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자” 세계 각국서‘러브콜’

“바이오 벤처의 기회의 땅, 아이오와로 오십시오.”4월 25일 오후 1시, 대덕밸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내 창업보육센터인 바이오벤처센터(BVC) 회의실. 노랑머리, 푸른 눈의 신사가 BVC 입주 기업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미 아이오와주립대 제임스 블로델 부총장이다. 그는 특유의 말솜씨와 청명한 목소리로 참가 기업인들을 유혹했다.옆에 있던 아이오와 주립대 창업보육센터 미첼 블루틴 이사장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참가 기업들은 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이오 아메리칸 드림’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들이 들고 온 선물은 파격적이다. 아이오와주립대 내에 ‘한국 바이오벤처 센터’를 지을 예정이란다.블로델 부총장은 “대덕밸리 바이오 벤처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경우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기반시설, 협동프로젝트, 자금지원 등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면서 “현지기업과 최적의 파트너십을 통해 세계적인 바이오 벤처기업으로 가는 ‘로드맵(Road Map)’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같은 날 오후 4시 대덕밸리 벤처기업 씨라인(대표 이종성) 사무실. 낚시 찌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굴뚝‘에 가까운 기업이지만 ‘실력’ 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올들어 해외서 10여개 단체 방문이날 이 회사에는 일본 미야자키(宮崎)현 미야꼬노죠(都城)시 이와하시 다츠야(岩橋辰也)시장과 산업부 간부 일행이 찾았다.이들이 바쁜 일정을 뒤로 한 채 현해탄을 건넌 것은 미야꼬노죠시에 합작기업을 설립하겠다고 나선 이 회사의 심중을 파악하고 구체화하기 위해서다.이 자리에서 이와하시 다츠야 시장은 “씨라인이 합작기업을 설립하겠다면, 세제 혜택과 시 차원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굳게 약속했다. 시장이 직접 나서 공개 프로포즈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함께 온 관계자는 귀띔했다.대덕밸리 벤처기업에 대한 외국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러브 콜’이 줄을 잇고 있다. 올들어 대덕밸리를 찾은 외국정부와 자치단체들은 10여 곳. 한 달에 2~3개의 방문단이 대덕밸리를 찾은 셈이다.이처럼 올들어 유난히 외국의 방문객들이 잇따르고 있는 이유는 대덕밸리가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몰려있는 것으로 소문이 번졌기 때문.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이들 대덕밸리 벤처기업을 조기에 유치함으로써 공동협력이나 기술교류 등 시너지를 충분히 창출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는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 지난 2월 일본 미야자키현이 대덕밸리 IT(정보기술) 벤처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포즈에 나섰다.미야자키현은 현(縣)내 각 지역을 연결하는 ‘정보하이웨이 21’ 구상에 따라 첨단 IT벤처기업의 인큐베이팅 시설인 ‘한·일 IT 국제센터’ 오픈을 앞두고 이곳에 입주할 우수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유치 조건도 ‘경제대국’ 일본으로서는 유래가 없다. 5억엔의 보조금과 각종 세제 감면 혜택, 고속 통신회선 사용 가능, 산·학·관의 탄탄한 시스템 제공 등 ‘무차별’ 지원을 약속했다.츄망 쇼이치 미야자키현 상공노동부장은 “대덕밸리 IT 벤처기업들은 상당히 매력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일본 진출을 계기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공세가 계속되면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반도체 소자 및 TFT LCD(초박막 액정표시 장치)제조용 전이막 제조기술을 보유한 신종(www.wave21c.com, 대표 전영권)이 일본에 합작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다. 또한 시장이 직접 비행기로 날아온 씨라인 역시 합작기업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의 손짓도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 3월 27일 중국 동북 3성의 관문 도시인 심양(瀋陽)시 린 하이 보(林海波)정보통신 산업국장 등 4명이 대덕밸리를 찾았다.대덕 벤처밸리도 적극 화답물론 기업 리크루팅이 주목적이다. 이들은 대덕밸리 한비젼과 에이스랩, 예원테크, 아이피에스, 베리텍, 543미디어텍, 코아텍 등 기업을 둘러보며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이들은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에 강한 애착을 표시했다.린하이 보 심양시 정보통신 산업국장은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중국과 협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면서 “벤처기업이 심양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진출할 경우 정보와 혜택을 부여할 생각”이라고 기업유치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덕밸리도 화답했다.이들 방문 기업 중 베리텍과 예원테크, 543미디어텍 등 3개 기업이 지난달 27일 직접 3박4일 일정으로 심양을 다녀온 것. 이 기업들은 중국에 합작기업 설립과 판로개척, 투자유치 등을 타진하며 중국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543미디어텍 이명진 사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방문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면서 “심양시의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접촉과 인간적 신뢰를 쌓아 중국에 대덕밸리의 기술과 제품을 런칭시킬 각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이에 앞서 중국의 신흥 하이테크 소프트웨어 개발단지로 부상하고 있는 다렌(大連)시도 대덕밸리 벤처기업 ‘껴안기 작전’에 동참했다.다렌시 이만재 부시장을 비롯해 지역 기업인 20여명이 대거 방문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중국 IT산업 설명회’를 갖고 다렌시의 대표적 IT기업과 대덕밸리 IT벤처간 파트너십을 강조했다.이밖에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경제무역대표단과 일본 경제산업성 산업기술환경국, 홋카이도(北海道) IT위원회,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영국대사관, 말레이시아 대사관 등이 대덕밸리를 방문해 기업유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끝마쳤다.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최대 모임인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이경수 회장은 “외국정부의 잇따른 구애작전은 국제화를 지향하는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국가간 벽을 허물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 나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돋보기테헤란밸리 ‘속도 조정중’‘벤처’에서 어엿한 ‘기업’으로 변신 시도5월 3일 밤 11시.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역삼역, 선릉역을 지나 삼성역으로 이어지는 국내 최대의 IT(정보기술) 거리인 테헤란벤처밸리. 금요일 밤이지만, 어디를 봐도 이곳이 한 때 ‘불야성’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흔적은 없다. 물론 벤처붐이 한창 일던 2~3년 전 같지 않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지난해 코스닥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풍경이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난 지금도 여전히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겉 모습은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지금 태헤란밸리는 ‘체질개선’을 하는 중이다.역삼역 근처의 한 고급술집을 운영하는 김사장은 “요즘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예전처럼 접대를 목적으로 흥청망청 마시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한 CRM(고객관계관리) 전문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주위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받기 위해서나 제품공급권을 따내기 위해 무리한 비용을 쏟아붇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그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그 동안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벤처기업들이 연루돼 비난의 화살을 맞아왔던 만큼 업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얼마 전까지 올 하반기 내 코스닥시장 등록을 준비 했던 한 스포츠전문포털 업체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의 심사기준이 까다로워진데다, 회사가 어느 정도 수익이 나고 있는 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겠냐”며 “심사 기준에 100% 부합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두고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기로 하고 등록을 아예 내년이나 내후년 쯤으로 미뤘다”고 말했다.‘대박 보상’ 아닌 ‘평생직장’으로 인식이런 분위기다 보니 벤처인들의 일과와 사내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우선 가장 돋보이는 게 ‘직원복지’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개발실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밤새 작업에 몰두하던 일은 ‘그때 그 시절’얘기가 된 지 오래다.저녁 7시쯤 선릉역에서 만난 한 인터넷 보안 업체 직원은 “직원들 대부분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6시 퇴근 시간을 지킨다”며 “올 들어 퇴근 후 근처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학원에 가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아이엠넷피아 박재홍 사장은 “더 이상 직원들에게 ‘한꺼번에 보상해줄테니 고통을 감내해 달라’는 요구는 통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이 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해 달라는 호소와 함께 대기업 못지 않은 복리 후생 체계를 갖춰 나가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요즘은 오히려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해도, 마다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만큼 신중한 회사 살림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현재로선 태헤란밸리가 예전에 그랬듯이 냄비처럼 끓어오를 기미는 없다. 대신에 ‘벤처’에서 어엿한 ‘기업’으로 틀을 잡아가는 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이임광 기자 LLKHK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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