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서 정수기 생산업체 사장으로 변신

지난해 1,500여대 판매...할부판매 등 소비자 중심 판매전략으로 올해 50억원 매출 기대

“강웬사가 사업을 한다고….”정수기생산업체인 한우물의 강송식 사장(65)은 고등학교 교사출신 사업가다. 교사가 천직인 줄만 알고 20여년간 몸담아온 학교를 떠나 사업을 시작했다. 강웬사는 교직생활 때 얻은 별명.직언을 잘하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채찍을 들었던 강사장을 동료교사들과 학생들은 ‘강웬사’로 불렀다. 그는 “당시 교육계에서 ‘별난 사람’으로 유명세를 탔다”며 싱긋 웃었다.전북 군산이 고향인 강사장은 군산고에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무작장 상경, 공보처 산하 대한인쇄공사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독학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도 들어갔다.그는 서울대 영어과를 나와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영어선생으로 있던 79년 여름 고혈압, 간염, 위장염 등이 발병해 병치레를 했다. 통원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예 2개월 남짓 병가를 내고 입원했는데도 신통치 않았다. 휴양을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민간요법인 부항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20여일간 부항을 떴다고 한다. “신통하게도 말끔히 낫더라고요.”건강을 되찾아준 ‘부항’이 강사장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교직생활을 접은 82년부터 부항을 알리고 책을 쓰는 등 부항전파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초기에는 교직원 연수현장을 찾아다니며 강의했다. 그러면서 주위의 아픈 사람에게 부항을 떠주고 식이요법을 전수하는 등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이런 생활을 한 지 3년쯤 지난 85년 초 강사장이 정수기개발에 매달리던 사람을 만나면서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둘은 동업의 길로 접어들어 정수기에 인생을 걸게 됐다.찬물이 우리 몸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강사장으로서는 의기투합하는 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이때가 85년 12월 함박눈이 내리던 날이었다.“겨울바람에 살갗은 추웠지만 건강의 원천인 물을 보다 이롭게 할 정수기 만들 생각에 가슴은 용광로였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강사장은 서울 성수동에 다 쓰러져 가는 공장을 마련했다. 그런데 개발자금 확보가 관건이었다.무일푼이었던 그는 옛 동료교사 등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부탁했다.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군요. 어렵사리 1,000만원을 마련했는데 깨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강사장은 난방시설도 없는 공장에서 책을 뒤져가며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불굴의 집념을 보였고, 그 결과 6개월 만에 정수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전기분해가 안돼 물에서 염소냄새가 나는 등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 없어 고리사채를 써가며 꾸려나갔다. 정수기는 팔 데가 없어 옛 동료와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강매하다시피 떠넘겼다. “염치는 없지만 직원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힘든 생활이 연속되자 동업자는 87년 초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손을 뗐다. 사무실운영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강사장은 독립문 인근에 있는 친구 출판사로 옮겼다. 임대료를 내지 않는 대신 친구의 출판일을 도와줬다.이것도 모자라 낮에는 영어학원에 나가 강사로 생활비를 벌었다. 1년 6개월간 계속된 학원강사 생활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사장은 건강을 지키는 제대로 된 정수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집념을 꺾지 않았다.현실은 강사장을 외면하고 있었다. 벼랑 끝까지 몰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그에게 사업에 불을 댕기는 뜻밖의 일이 90년 봄에 생긴다. 포항공대 교수로 있던 제자가 항상 피곤하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선생님이 만든 정수기를 설치해 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좋은 물이 건강을 지키는 보배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제자는 “선생님의 정수기를 한 번 사용해 보고 싶다”며 요청한 것이다. 설치 후 두 달쯤 지나 강사장의 “어떠냐”는 물음에 제자는 동료교수 14명의 설치계약서로 화답했다.이후 정수기는 입소문을 통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판매량이 늘면서 91년에는 서울 보문동 건물로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매년 10~20평씩 늘어 지금은 100여평을 사용하고 있다.하지만 사장실은 따로 없다. 건물 옥탑의 3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직원들과 함께 쓴다.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이 소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강사장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사무실이 궁상맞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한우물이 안정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95년께다. 강사장은 “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한우물에 대한 언론에서의 소개가 잇따르면서 정수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소비자보호를 위해 대리점 판매를 하지 않아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지만 매월 50~60대씩 팔려나간다. 강사장은 “지난해가 가장 행복한 해였다”고 말했다. “그동안 진 빚도 일부 갚았고 처음으로 적자를 면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500대를 팔아 1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6,000대를 팔아 매출 50억원, 순이익 5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이 회사가 만드는 정수기는 전기분해로 만든 약알칼리수(약칭 전해약알칼리수)다. 이 물은 전기분해방식으로 정수해 인체에 이로운 각종 미네랄이 정수 후에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고 강사장은 설명한다. 그는 “일반 정수한 물에 물고기를 넣으면 죽고 꽃을 담가두면 꽃이 바로 시든다”며 제대로 된 정수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한우물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국내 정수기업계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AD) 승인을 받았다. 강사장은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도약을 다지고 있다. 우선 생산규모를 키워 시장공략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이를 위해 지난 5월 경기도 일산 테크노타운 빌딩에 180평 규모의 공장을 마련했다. 이곳에 들어설 설비는 월 3,000대의 정수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로 5억원이 투입된다. 강사장은 “7월 말 가동을 위해 직원도 50여명으로 증원했다”고 밝혔다.강사장은 “최근 들어 미국, 유럽지역에서 수입을 타진해 오고 있다”며 “내년 하반기부터 이들 지역 시장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사장의 꿈은 하나다. 모든 사람이 전해알칼리수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대리점 판매는 하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할부판매 등 다양한 소비자 중심의 판매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02-929-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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