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천국 … 권한·책임은 ‘실종’

“가입자가 전국민이니 국민연금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차적으로는 관할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 기획예산처, 국회 등이 얽혀 있다. 이해당사자가 이렇게 많다 보니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국민연금을 누가 움직이는지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관할 정부부처는 보건복지부지만,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등 다른 힘센 정부부처들도 얽혀 있고, 국회도 간여한다.현재 국민연금을 움직이는 것은 많은 ‘위원회’들이다. 먼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태복 장관)이 위원장이며, 관련 정부 부처의 차관과 각계 단체 대표로 구성돼 있다.재정경제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차관, 경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전경련 부회장, 한국노총, 민주노총,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음식업중앙회, 소비자보호단체 협의회, 참여연대,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표 등이다. 여기서 기금운용계획 및 운용내역에 대한 사항 등을 심의하고 또 의결한다.기금관리 기본법 어물쩍 개정산하에서 이를 받치는 것은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다. 위에 언급된 단체의 차관이나 부서의 국장, 그리고 각급 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들로 구성된다. 기금운용위원회와 실무평가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에 따라, 실제 운용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운용본부에서 맡는다(본부장 김선영 이사).기금운용위원회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이긴 하지만 상설이 아닌데다, 구성 인사의 면면에서 드러나듯이 전문성보다는 대표성에 중점을 두고 인적 구성이 돼 있다. 동의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위원회이다 보니 책임도 결정과 실행의 주체도 불분명한 게 현재 상황이다.복지부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 ‘중장기투자정책위원회’다. 이는 권한을 가진 기구가 아니라 연금운용의 혁신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구성한 일종의 태스크 포스팀. 최근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30%까지 늘린다는 것이 바로 이 임시기구인 중장기투자정책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다.여기에는 주로 투자자문사 사장 증권사 상무 등 자산운용 업계의 전문가와 학계 교수들이 참여했고, 올 4월에 개선안을 내놓았다. 개선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국민연금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것과, 자산운용 및 배분에 관한 원칙에 대한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내놓은 안이 언제쯤, 얼마만큼 원안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데다, 지난해 12월 임시국회에서 ‘기금관리기본법’이 어물쩍 개정되면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참견할 상전이 둘이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이 개정법은 국민연금기금 운용계획과 결산내역이 매년 국회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또 국회 심의에 앞서 기금 운용 계획을 기획예산처가 총괄, 조정하도록 했다.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안 그래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데 이를 더 부추길 뿐 아니라 국민연금 운용에 정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중장기투자정책위원회가 만든 안의 골자가 기금운용체계를 전문화 단순화하고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자는 것인데,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국회의 심의를 받는 것은 각 기금의 사업성 예산이며 여유자금은 지금처럼 각 기금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중장기투자정책위원회장을 맡았던 서울대 정운찬 교수는 “참여하고 보니 복지부의 의지가 대단한 것을 느꼈다”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가했다.하지만 기자가 만난 모든 관계자들은 예외 없이 이런 표현을 썼다.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저는 그저 참고 의견을 냈을 뿐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