝로 키웠다. 같은 제품, 같은 양이라도 소비자들이 단숨에 마시면 더욱 시원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산토리는 첫 제품으로 내놓은 그레이프프루트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4월15일부터 야채주스의 판매를 시작하는 등 고쿠리의 종류를 본격적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이 회사 디자인부의 미즈구치 요지 아트 디렉터는 “이색제품을 계속 내놓겠다”고 밝혀 통념을 뒤엎는 실험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유가공업계에서는 일본 밀크 커뮤니티가 우유용기 포장에서 거의 금기시돼 왔던 빨간색을 채택, 동종업체와 소비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일본 밀크 커뮤니티는 수입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신고한 것이 들통 나 결국 간판을 내리고 만 유키지루시식품의 모회사 유키지루시유업이 유가공사업을 따로 떼어내 출범시킨 회사.새로운 각오로 거듭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변화와 혁신’의 붉은 컬러를 앞세웠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메그 밀크’ 브랜드로 지난 1월7일부터 시판에 들어간 빨간 우유는 주위의 우려와 달리 시판 초부터 가장 강력한 경쟁제품인 농협우유를 누르는 데 성공했다.또 이 회사에서 판매량 1위 제품으로 자리잡아 동종업체들로부터 실험결과가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측은 붉은색이 소비자들에게 줄 거부감을 의식, 시판에 앞서 대규모 광고활동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