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이여, 이제 날자꾸나’

지난해부터 중병 진단을 받고 몸져누웠던 코스닥시장이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4월29일 코스닥지수는 43.05를 기록했다. 올 들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5.39%)이다.코스닥지수는 그동안 경기둔화, 북핵문제, 이라크전쟁 등 갖은 악재로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3월17일 사상 최저치(34.64)를 찍고 난 후 슬금슬금 오름세로 돌아섰다. 종합주가지수는 3월17일 이후 5% 오른 데 그쳤지만 코스닥지수는 24%나 급등했다.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3월 중순까지만 해도 5,000억~6,000억원대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발발을 계기로 그동안 시장을 눌러온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거래대금 규모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거래대금은 4월 들어서는 거래일 중 3일간을 제외하곤 모두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4월16일에는 1조4,446억원으로 지난해 5월23일 이후 거의 1년 만에 최고치를 회복했다. 4월29일 현재 거래대금은 1조4,078억원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한때 코스닥시장은 존폐론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의 신흥 증권시장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코스닥시장을 둘러싼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독일의 기술주시장이었던 노이어 마르크트가 마침내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 당시 우리 코스닥시장도 노이어 마르크트에 비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회계부정과 주가조작 등으로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어가면서 코스지수는 올해 3월 초까지 계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 갔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4월 말 시가총액도 증권거래소 상장기업(247조9,220억원)의 15%인 38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코스닥이 정점에 이른 것은 2000년 3월. 그해 3월10일 코스닥지수는 283.44로 최고점을 찍었다. 시가총액은 93조원이었다. 이에 한 달 앞서 거래대금은 2월14일 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4월 말 현재 최고치였을 때에 견줘 거래대금, 시가총액, 지수 등 모두 7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얘기다.코스닥시장이 이렇게 중병으로 쓰러져 앓아눕게 되자 그동안 치료방법에 대해 숱한 의견들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투자자들의 불신이라는 병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불공정거래와 불성실공시를 뿌리뽑고,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빨리 솎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인터넷 열풍을 타고 급성장하면서 무더기로 신규등록을 받았지만, 그동안 문제기업들의 퇴출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급불균형이 심화됐고, 시장이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코스닥위원회는 시장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등록취소 기준을 강화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퇴출요건은 거래소와 비슷하다. 하지만 영업활동 정지, 최저 주가 등에 관한 규정은 오히려 코스닥이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이런 엄격한 퇴출기준에 따라 지난해에는 25개사가 퇴출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부실기업들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올해 들어 퇴출작업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4월20일 현재 10개 기업이 퇴출됐고, 이들 가운데 7개 기업이 4월 한 달 동안 퇴출된 것이다.퇴출강화, 수익성 향상 등 체질개선 조짐또 하나 긍정적인 신호는 올해 거래가 시작된 신규등록기업(29개)들의 주가가 지난 4월29일까지 공모가 대비 평균 35% 가량 오른 것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예비심사제도가 엄격해져 코스닥 등록이 까다로워지면서 나타난 효과로 볼 수 있다.과거에 비해 새내기 등록종목들의 질적 수준이 크게 나아진 것과 연관성이 있다. 예비심사 승인율은 지난 2001년에 67%이었다 지난해에는 45.5%로 21.5%포인트나 떨어졌다. 또한 지난해를 기준으로 이전에 등록된 기업에 비해 이후 등록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수익성 증가율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그간 시장의 불건전성과 더불어 ‘수익모델 부재’라는 약점에 코스닥시장은 늘 어깨를 펴지 못했다.아직은 초기단계로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에 한해 수익성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씨티그룹스미스바니증권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이들 기업의 수익성 증가율은 141%에 이를 것으로 보여 20%대인 거래소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물론 이런 긍정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스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강한 것이 현실이다. 하태민 아크론 대표는 “전체적으로 숲이 너무 오염돼 있어 자정작용이 쉽지가 않다”며 코스닥시장에 섣부르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하지만 하대표 역시 코스닥 기업 가운데 높은 성장률로 내실을 갖춘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권한다.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봐라”며 코스닥시장 자체는 상승에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실적이 뒷받침되는 개별기업들은 충분히 투자매력이 있다”고 지적한다.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기업들 사이에서도 코스닥 기피 증세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코스닥등록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한 업체수가 크게 줄고 있다. 4월 중순 현재 등록예비심사 청구업체수는 22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3개에 비해 엄청 줄어들었다.또한 기존의 등록기업들 사이에서도 지난해부터 ‘형편만 되면 거래소로 이사간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미 코스닥 시가총액 2, 3위인 기업은행, 강원랜드에 이어 최근에는 SBS까지 거래소로 이전할 것을 결의하고 나섰다.현재 거래소 이전을 확정한 업체는 이들 3개 업체 외에도 10개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KTF, 국민카드 등도 이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코스닥시장은 이사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은 뒤숭숭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시장 자체가 조금씩 개선돼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중곤 LG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에서는 혁명은 없다. 단지 진화할 뿐이다”며 “코스닥시장도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긍정적인 진화가 상당히 이뤄졌다”고 강조한다. 이제 코스닥시장을 다시 바라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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