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밀가루’ 대신 ‘두부·호밀’ 이 뜬다

햄버거는 누가 뭐래도 미국식 먹거리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 식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음식이다. 실용과 실리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사고를 대변하듯 단시간에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조 패스트푸드다.사정이 이런 만큼 햄버거에서 ‘미국’이라는 단어를 빼 놓으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도 미국인, 먹는 사람도 미국인,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역시 미국인을 연상해야 그럴듯한 그림이 완성된다.메뉴개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입맛을 조금이라도 더 잘 맞출 수 있을까 고민하며 아메리카인들이 요모조모 따져가며 새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에 자연스럽다.일본 패스트푸드시장에서는 햄버거업체들의 이색 경쟁이 한창이다. 경쟁이라는 말을 갖다붙이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가격싸움’이 아니다. 재료와 제법을 변형시켜 본모습과 다른 햄버거를 만들어내는 신메뉴경쟁이다.경쟁의 선두주자는 햄버거시장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일본맥도널드와 롯데리아, 그리고 모스버거의 트로이카업체다. 초염가경쟁을 선도하다 오히려 매출감소의 역풍에 강펀치를 맞은 일본맥도널드의 신메뉴싸움은 ‘고품질과 건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이 회사는 빵 가운데 육류가 아닌 두부를 넣은 일본형 햄버거를 개발, 지난 4월부터 시판하고 있다. 육류를 기피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선보인 ‘두부햄버거’는 일본에서 최초로 시도된 토착형 메뉴인데다 간장으로 일본식 맛을 냈다는 점에서 경쟁업체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일반 햄버거보다 칼로리와 지방함유량이 낮아 젊은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건강식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일본맥도널드는 야채샐러드 등을 곁들인 건강 메뉴도 신제품으로 내놓으며 멀어진 소비자들의 발길을 되돌리려고 총력을 쏟고 있다.가격보다 개성·맛으로 경쟁그러나 메뉴경쟁에서는 일본맥도널드가 선발업체가 아니다. 가격경쟁에서 한 걸음씩 뒤처져 왔던 롯데리아가 신종 먹거리싸움에서는 적극적인 공세로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리아는 밀가루빵이 아닌 호밀빵으로 만든 햄버거를 ‘구루메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호밀은 호박, 발아현미 등 15종의 곡류와 채소를 놓고 고심한 끝에 이 회사가 선택한 재료.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업계의 상식을 깨뜨린 호밀빵 햄버거가 건강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꽉 붙들어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기존 메뉴보다 야채 사용량을 두 배로 늘린 샐러드 치즈햄버거도 건강식으로 햄버거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타 업체들과 달리 맞춤형 주문햄버거를 고집해 온 모스버거의 메뉴전략은 3개사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회사의 메뉴는 계절성을 강조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대량 생산되는 획일적 먹거리가 아니라 창작요리의 하나로 햄버거를 대접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 회사는 안전, 품질 중시의 제품전략을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한 매장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의 종류가 약 20가지에 달하고, 주문을 받은 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까닭에 시간과 품이 더 들어가지만 그래도 독창성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모스버거의 외고집이다.앞으로는 계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전, 오후 등 시간대에 따라 한정판매하는 신메뉴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는 전략이다.일본언론은 이들 3개사의 움직임과 관련, 시장경쟁의 핵심이 가격에서 개성과 맛을 중시하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개당 59엔까지 가격을 낮춰 받으며 일본 전역에서 가장 싼 먹거리를 제공하는 주인공으로 통했던 패스트푸드업체들이 이제는 가격싸움을 포기하고 수익성과 이미지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소매를 걷어붙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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