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에 가장 밝은 별자리가 오리온이다. 달이 뜬 밤에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오리온그룹의 로고도 바로 오리온 별자리다. 지난해와 올 1분기 실적발표를 봐도 별자리 ‘오리온’을 연상시킨다.그룹의 주력인 동양제과는 지난해 5,200여억원의 매출을 올려 34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순이익은 2001년(154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 올 1분기에도 1,289억원의 매출과 9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선전했다.그룹의 또 다른 축인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그 실적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이다. 온미디어는 지난해 1,230억원의 매출과 80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미 올 1분기에 40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지난해 전체 순이익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멀티플렉스 메가박스는 지난해 710억원 매출에 65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효자계열사로 거듭난다. 올 1분기에 이미 200억원 매출에 4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지난해 실적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오리온은 이제 겨우 세 살배기 그룹이다.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이 지난 2001년 9월께다. 동양그룹의 한 축이던 제과ㆍ외식ㆍ엔터테인먼트ㆍ유통사업을 분리해 독립한 것이다. 분가한 뒤 오리온의 기업가치는 날로 높아졌다. 지난 4월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업체인 에퀴터블의 ‘재계순위’ 조사결과를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유일한 상장사인 동양제과의 시가총액이 분가시점인 2001년 1,000억원에서 3,500억원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온미디어, 롸이즈온 등 비상장계열사의 기업가치도 4,500억원대로 비교적 높게 인정받았다. 이는 재계순위 25위에 해당한다.사실 분가 초기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다. 제과업이 사양산업으로 대접받고 있는데다 새 주력사업인 엔터테인먼트사업의 성공을 반신반의했기 때문. 그러나 오리온은 이런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잠재웠다.게다가 엔터테인먼드 분야인 케이블TV, 패밀리레스토랑, 영화사업 등은 CJ와 롯데 등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정면충돌하고 있지만 밀리지 않고 선전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리온이 이처럼 예상을 깨고 순항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오리온만의 독특한 경영문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성공요인 1 = ‘위기에서 기회를’‘위기가 기회다’는 기업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 자칫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제 무덤’을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리온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케이블TV사업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오리온은 현재 9개의 채널을 보유한 업계 1위 업체다. 경영실적도 부동의 ‘톱’이다. 국내 케이블TV 시청률의 35% 가량을 차지한다. 경영실적도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한다.이처럼 케이블TV업계에서 챔피언벨트를 차지한 과정은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 드라마틱하다. 오리온의 케이블TV사업은 지난 94년 만화채널인 ‘투니버스’로 깃발을 올렸다. 그러다가 국내 기업들이 벌벌 떨었던 IMF시절 대역전의 시동을 걸었다.IMF 직후 구조조정 차원에서 남들이 버린 채널을 전략적으로 사들인 것이다. 대우 소유의 케이블 영화채널인 DCN(현 OCN)을 인수했고, 삼성 소유의 캐치원(현 캐치온), 동양의 바둑TV 등을 잇달아 손에 넣었다. 온게임넷, MTV 등 ‘성장성이 약하다’며 M&A시장에 나온 것도 과감하게 인수했다.남들에게는 위기였지만 오리온에는 기회였던 셈이다.뮤지컬사업도 ‘위기를 기회로’ 전법이 성공한 사례로 통한다. 오리온이 뮤지컬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그당시 대기업들과 창투사들이 대거 영화투자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리온이 첫 작품인 에 거금 100억원을 투자했을 때, 업계 일각에서는 ‘미친 짓’이라는 소리마저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미친 짓’이 아니라 ‘절묘한 투자’로 드러났다.6개월 장기공연에 2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보기 좋게 성공한 것 이다. 그후 (순이익 24억원), (순이익 2억원) 공연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오리온은 국내 ‘예술공연의 산업화’라는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이는 담철곤 회장의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철학이 톡톡히 빛을 본 것이다. 담회장은 ‘영업이라는 것은 남이 필요하지 않는 것을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이라며 교과서와는 다른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최근에도 예상을 뒤엎는 투자를 단행, 업계를 놀라게 했다. 망하기 직전의 스포츠토토를 300여억원에 사들인 것. 스포츠토토는 과거 대표이사가 구속되는 등 각종 정치사건에 휘말린데다, 이후 로또복권이 몰고 온 거센 폭풍에 낙엽처럼 쓰러졌던 회사다.남들은 생명이 다했다고 보는데, 오리온은 ‘미래잠재력이 무한하다’며 선뜻 거금을 들여 인수한 것이다. 이 또한 성공여부를 떠나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경영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성공요인 2 = CEO문화가 다르다올해 초 CEO급 임원인 A상무는 담회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신사복매장으로 급히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몇 시간 뒤 A상무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담회장으로부터 직접 양복 한 벌과 넥타이를 선물받은 것이다.A상무가 맡고 있는 사업부문의 경영실적이 뛰어난 것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 그는 “담회장은 임원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고, 편안하게 챙겨주며, 격려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담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CEO로 통한다.이는 담회장의 부인이자 동업자인 이화경 사장도 마찬가지다. 이사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롸이즈온, 온미디어 등의 팀장회의에도 참석한다. 주변에서 ‘팀장회의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느냐고’고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회사는 그렇지 않으냐. 이들의 생각을 모르고 어떻게 회사를 알 수 있느냐”며 의아스럽게 생각한다.오리온은 한 달에 한 번 옷을 잘 입는 임직원을 뽑는 ‘맵시데이’를 여는데, 이날 담회장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이사장도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할 정도로 기업문화 변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생각이 젊어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공통된 철학이다. 이처럼 최고경영자인 부부의 마인드가 경직되지 않고 젊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성공한 요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또 담회장과 이사장은 계열사 대표(COO)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한다. 오너가 명령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부 그룹들의 풍토를 오리온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일군 주역인 상무급 대표들을 키운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지난 91년 담회장은 김성수씨(온미디어 총괄담당ㆍ상무ㆍ41), 문영주씨(롸이즈온 대표ㆍ상무ㆍ40), 김우택씨(39ㆍ메가박스 대표ㆍ상무) 등 20대의 젊은 인재들을 스카우트했다. 이들에게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20억원을 지원했다. 특명은 신규사업을 개발하라는 것.이들은 연예매니지먼트사업을 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일부는 실패했지만, 결국 이런 과정이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그룹화를 이끈 핵심동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기자는 취재과정에서 계열사 대표 3명과 여러 임원들은 직접 만났다. 이들은 그룹 비전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기존 전통 그룹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CEO들간의 분위기도 남다르다.옷도 대부분 편의복 차림이다. 호칭도 웬만하면 ‘형’ ‘동생’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룹의 중요사안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자기의 주장을 펴고 거침없이 논쟁한다고 CEO들은 귀띔한다. 문영주 롸이즈온 대표는 “담회장과 이사장이 열정과 끼를 강조하다 보니 그룹문화가 엔터테인먼트화됐다”고 전했다.이런 자유롭고 젊은 분위기가 조직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임원과 팀장간, 팀장과 직원들의 관계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전통 제조업체인 오리온이 첨단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의 대변신에 성공한 것은 이런 기업문화가 한몫 한 것은 물론이다.성공요인 3 = 북클럽오리온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북클럽’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일종의 독서모인인 북클럽은 오리온의 성공비결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부터 이화경 사장을 중심으로 계열사 CEO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갖는다.참석자는 이사장을 비롯해 김상우 동양제과 부사장, 김성수 온미디어 총괄담당 상무, 문영주 롸이즈온 대표, 김우택 메가박스 대표 등 6명이다.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오전 9시에 열리는 이 모임은 보통 낮 12시까지, 때에 따라서는 늦은 오후까지 이어진다.책은 경영서적에 머물지 않고 다양하다. 등이 그간의 독서목록 중 일부이다. 물론 단순히 책만 읽는 자리가 아니다. 계열사 대표간의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커뮤니티다.가령 공식회의에서는 애초에 정해진 필요한 사안만을 놓고 토론하기 마련이다. 분위기가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보고와 지시가 교차할 뿐이다. 북클럽에서는 ‘공식’이라는 틀을 깨고 수평적 관계에서 폭넓은 이야기가 오간다.이러다 보니 무엇보다 계열사간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단지 업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가 된다. 때문에 효율적인 계열사간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김우택 메가박스 대표의 얘기다. “그룹에서 주요 임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향해야 할 철학, 방향, 문화 등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또 북클럽에서 효과를 체험한 임원들이 각자의 계열사로 돌아가 다시 ‘북클럽’을 만들게 된다. 김대표만 하더라도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오후 6시에서 오후 9시까지 8명의 팀장들과 독서토론회를 갖고 있다.이처럼 오리온의 북클럽은 수직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리온은 그룹 차원에서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인, 전문경영인과 임직원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돋보기 / 김상우 동양제과 부사장“틈틈이 밑줄치며 책 읽어요”동양제과에서 국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우 부사장(47). 그의 집무실 서고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책상에는 여러 권의 책이 페이지가 접힌 채 놓여 있다. 김부사장은 CEO북클럽 이외에 동양제과 팀장들과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게 되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북클럽이 경영에 도움이 되느냐는 물음에 “화음을 맞추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비전과 구성원의 비전이 일치할 때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 북클럽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김부사장은 동양제과 국내 사업 부문을 맡고 있다. 그래서 그룹이 역점을 두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업과 화음을 맞추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먹는 즐거움도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제과업의 주 소비층도 하이틴 아닙니까.따라서 그들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젊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동양제과는 이미 연공서열, 관료주의가 파괴됐습니다.”이런 관행 파괴에 ‘북클럽’이 일등공신이라는 게 김부사장의 생각이다. 집무실에서 틈틈이 밑줄을 치며 책을 읽는 그의 모습에서 변신의 노력이 읽힌다.돋보기 / 맵시데이‘자신있게 멋을 부려라’담철곤 회장의 경영철학은 3F(Fun, Fair, Future)이다. 이를 풀이하면 하고 싶어서 하고, 올바르게 하고, 젊은 정신으로 일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중 ‘펀’은 담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대목이다. ‘맵시데이’도 그중 하나다.2001년 6월부터 시작한 ‘맵시데이’는 매주 수요일 의무적으로 ‘멋을 부리는 날’이다. 이날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직원들과 힙합바지를 입은 남직원들이 대거 출현한다. 이중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옷을 가장 잘 입은 직원을 뽑아 시상한다.멋을 못 부린 직원에게는 벌칙도 따른다. 한 달 동안 정장을 입어야 하는 것. 물론 맵시데이는 최고경영자들도 지켜야 한다. 이화경 사장도 이날만은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한다.맵시데이는 일종의 ‘펀경영’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경직된 문화를 깨자는 의도이다. 또 국내에서 상영되는 영화 중 100만명 이상 관람한 영화는 의무적으로 관람해야 한다는 규정도 ‘펀경영’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