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서거라. 골리앗 우정공사 나가신다’

소화물택배시장 진출 선언, 편의점 내 우편물수집함 설치 등 영업망 확대

한국에 비쳐진 ‘우체국’의 인상은 썩 좋다고 보기 어렵다. 민간에 의한 과대 이윤 추구를 막는다는 이유로 철도와 함께 국영사업으로 공공성이 최대한 보장되고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의문점을 남긴다.현대인들이 특히 중시하는 스피드와 능률에서는 더 그렇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택배회사 차량들이 거리와 아파트단지를 누비고 다니는 현실에서 제한된 시간에만 배달되는 우체국 소포는 이용자들에게 큰 만족을 주기 어렵다. ‘시(時)’테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우편사업이 정부의 손에서 우정공사라는 특수법인의 울타리로 넘어간 일본에서는 지금 거대한 전쟁이 열도 전체를 격진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우정공사라는 골리앗이 밀어붙이는 영토확장 공세에 맞서 다윗과도 같은 민간기업들이 벌이는 필사적 반격이 재계지도의 밑그림부터 바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우정공사는 정부조직 군살빼기와 재정 건전화 차원에서 고이즈미 정권이 지난 4월1일 탄생시킨 일본 최대의 관제기업이다. 일본 전역에 2만4,760개의 우체국과 30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어 영업망과 조직에서 타 민간기업들을 새까맣게 먼발치로 따돌리고 있다.우편저금을 통해 맡아놓고 있는 고객예금 잔액(2003년 3월 말 기준)은 235조엔에 달해 일본 최대라는 미즈호은행의 53조7,000억엔을 네 배 이상 웃돌고 있다. 완전 민영화의 옷을 입게 될 수년 후면 공룡이라는 말을 그대로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몸집이다.민영화의 전 단계로 태어난 우정공사가 민간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은 소화물 택배에서 가장 치열하게 불붙고 있다. 오후 5시만 되면 영업을 끝내고 우체국의 셔터를 내렸던 우정공사가 시장을 손쉽게 확대할 수 있는 분야는 기존의 소포와 성격이 비슷한 소화물 택배가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어서다.우정공사는 택배 수요 개척에서 가장 고전을 면치 못해 온 취약 코너로 기업 화물을 지목하고 이에 대한 공략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인간에 오가는 소포에서 그런 대로 탄탄한 기반을 굳히고 있는 것과 달리 통신판매상품과 기업간에 주고받는 선물 등 단체 소화물 취급에서 열세를 벗어나지 못한 점을 자성, 이 같은 약점부터 우선 메워나가겠다는 것이다.공사는 지난 5월 히타치물류와 손잡고 본격적인 택배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우정공사의 소포취급수는 2002년의 경우 약 1억5,500만개에 달했지만 택배시장의 최강자 야마토운수에 비하면 약 6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를 정보시스템과 재고관리, 포장, 검사 등에서 뛰어난 노하우를 갖춘 히타치물류와 제휴함으로써 대폭 늘리고 배달시간의 허점과 기동성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우정공사의 계산이다.공사의 변신은 택배사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사는 이에 앞서 지난 4월 중순부터 일반편지와 소포의 중간 형태에 해당하는 ‘엑스팩 500’이라는 신종 서비스를 시작했다. A4용지 크기의 전용봉투를 500엔에 구입하기만 하면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되고 중량에 상관없이 서류를 듬뿍 넣어 보낼 수 있는 제도다.서적과 잡지만을 대상으로 했던 책자 소포의 범위도 탄력적으로 확대, 이용자들을 좀더 우체국 가까이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단순히 스테이플러로 묶은 서류뭉치 등을 종전과 달리 오는 7월부터 소포로 받아들여 주기로 한 점이 좋은 예다.수익의 극대화를 노린 도전과 실험 의지는 영업망 확대에서도 읽을 수 있다. 편의점 로손과 제휴, 지난 1월부터 편의점 내에 우편물수집함을 설치하기 시작한 우정공사는 현재 로손의 7,625개 점포에 우편물수집함을 달아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일본프랜차이즈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도시권 소비자들 가운데 ‘심야에 편의점에 들러 이용하고 싶은 서비스’로 우편물을 꼽은 사람은 절반이 넘는 5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우정공사는 2명 중 1명꼴로 일본 소비자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욕구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를 제공, 변신실험의 기폭제로 삼고 있는 셈이다.정부조직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철저한 민간기업의 경영원리를 접목 중인 우정공사는 소포 등 우편사업에서 당분간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의 보호라는 온실에서 들판으로 던져진 까닭에 인력, 시스템, 영업 등 각 부문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따라서 일부 우체국에서는 일본 최강의 기업으로 불리는 도요타자동차의 사원들을 초빙, 업무효율화의 비책을 전수받는 등 효율제고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우정공사는 올 한 해 동안 우편사업이 26억엔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기경영계획이 끝나는 오는 2006년이면 500억엔의 흑자로 전환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우정공사에 비해 덩치와 조직이 달리는 한 민간기업들의 반격은 부분적이면서도 소규모적인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우편사업 규제완화의 최대 쟁점이었던 일반우편물 배달의 경우 우편물수집함을 10만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에 묶여 기업들의 신규 참여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하지만 야마토운수와 사가와규빈 등 대형택배업체들은 수신인을 특별히 지정하지 않는 판촉서류와 다이렉트메일(DM) 등의 배달시장에 발빠르게 뛰어들어 우정공사를 긴장시키고 있다. 야마토운수는 ‘메일편’으로 이름붙인 서류배달서비스의 요금을 우정공사보다 낮게 책정해 우정공사를 스피드와 가격으로 압박하고 있다.우편저금·간이보험은 ‘무풍지대’야마토운수는 1㎞ 이상 떨어진 거리를 대상으로 하는 메일편서비스를 100g 이하 110엔, 50g 이하는 80엔의 염가에 제공함으로써 어떠한 경우에도 우편서비스보다 더 싸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리고 있다.시장 관계자들은 사가와규빈, 니혼쓰운 등 타 대형택배업체에도 서류택배서비스를 둘러싼 저가공세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우정공사가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배달시간과 요금, 지역이 사전에 지정된 특정우편사업에서도 도전자들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나고야시에 본사를 둔 서류송달서비스 전문업체 ‘도카이메신저’는 6월2일부터 자전거부대를 이용한 특정우편사업을 시작, 일본 정부가 우편사업을 민간에 개방한 지난 4월1일 이후 편지배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일본에서 우체국 직원이 아닌 민간인에게 편지를 배달할 수 있도록 자격이 주어진 것은 근대 우편제도가 도입된 지난 1871년 이후 도카이메신저가 처음이다. 특정우편사업에는 도카이메신저 외에 7개사가 이미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편물수집함 설치가 필수적인 일반우편사업 외에 특정우편사업에는 소규모 민간기업의 참여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우편사업과 함께 우정공사 사업의 또 다른 뼈대를 이루는 우편저금과 간이보험은 민간기업의 위협을 느낄 수 없는 무풍지대다. 불량채권에 신음하는 민간은행들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보험사들의 경영부실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면서 우체국으로 몰리는 고객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도쿄미쓰비시, 미즈호, UFJ, 미쓰이스미토모 등 4대 은행그룹의 수신을 전부 합친 금액이 217조3,000억엔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우정공사는 실질적인 일본 최대의 슈퍼뱅크나 다름없다. 우체국이 판매하는 간이보험의 계약고 역시 123조엔으로 일본 최대인 니혼생명의 45조2,000억엔을 까마득히 앞지르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우정공사의 사업구조는 금융수익으로 우편사업의 구멍을 메우는 기형적 면모를 보여 왔다며 홀로서기 실험은 우편사업의 수익확보를 통해 판가름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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