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까지 11억달러투자 만리장성 공략

베이징(北京)의 최고급 호텔인 베이징판디엔(北京飯店·북경호텔). 지난달 29일 이곳에 지아칭린(賈慶林) 당서기, 류치(劉淇)시장 등 베이징정부의 최고 지도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중국 기자 30여명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 사이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보였다. 베이징 지도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이날 행사는 현대자동차와 베이징자동차(北京汽車)간 합자회사(가칭 베이징현대자동차)설립을 위한 ‘전략합자협의서’ 체결. 협의서 체결은 그러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형식적 절차였다.두 회사는 이미 합자회사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고, 본 계약 서명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합자협의서’ 체결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룽지 총리에게 합자회사 비준 압력을 넣기 위한 베이징정부의 세 과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현대는 상반기 본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올해 말부터 ‘EF소나타’를 베이징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는 초기 투자비 1억 달러를 포함해 오는 2005년까지 4억3,000만 달러, 2010년까지 총 11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현대가 중국진출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때 다른 외국 자동차기업은 오히려 한 발 물러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일부 중국진출 외국 자동차업체들은 오히려 투자규모를 줄이고 있다.대표적인 중국 진출 자동차업체인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최근 20년 계약 연장을 하면서 증자를 하지 않았다. 대신 140억 위안(1위안=약150원)을 서비스 판매 부분에 투자키로 했다.GM은 상하이GM에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추가 생산라인을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일본 혼다 역시 더 이상 광주혼다 공장에 자금을 투입하지 않기로 했다.외국 자동차회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중국에 투자하는 게 더 적합한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중국기업과 지분율 50 대 50의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기존 직접투자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그동안 중국진출 외국 자동차메이커들은 황금기를 구가했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거의 경쟁이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를 팔았다. 각 지방 정부가 시장을 보호해주고, 판로를 개척해주었다. 게다가 자동차 값은 선진국에 비해 약 150% 비싸기도 했다.그러나 WTO가입으로 투자기업의 경영 여건은 크게 바뀌게 된다.우선 자동차 합자공장 설립에서 국산화 요구가 취소된다. 부품을 해외에서 사들여 오면 된다. 외국 자동차관련 기업은 부품분야 단독 투자를 할 수도 있다.성정부가 중앙정부의 비준 없이 승인할 수 있는 투자사업 규모가 기존 3,000만 달러에서 1억5,000만 달러로 높아져 부품 공장 설립이 쉬워진다. 기술이전 제한도 사라진다. 또 합자기업이 생산할 수 있는 차 모델과 생산영역이 WTO가입 2년 후 자유화된다.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자동차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는 오는 2006년 7월 이전에는 합자기업의 중국 측 지분이 바뀔 수 없다는 점이다. 외국기업은 50%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외국 단독기업의 출현은 불가능하다.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동차업체는 투자 규모를 늘릴 것이냐, 아니면 줄일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외국업체, 경영권 보장돼야 투자확대 계획우선 투자액을 늘리는 경우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내수 시장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시장으로 가깝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비관세 장벽(수입허가 등)을 피할 수도 있다.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이나 유럽 기업 중 일부가 투자 증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투자 증액 조건으로 내건 조건이 있다. 경영지배권이다. 지분의 50%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중국 파트너에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입장이다.외국기업들은 자본운용 기술개발 시장전략 등에서 시시콜콜 끼여드는 중국 측 파트너 때문에 사업을 못할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50%에서 단 한 주도 넘길 수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포드는 경영권이 확보돼야 중국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볼보 역시 중국에서의 직접투자는 않겠다고 밝혔다. 50%의 지분으로는 중국에서 자동차 선진 기술 및 서비스 노하우를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투자분야를 기존 생산시설에서 서비스 분야로 옮기고 있다. 자동차 판매망 구축 및 할부금융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분야는 자동차산업 매출의 57%를 차지한다.중국은 아직 미미하다. 이 시장을 선점, 자동차 대량 판매시대를 준비하자는 입장이다. 폴크스바겐이 140억 위안을 서비스 판매 부분에 투자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또 다른 경우는 투자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중국을 단순 부품조립 기지로 활용하자는 차원이다.중국의 외국자동차 회사는 앞으로 부품 수입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10%의 관세만 내면 된다. 결국 자국에서 생산한 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중국에서 조립, 판매할 수 있게 된다.본국의 기술에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하자는 전략이다. 많은 외국기업들이 이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머뭇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자동차 부품시장 개방 역시 투자를 막고 있다. 많은 부품업체들이 중국에서 단독 또는 합자회사를 설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방정부의 자동차 육성 정책으로 엔진 등의 부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합자 부품 공장이 속속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중국 자동차 공장은 더욱 난립하게 될 것이다. 기존 업체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중국에 진출하려는 자동차 업체의 기본 전략은 투자 규모를 줄이면서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들은 중국이 외국기업에 50%이상의 지분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투자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대규모 공장을 설립하는 기존 투자방식의 중국 진출 시기는 지났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woodyhan@hankyung.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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