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도움 안받고 홀로서니 ‘가슴 뿌듯’

박경원 전신전자 부회장, 한현숙 잡링크 사장, 배혜정 배혜정누룩도가 사장 등 '눈에 띄네'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 부모나 형제가 일궈놓은 기업의 울타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심정으로 중소기업 CEO로 변신한 재벌가 사람들이 적잖다.이들이 굳이 ‘쉬운 길’을 두고 ‘험한 길’을 자청한 것은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힘만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재벌가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박경원 전신전자 부회장(39)은 형제 많기로 소문난 두산가 출신 중소기업 CEO다.박부회장은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두산그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두산건설 상무로 일하던 중 지난 2001년 전자업체인 전신전자를 인수하며 분가했다. (인터뷰기사 참조)‘번개표’ 형광등으로 유명한 금호전기. 금호그룹 자회사로 있다가 지난 84년 완전히 분리된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CEO는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박명구 사장(49).박사장은 지난 81년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형광등에 들어가는 전자안정기를 생산하는 엘바산업주식회사를 경영해 오다 98년 금호전기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박사장이 부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종업원의 급여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다고.금호그룹의 도움 없이 “금융권을 뛰어다니며 자금확보에 전력했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러나 신사업 진출에 성공하면서 지금은 성공한 경영인으로 통한다. 형광등 등 조명기기에 의존하지 않고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의 부품사업에 진출, 냉음극형광램프(CCFL) 등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사장(47)은 ‘공주의 삶’을 거부하고 ‘자수성가’의 길을 택한 대표적인 재벌가 딸이다. 대성산업 김수근 전 회장의 7남매 중 막내딸인 김사장은 유학시절 아버지와 사이가 벌어져 생활비가 끊기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그녀는 집안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김사장은 “상품기획에서 마케팅, 구매, 회계, 영업은 물론이고 배달, 창고정리까지 안해 본 일이 없다”고 회고할 정도. 지난 91년 독일의 MCM 브랜드를 들여와 핸드백 등 잡화류 판매를 시작하면서 토털패션유통회사인 성주인터내셔널을 차렸다. 지난해 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900억원의 매출을 바라볼 정도로 주변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다.한현숙 잡링크 사장(54)은 한정대 DPI(전 대한페인트) 창업주의 8남매 중 장녀로 한영재 현 회장의 누나다. 지난 69년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71년 코리아플라스틱 뉴욕지사장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91년 DPI 부속실장(이사), 93년 DPI 사장으로 재직하는 등 주로 아버지의 우산 아래서 기업활동을 영위했다.그러다가 94년 디아이피라는 SI전문업체를 차려 독립하면서 ‘고생길’을 자청했다. 94년 당시에는 국내에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위험스럽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차근차근 회사를 성장시켜 갔다. 특히 98년 11월 문을 연 취업정보사이트인 잡링크는 인크루트와 더불어 국내 대표적인 업체로 자리잡았다.국순당 배상면 회장의 외동딸 배혜정 사장(48)은 오빠인 배중호 국순당 사장과 동생인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의 뒤를 이어 ‘배혜정누룩도가’를 설립, 독립했다. 배사장은 경영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전공도 사회사업학과(성신여대)로 술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술도가집 딸답게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술사업을 시작한 것.그녀는 오빠와 동생이 약주시장에서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탁주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 고급탁주 ‘부자’가 그녀의 첫 작품이다. 현재 ‘부자’는 일반주점에서 찾기 힘들고 유통망도 부족해 백세주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제품이다.배사장은 “고급탁주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마치 태평양을 건너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래를 밝게 보고 있기에 의욕이 넘친다”고 힘줘 말했다.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46)은 대기업 대표이사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인물. 친형인 강영중 대교 회장을 도와 ‘눈높이학습지’시장을 일군 주인공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대교출판 사장, 대교 사장 등을 역임한 뒤 97년 돌연 대표이사직을 버리고 가정경영연구소를 차렸다.강소장은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일, 가정과 개인에 충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김석동 모션헤즈 회장(42)도 재벌 2세에서 중소기업 사장으로 전격 변신, 화제를 불러모았던 인물이다.“재벌 2세라는 딱지를 떼어버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2000년 5월 쌍용증권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임하고 엔터테인먼트사업에 진출할 당시 일성이다. 김회장은 88년 쌍용투자증권 국제부 대리로 입사해 95년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랐다.황신혜, 김하늘, 손예진 등이 소속돼 있는 M Tube, 등 5개의 연예매니지먼트사가 모션헤즈의 자회사로 편입돼 있을 정도로 한때 연예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근 사업다각화를 위한 유상증자 과정에서 경영권을 포기하는 등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INTERVIEW / 박경원 전신전자 부회장“모처럼 큰 보람 느낍니다”박경원 전신전자 부회장(39)은 박용오 두산 회장의 장남이다. 두산건설 상무로 일하던 중 지난 2001년 CCTV 등 전자보안장비와 주변기기 전문업체인 전신전자 지분을 인수하며 분가했다. 활달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재벌 3세의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것이 직원들의 귀띔이다.독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대기업의 틀에 박힌 생활과 개인보다 조직의 힘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이 젊은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직 안팎에서 능력보다 회장의 아들로 보는 시각이 부담스럽기도 했고요.활동적인 성격이어서 부모님 슬하에서 대기업을 승계하는 것보다 그룹이나 가족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창업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보는 것이 평소의 꿈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돌아가신 장인의 친구이신 (주)전신전자의 전주서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됐고 전회장께서 경영에서 은퇴하시면서 (주)전신전자를 인수하게 된 것입니다.최근 한국창업투자에 지분참여한 까닭은.한국창업투자회사의 지분참여는 평소 ‘홀로서기’를 꿈꾸며 새로운 사업발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친한 친구인 김현우 대표를 통해 창업투자회사의 비전을 소개받은 것이 동기가 됐습니다.특히 창업투자회사는 새로운 사업의 창업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신규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 및 기업의 변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중소기업 CEO로서 어려운 점은.대기업은 분업화가 잘돼 있어 개인보다 조직의 힘에 의해 움직이나 중소기업은 내부관리는 물론 일선 영업활동까지 모든 업무를 세세히 관여해야 합니다. 때문에 개인시간이 없다는 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그러나 직원들과 함께 의논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느껴보지 못했던 보람입니다.경영소신 및 비전은.우선 조부님과 아버님께서 항시 강조하시는 ‘근자성공’으로 성실과 근면을 기반으로 하는 창업정신의 실현입니다. 다음으로 상인집안으로서 상인정신을 초심으로 삼아 회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차입 경영의 실현으로 규모보다 내실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입니다.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인 인재육성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계획입니다. 작지만 알찬기업, 나아가 임직원 모두가 꿈을 함께 펼치며 즐겁게 생활하는 견실한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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