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와 노무현

체제경쟁이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이미 끝난 경쟁이다. 20세기 내내 공산진영과 자본주의는 체제경쟁을 벌였었다. 아마도 50년대 후르시초프 서기장 시절에 절정에 올랐을 것이지만 결국 80년대 후반과 90년대 들어 경쟁은 끝났고 논쟁은 수그러들었다.그렇다고 체제논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초반 레이건 시절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새로운 아젠다가 떠올랐고 이번에는 세계화냐, 그 반대편이냐는 것이 새로운 논쟁 포인트로 부상했다.워싱턴 컨센서스는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식 시장경제를 골자로 한 것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 시장개방, 증권시장 중시, 작은 정부 등으로 짜여져 있다. IMF가 우리나라에 요구했던 구조개혁도 대부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차가운 시장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음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IMF총회나 G8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몰려드는 거대한 반세계화 시위대가 공격으로 삼는 것도 바로 이 워싱턴 켄센서스로 불리는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여기에 경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제3의 길(영국)이라고도 하고 질서자유주의(독일)라고도 부르는 비교적 온건한, 타협적인, 그래서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라고 불리는 체제다.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전면적인, 모순적인, 그래서 동거가 불가능한 대립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쟁은 투쟁이고 경쟁은 경쟁이다.물론 핵무기와 미사일을 들고 하는 경쟁은 아니고 기껏해야 돌을 던지고 체류탄을 쏘는 정도의 투쟁이다. 대립각은 당연히 슈뢰더의 독일과 부시의 미국으로 대별되지만 역시 판세는 미국이 몇 수 위다.독일은 원래 사회주의적 전통을 갖고 있다. 나치즘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정신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역시 통일 이후에 사회주의적 또는 수정시장경제라고 할 만한 변화들이 많았다.노동자들이 국가경영의 한축을 구성하고 기업들 역시 근로자들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주식회사라고 하는 것이 1,000여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멍가게도 주식회사인 우리와는 차이가 크다. 체제는 단순히 당대의 선택은 아니다.집단주의적 전통 또는 지적으로는 관념론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사고가 득세한다. “인간의 얼굴…”로 시작하는 철학이라면 대개 비슷한 지적ㆍ사상적ㆍ문화적 뿌리를 갖는다.그래서 독일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죽었다 깨도 미국식의, 차가운, 냉혈적인 시장경제를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다. 슈뢰더의 경제철학이라면 역시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고, 복지를 추구하며, 따뜻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골자다.문제는 그런 방법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다. 성장 없는 복지가 허구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다. 결국 실패하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실패하고 수렁으로 빠져든다.아르헨티나 같은 나라가 수렁으로 밀려든 상황이라면 독일은 돌아오는 경우에 해당한다. 독일 집권 사민당은 최근 특별 당대회를 열어 그동안의 복지위주 정책을 대폭 수정하는 이념의 전향을 단행했다.기업이 근로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결정권을 노조에서 회사로 환원하며, 실직자에 대한 수당을 낮추는 등이 골자다. 그동안의 좌파정책을 걷어내고 우향우를 단행한 것이다.경기가 급랭하고, 기업들이 떠나가고, 경제가 파산난 결과다. 우리가 독일의 우향우를 특히 주목하는 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의 정책방향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슈뢰더의 독일이었던 만큼 스승이요, 모델이 사라진 형국이다. 참여정부는 독일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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