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기술 겸비한 비즈니스 크리에이터

올해로 입사 21년째를 맞는 삼성물산 프로젝트사업부 전력통신팀의 김양배 부장(47·사진)은 최근 큰 ‘한건’을 올렸다. 관계사인 삼성전자가 인도네시아 제1 민간 통신사업자인 PT모바일-8텔레콤(Mobile-8 Telecom)에 총 1억2,000만달러 규모의 CDMA 시스템 공급권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삼성전자는 2001년 말 이번 사업 입찰에 참여해 우선순위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인도네시아측이 금융도 함께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고민하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삼성물산 김양배 부장팀에 ‘SOS’를 쳤다. 이에 관한 한 삼성물산이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아니라 우리팀이 해낸 거죠. 사실 우리팀은 이번 인도네시아 사업의 입찰공고가 있기 전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금융지원이 옵션으로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죠.하지만 당시 인도네시아는 국가신용등급이 C등급으로 낮은 수준이어서 어디서든 쉽게 금융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경쟁상대였던 에릭슨도 금융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어서 만만한 사업이 아니었어요.”(김양배 부장의 설명)프로젝트사업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김부장팀은 현지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경쟁사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통신전문 컨설팅기관인 로스차일드에 사업성을 의뢰했다. 삼성물산 전력통신팀 이재원 차장은 “이번 사업은 제품생산과 같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담보로 잡을 수 없어 금융지원이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귀띔했다.어쨌든 로스차일드의 평가는 좋았다. ‘휴대전화 단말기 등의 수출유발 효과가 큰 사업’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이다. 이에 김부장팀은 수출보험공사의 구매자 신용 등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측의 금융부문 지원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가입자의 요금 등 향후 사업성을 담보로 금융을 일으켜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은 국내 업계 사상 처음이기에 의미가 있는 일로 평가받고 있다.이처럼 삼성물산 프로젝트사업부는 정보, 기술, 금융, 시공 등 관련 부문을 조직화(Organizing)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부서다. 프로젝트사업부가 후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프로젝트사업부는 76년에 생겼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적자 부서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이전에는 섬유 등 단품 수출입이 효자 사업이었지요. 하지만 종합상사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수출입 업무를 확대해가면서 프로젝트사업 비중을 점차 넓혀갔습니다.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김양배 부장의 설명)‘산업의 첨병’이라는 말을 들어왔던 상사맨들은 요즘 자신들을 가리켜 일명 ‘비즈니스 크리에이터’(Business Creator)라고 부른다. 각종 지식부문을 결합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말이다.이들이 그동안 수주한 프로젝트성 사업은 가나 정유공장 플랜트 설치 등 95년까지 3건에 불과했지만 96년 이후 지난해까지 12건으로 대폭 늘렸다. 2005년까지 매출액 7,000억원, 1인당 영업이익 4억원이 이들의 사업 목표이다.이 같은 고부가가치사업에 힘 쏟는 업체는 삼성물산뿐만이 아니다. 삼성과 함께 5대 종합상사들 중 건재한 LG상사도 97년 이후 프로젝트사업을 크게 강화했다. 98년 카타르 정유플랜트를 시작으로 지난해 9월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개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9건(32억5,700만달러)을 수주했다.삼성물산 임은석 홍보부장은 “종합상사들이 산업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 차원에서 단품 수출입 업무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복합수출 및 해외투자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최근 종합상사들의 생존몸부림을 설명했다.해외투자사업도 강화시켜해외투자사업의 경우 삼성은 지난 97년 루마니아의 스테인리스공장 오텔리녹스의 지분(51%)을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공장은 삼성이 인수 당시 50만달러의 세전이익을 올리는 데 불과했지만 인수 직후 420만달러로 8배 이상 뛰었다가 현재는 연간 700만달러의 고수익을 내는 우량회사로 탈바꿈했다.종합상사업계는 삼성물산과 양대 축을 이어온 현대종합상사가 자본잠식으로 힘겨운 상태를 맞이하는가 하면 SK글로벌은 분식회계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사태 이후 최근 들어서야 회복단계에 들어서는 등 지각변동을 일으켰다.삼성물산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8년 삼성 본관 등 부동산 및 투자자산을 매각하고, 의류ㆍ영상 할인점 등의 사업을 정리해 핵심사업으로 역량을 집중시킨 후에야 제대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이 때문에 97년 말 1만3명이었던 직원수는 지난해 말 4,105명으로 무려 59%가 줄어들었다. 특히 삼성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의 삼성자동차 채권 등 부실자산 내역을 공개하고 7,800억원의 충당금을 설정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손익 및 주가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일부 회사들과 달리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고 삼성측은 평가하고 있다.돋보기 / SK글로벌의 생존전략고강도 구조조정·고부가사업으로 거듭난다SK글로벌이 고강도 구조조정과 영업수익성 제고를 통한 회생전략을 본격 가동했다. 회사측은 이 전략이 제대로 수행되면 2005년 매출 17조원, EBITDA 4,570억원의 에너지 및 정보통신, 마케팅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게 된다.EBITDA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자비용 및 법인세 공제 전 이익에서 감가상각비와 기타 무형고정자산 상각 등의 감모상각 등을 합친 것을 말한다.사업구조는 정보통신 유통 및 서비스 통합사업, 석유제품 판매 네트워크 부가가치사업, 산업재 중심의 전문 글로벌 트레이딩, 브랜드 중심의 패션유통사업으로 재편한다는 구상이다.이를 위해 직물과 의류 수출 및 3국간 교역사업은 세계물산에 영업을 양도했고, 신발 수출은 제3자에게 매각하는 한편 사업개발본부조직은 단말기 및 통신장비 수출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반면 전용회선망사업을 비롯한 정보통신분야의 사업비중은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 관계자는 “전용회선은 이동통신사업의 핵심인프라인 동시에 사업자간 통화품질 차이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망 안정성 및 품질제고 측면에서 지속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하며 서비스 진화 및 가입자 증가에 따른 회선수요 증가로 추가수익 창출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한편 SK글로벌은 보유하고 있는 투자유가증권 전부를 매각하고 에너지판매사업과 관련한 주유소 등을 제외한 고정자산 매각을 통해 1조원 규모의 현금을 창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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