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한 인간 惡한 사회

시장경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철학에 기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과연 한국에서는 시장경제가 작동하고 있는지, 또 시장논리가 관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돌아보면 해방 후 50년의 시장경제라고 하지만 박정희 개발연대를 엄밀하게 시장경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것은 자본주의이기는 했지만 시장경제는 아니었다. 경제체제를 굳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구분하는 전통적 잣대를 포기한다면 전혀 새로운 기준으로 체제를 정의하고 구분할 수도 있다.‘정부의 통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지는가’를 잣대로 삼아 구분해 본다면 개발연대는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라는 측면에서 시장경제라기보다 스탈린 체제와 오히려 거리가 가깝다.국가자본주의라는 말도 있고, 요즘에는 시장사회주의라는 말도 쓰지만 국가의 시장에 대한 통제와 간섭 정도에 따라 각국들은 길게 줄을 서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쯤 서 있는가.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시장경제를 이론 그대로 현실에 구현하고 있는 국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것은 앵글로색슨들의 특이한, 그래서 결코 보편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체제일지도 모른다.독일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노사정의 ‘합의사회 체제’라고 해야 할 테고, 일본은 회사형 인간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도 있는 ‘공동체 사회구조’로 되어 있다. 독일, 일본은 모두 관치금융의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어서 자본시장의 발달 정도가 매우 미약하다. 위험을 담보로 거금을 베팅하는 투기수준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다.아무래도 시장경제는 피가 뜨겁지 않은, 오히려 싸늘한 인종에 어울리는 그런 경제체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렇다면 가슴이 뜨거운 한국인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시장경제는 하나의 확고한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인간은 이기적 인간이며, 악(惡)하고,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는 논의 레벨(차원이라고 해도 좋다)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이 철학의 골자다. 공자와 맹자가 설계한, 다시 말해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연장선상에 있으며 인간은 선(善)하다는 사상체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서 있다.부모에 효도하는 것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동일 레벨에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시장경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양지(良知), 양능(良能)의 존재,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성선(性善)의 세계관과 시장경제는 거리가 멀다.시장경제가 단순히 이익 추구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선(시장의 작동, 효용의 제공)이 실현되고 보장된다는 적극적인 신뢰에 기초해 있다. 말하자면 선한 인간들은 궁극적으로 악한 사회를 만들지만, 악한 인간이야말로 결과적으로 선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확고한 믿음이 시장경제의 기초다.선한 인간들이 만드는 정치체제의 대표적인 것이 공산주의라면, 악한 인간들이 만드는 대표적인 체제는 민주주의요 시장경제다. 어떤 사회가 결과적으로 선한 사회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섰다. 냉정한 시장이 오히려 가난한 자와 약소국에 기회를 준다는 것이 굳이 교과서의 수사만은 아니다. 선한 동기로 만들어지는 경제체제는 결국 정부의 개입과 공동의 소유를 기초로 설계되기 마련이다.그러나 이런 체제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작동하는 동안에만 성공적이고 끊임없는 혁명적 열정을 요구하며 정치적으로는 독재국가로 귀결되고야 만다.한국의 시장경제는 전도가 험난하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