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와 대주주

‘대주주들이 소량의 지분으로 기업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관료, 그리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학자들까지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같은 분들도 재벌개혁을 거론할 때는 빼놓지 않고 이 문제를 거론한다. 시민단체들은 말할 나위 없고 기업을 공격하는 긴 대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적은 지분에 막강한 지배권’을 휘두르는, 소위 오너의 전횡을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다.불과 2~3%의 낮은 지분율을 갖고 있을 뿐인 오너들이 복잡한 지분구조를 통해 계열사 전부를 지배하는 것은 상식인의 눈으로 볼 때 이상한 것이 분명하다. 오너 지분이 2~3%에 불과하고 소액주주 지분이 50%를 넘는다면 오너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이 연합해 기업을 지배하는 것이 누가 뭐래도 정당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주식은 소유지분에 따라 기업지배권을 나눠 갖는 것을 표시한 증서임이 분명할진대 2~3%만 보유한 채 기업 전부를 지배한다면 이는 주식회사의 기본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다. 맞는 말같이 들린다.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하다. 지분에 따라 경영권을 행사한다면 증권시장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 지분이 충분히 분산된 기업은 대주주를 언제나 ‘부재상태’로 만들고 마는 것인지 궁금하다.기업경영권을 상실할 것이 분명하다면 대주주들은 왜 알토란 같은 기업을 키워서 남 좋은 일을 해야 하는지, 기업은 자본금이 대형화하면서 반드시 경영권을 증권시장에 넘겨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모두가 궁금하다.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증권시장은 한마디로 의제자본을 창출하는 곳이다. 의제자본이 무엇인가. ‘의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이기는 하지만 진짜는 아닌 가짜인 자본, 굳이 정의하자면 자본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자본이다.개인의 자본제약을 뛰어넘어 거대한 의제자본을 창출함으로써 소규모 기업을 대형화해 가는 장치가 바로 자본시장이다. 그래서 증권시장을 인류가 발명한 것 중에 ‘최고’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투자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주주가 아닌 주주, 다시 말해 소액주주는 대주주에게 출자지분을 위탁하고 그가 좋은 경영자를 선임해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려줄 것을 기대하는 그런 존재다.현대자본시장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다양한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은 대주주를 형해화, 공동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자본을 대주주에게 위탁시키고자 함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동참하는 것일 뿐 결코 동업자는 아니다. 만인에게 열려 있는 증권시장이 존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소액주주는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사거나 파는 것으로써 기업에 동참하거나 투자자본을 회수하면 그만이다.이것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대주주는 자신의 투자계획을 파는 사람이고, 소액주주는 그 계획에 찬반의 의사표시를 하는 존재다. 찬반 의사는 어떻게 표시하는가. 주총에 참석해 표결하는 것으로?아니다. 주식을 매매하는 것이 바로 찬반 의사표현이다. 소액주주는 투자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대주주와 입장이 결코 같을 수 없다. 주식을 매매함으로써 주가는 촌각을 다투면서 등락을 거듭하게 되고, 바로 거기에서 자본주의의 활력이 생겨난다.물론 운명적인 모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화된 증권시장은 의제자본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자 보호장치를 두고 있고, 이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투자자들을 증권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일 뿐 증권투자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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