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보장, 퇴직후 일정기간 고용

‘인생은 60부터’라고 했건만 얼마 전 55세 생일을 맞은 회사원 박모씨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인사부장은 그만 보면 “능력 있는 젊은 사람들 기를 살려야 하는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되풀이한다고 한다.정년퇴직까지는 앞으로 3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회사에서는 은근히 명예퇴직을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 박모씨를 비롯한 1948년생 동료들은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아니 대학이라도 졸업할 때까지 회사원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그러나 동료들은 하나둘 명퇴를 택하고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55세 생일이 지나고 보니 이제야 동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박모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젊음을 다 바쳤건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명퇴의 유혹과 배신감 뿐”이라고 토로했다.배터리 수명이 다 됐다올해 55세가 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적잖은 눈치를 받고 있다고 한다. 58세 정년을 3년이나 앞두고 있지만 벌써부터 회사측에서는 적잖은 물밑교섭을 벌이며 명예퇴직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올해 초 금융권에서는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Salary Peak)를 추진하려다 노조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7월1일 공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에서 워크셰어링제(Work Sharingㆍ보직전환 및 임금커브제)를 도입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신보의 워크셰어링제는 올해 55세가 된 직원들에게 현 직책을 내놓고 본인의 능력과 노하우 등을 고려해 관련분야의 새로운 별정직으로 보직을 전환하고 58세 정년까지 신분과 복리후생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55세를 정점으로 임금은 하향 조정된다는 것이 단점이다.예컨대 워크셰어링 대상자는 1차년도에 전직 전 임금의 75%를 지급받고 2차년도에는 55%, 3차년도에는 35%를 받게 돼 3년간 전직 전 임금의 60% 수준으로 임금이 조정된다.신보측은 퇴직금과 관련해서는 보직전환 전의 정상 상태에서 정산되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워크셰어링에 해당되면 58세까지 신분보장은 물론 61세까지도 계약직 고용이 보장된다.보직전환으로 인한 임금부족분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수당으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최근 신보가 시행한 워크셰어링제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신보의 노사합의로 체결된 워크셰어링제에 대해 정년예정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비록 임금은 깎이지만 정년보장과 함께 61세까지 고용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신보측 관계자는 타 기업에서조차 좋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은근히 부러움을 표시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으로 신보측 워크셰어링제 대상자들은 55세부터 58세까지 받는 통상 임금이 전직 전 급여의 60%에 그치기 때문에 임금이 너무 하향 조정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신보측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수당 등으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워크셰어링, 고령자의 고용문제 해결신보가 실시한 워크셰어링제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긍정적인 면이 다소 높은 것으로 나왔다.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신보의 워크셰어링제 도입을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주회장은 “우리나라도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만큼 정년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현재 기업에서는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사측에서 고임금 때문에 고령자를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고 당사자들도 패배의식을 극복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워크셰어링제가 각 기업으로 확대되기 바란다”고 밝혔다.한국방송대 경제학과 박덕제 교수는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기업에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우선 신보의 워크셰어링제가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정확한 연구가 없어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에 이 같은 제도가 정착되면 고령자의 고용문제에 큰 기여는 물론 인력자원 수급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 박사는 “정년이 보장되고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박사는 “직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인적자원은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신보의 워크셰어링제는 단기적으로 봤을 때 생산성이 떨어져 고비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고용문제에서 바람직한 역할을 해낼 것으로 전망된다. 단 유럽에서는 자동차 고실업문제 때 워크셰어링이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임금피크제 성격 강하다전국금융산업노조는 올해 초 금융권에서 추진하려 했던 임금피크제에 대해 강력한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최근 은행측과 공동 임금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금융노조는 은행원의 정년을 63세로 연장할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금융노조 문태석 부국장은 “현행 58세로 규정돼 있는 은행원의 정년을 고령화시대에 발맞춰 63세로 연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은행권이 정년을 연장하면 은행측이 요구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문부국장은 “신보가 시행하고 있는 워크셰어링제에 대해서는 신보조합원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지 보고된 바 없어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은행권 사용자측은 “63세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요구”라고 일축했다.한편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신보가 시행하고 있는 워크셰어링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감추지 못했다. 김박사는 “신보에서 도입한 워크셰어링은 엄밀한 의미로 보면 광의의 임금피크제나 다름없다”며 “정년 예상자의 정년까지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하향 조정하는 것은 임금피크제일 뿐 일자리를 나누는 워크셰어링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또한 김박사는 “우리나라가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만큼 외국의 경우처럼 정년을 보장해 가정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정년을 폐지해 일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고용해 일자리를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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