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crisis)는 어떤 상태의 안정에 영향을 주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 또는 어떤 사상의 결정적이고도 중대한 단계를 말한다. ‘분리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Krinein’에서 유래됐으며, 본래는 회복과 죽음의 분기점이 되는 갑작스럽고 결정적인 병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의학용어로 사용됐다.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다. 단지 의학적인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최근 들어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가 주창되고 있는 것도 주변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각 분야에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관리를 소홀히 하면 순식간에 기업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다. 특히 97년 말 터졌던 외환위기는 평소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줬다. 애석하지만 당시 위기관리에 소홀했던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다.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온다. 예고가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은 불시에 터진 환경오염 문제로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치명상을 입었다.또 다른 식품회사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제조공정상의 문제로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지는 비운을 겪었다. 이 회사는 결국 파문을 극복하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상황까지 몰렸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반면 국내 최대의 놀이공원 시설을 운영하는 삼성에버랜드는 효과적인 위기관리로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매년 기간별, 행사별 주요 사건과 사고 사례를 취합, 분석해 똑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평소에 직원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국내 기업들의 위기관리 수준은 아직 걸음마단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민방위훈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는 사실일까. 국내 기업들의 위기관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이에 는 한국기업들의 위기관리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코콤포터노벨리(주) 커뮤니케이션전략연구소(소장 차희원) 및 이화여대 김영욱 교수팀이 개발한 한국형 위기관리지수(KCMI)를 활용해 국내 300대 기업(지난 5월 가 매출액, 시가총액, 당기순이익 수치를 활용해 선정) 위기관리 책임자급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그 실태를 살펴봤다.기업의 위기관리지수 개발을 통한 객관적 기업평가척도를 마련하고 기업의 위기관리 정도에 대한 진단 및 개선안을 도출하는 데도 목적을 두었음을 밝혀둔다. (조사개요 및 조사방법, 조사대상 특성 등은 박스기사 참조)여기서 잠깐 조사결과를 요약해 보면 전체 위기관리 전체지수는 3.70(5점 척도)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분석을 담당했던 코콤포터노벨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연구소측은 “한국기업의 위기관리가 비교적 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응답기업 가운데 35% 정도는 300대 기업 가운데 50위권에 드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위기관리가 잘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또 위기관리전체지수를 구성하는 세 부분 가운데 위기이해지수와 위기시스템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위기커뮤니케이션지수는 상대적으로 낮게 조사됐다. 차희원 소장은 “전반적으로 대다수 기업들은 제품의 안전성이나 인터넷 시스템 등 기술적 요소에 대한 안전관리에 치중하고 있고, 위기관리를 위한 훈련이나 워크숍, 미디어 관리 등과 같은 커뮤니케이션관리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위기관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회사 일이고, 나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위기관리는 앞으로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평가된다. 위기 없는 기업, 위태로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많이 출현하기를 기대해본다.설문 조사 개요 및 조사대상 특성조사과정은 크게 5가지 단계를 거쳤다. 문헌연구 및 자료수집(1단계)과 심층인터뷰(2단계), 전문가 검증(3단계) 등을 거쳐 최종 위기관리전체지수 항목을 선정(4단계)했고, 마지막으로 설문조사에 착수했다.설문조사는 지난 6월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됐다. 각 설문의 응답항목은 ‘전혀 그렇지 않다.(5점)’, ‘별로 그렇지 않다.(4점)’, ‘보통이다.(3점)’, ‘약간 그렇다.(2점)’, ‘매우 그렇다.(1점)’로 구성돼 있고, 점수는 평균치(5점만점)로 나타냈다.300대 기업 가운데 111개사가 참여했으며, 인터넷 서베이와 전화를 활용한 Follow-up 방식을 활용했다. 또 분석은 SPSS 11.5(사회과학 통계분석 프로그램 패키지)를 활용한 빈도, 교차분석, 요인분석, 신뢰도검증, 회귀분석 등의 방법으로 했다.조사 및 분석작업에는 와 코콤포터노벨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연구소(차희원 소장, 최정식 연구원 등)와 김영욱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함께 참여했고, 이화여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의 이의경, 윤하나, 박선영씨가 자료조사 및 분석보조 업무를 진행하며 도움을 줬다.조사대상 업체는 먼저 업종별로는 제조업(55.9%)이 가장 많았고, 이어 금융보험업(17.1%), 서비스업(12.6%), 건설업(6.3%), 도소매업(5.4%), 운수업(0.9%), 무응답(1.8%) 순이었다. 참여업체별 기업순위 분포는 1~10위(6.3%), 11~30위(5.4%), 31~50위(7.2%), 51~100위(9.2%), 101~200위(16.2%), 201~300위(9.9%)·무응답(45%)의 분포를 보였다.업체별 위기관리 담당부서를 보면 기획 관련팀이 23.4%로 가장 높았고, 홍보팀과 다른 부서 연합팀(20.7%), 경영관리팀(11.7%), 비상계획팀(10.8%), 홍보 관련 팀(4.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기타(고객, 환경 관련팀 등)가 9.9%, 무응답이 18.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