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 위상약화 따른 일시적 현상

원화환율 올해안 1,250원 이하로 떨어지기는 어려울 듯

최근 들어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조짐이 뚜렷하다. 올들어 1백30엔대가 지속됐던 엔화 환율이 1백26엔대로 떨어지고 유로화 환율은 0.91달러대까지 상승했다. 원화 환율도 장중 한때이긴 하지만 1천2백70원대까지 급락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지난 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한동안 지속됐던 달러화 약세국면이 재현되는 것인가 하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최근 들어 미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상대국측 요인보다는 미국측에서 제공하는 측면이 강하다. 비록 미국의 1/4분기 성장률이 5.8%로 높게 나왔으나 2/4분기 이후가 불안하다.확실한 수요요인이 없는 데다 유가상승 등 미국경기의 회복세를 언제든지 발목을 잡을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가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negative wealth effect)도 미국경기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90년대초에 이어 쌍둥이 적자시대에 접어드는 것도 달러화 약세의 원인이다. 이미 이번 회계연도 상반기에만 재정적자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무역적자가 4천억 달러가 넘어선 상황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아무리 강한 달러화 정책을 추진할 의사를 밝히더라도 시장에서는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결국 한동안 안전한 국가(safe-haven country)로 인식돼온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미 달러화 약세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국면이 아직까지 기조적으로 정착됐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무엇보다 미국 이외의 여타 국가도 자국통화 가치가 강세가 될만한 뚜렷한 요인이 없기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근 들어 엔화, 유로화를 비롯한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미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반사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일본도 엔화강세 받아들일 입장 못돼최근 들어 일본경제는 부분적으로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경기회복의 관건인 민간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질 않고 있다. 현재 일본 국민들의 소비는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재정정책면에서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11%, 1백32%에 이르고 있어 여유가 없어진지 오래됐다.특히 일본경제가 처한 여건을 감안할 때 현 수준 이상의 엔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잇는 입장이 못된다. 현재처럼 민간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엔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엔고에 따른 디플레 효과로 경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책당국자들이 엔화 환율의 적정수준을 1백30엔 내외로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유럽경제도 프랑스 조스팽 총리의 패배로 우파로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우파는 경제통합보다는 회원국들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해온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좌파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추진해 왔던 유럽경제통합이 지연돼 오히려 유로화 가치회복에는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반면 현재 미국경기는 저점을 통과하고 회복국면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실제로 경험적 확률이나 3개월 평균 주가수익률,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가장 신뢰하는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장단기 금리차를 보더라도 일제히 미국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3~4%대로 높아질 것이라는 ‘V’자형 견해와 조만간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것이라는 ‘W’자형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여러가지 문제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나 기본적으로 성장주도 산업이 있느냐와 직결된다. 이 점에 있어서 부시 정부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첨단기술업종과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전통적인 제조업간의 균형을 강조하는 ‘융합경제(fusion economy)’를 지향하는 산업정책을 펴고 있어 경기회복 속도는 종전에 비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미 달러화 약세기조 정착가능성 낮아결국 일본과 유럽 등 상대국 경제와 미국의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플라자 합의 이후 시대처럼 미 달러화 약세기조가 정착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미국경기와 미국증시가 회복될 경우 언제든지 미 달러화 가치는 정상수준을 되찾을 수 있는 여건이다.문제는 최근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원화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외환당국의 입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현재 당국은 외환보유고가 1천억달러를 넘어섬에 따라 추가적립에 따른 만만치 않은 기회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경기조절 차원에서 원화 절상을 하나의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외환수급에서 달러공급 과잉상태가 나올 경우 그대로 환율로 밀어내 반영시킬 가능성이 높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올들어 1/4분기까지는 엔화 환율에 의해 원화 환율이 좌우돼 왔으나 앞으로는 외환수급 요인이 원화 환율 변동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외환수급 요인이 올해 남은 기간에 별로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경상거래 측면에서 경기 회복의 과도기적인 단계에는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앞질러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것이 관례다. 주요 예측기관들은 지난해 95억달러 내외의 흑자를 기록한 경상수지가 올해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결국 관건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 남은 기간동안에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유입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추가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은 지난해보다 좋지 않다.국내증시에서 어느 정도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는 데다 구조조정도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어 선진금융기법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이익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2/4분기 이후 외환수급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여건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원화 환율이 크게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대내외 전망기관들이 올해 안에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2백50원 이하로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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