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아닌 ‘금맹’이 문제인 이유[리스크 관리 ABC]

[리스크 관리 ABC]

게티이미지뱅크


필자는 영화 감상이 취미다. 특히 역사물이나 금융 관련 영화를 좋아하는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스캔들 영화가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안다. ‘마진콜(2011년)’, ’아비트라지(2013년)’, ‘빅쇼트(2015년)’ 등이 대표적인데 주위 사람들이 영화 타이틀에 대해 필자에게 많이 문의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타이틀만 봐선 금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은 도저히 영화의 내용을 짐작할 도리가 없다.

신문의 경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MBS·ABS·ELS·DLS·IPO·ETF·레버리지·녹인·녹아웃·워런트·서브프라임 등 도무지 알 수 없는 외계어 급의 외래어들이 난무한다. 문제는 옛날처럼 이를 몰라도 경제 활동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신문 기사도 이해할 수 없고 뉴스 논평도 알아듣지 못하겠고 은행 창구에 가면 신상품을 소개하는 직원들의 설명이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바로 문맹 아닌 ‘금맹’이 문제다.

외래어를 쓰는 금융 용어야 너무 전문적이어서 그렇다 치자. 우리말로 소개되는 금융 상품이나 금융 제도도 쉽지 않다. 주식 시장에서 많은 논란거리인 공매도도 잘 이해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주가지수나 금리를 거래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오늘 당장 실물이 교환되지 않고 미래에 교환된다는 선물 거래는 무엇인가. 금융 파생 상품이 많이 거래된다는데 옵션은 선택권 아닌가. 스와프는 또 뭔가.

“보험료를 몇 년이나 꼬박 꼬박 냈는데 해지 시 돌려받는 게 원금도 안 된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있어요.” 매년 국정 감사에서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단골 질문이다. 보험의 기본 메커니즘도 이해하지 못하니 이런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13년 전 키코 사태나 작년 사모펀드 사기 스캔들도 금융회사 불완전 판매가 기본적인 문제였다지만 소비자의 금융 이해력 부족도 사태 악화에 한몫했다고 본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고위험·고수익 금융 상품을 덥석 구입하고 나서 손실을 본 후에야 불완전 판매니 사기니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는 곤란하다.

금융 소비자 본인을 위해 또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금맹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 쓸데없이 금융 상품 이름이나 금융회사의 종류 나열 등의 피상적인 지식은 접고 금융의 기본적인 메커니즘 교육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왜 투자해야 할까. 기업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수익만 높으면 좋은 투자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돈을 벌려면 대가를 치르는 게 마땅하다. 즉 ‘수익-리스크(return-risk)’의 메커니즘을 익혀야 한다. 리스크 분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투자의 중요성, 좋은 투자란 무엇인가, 투자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하나, 남의 돈을 쓰는 장점과 문제점, 돈의 흐름을 제대로 관리하는 게 왜 중요한가,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10년 넘게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해 온 대한민국 젊은이에게 쉬운 단어들만 나열된 다음 문장을 번역하고 해석하게 해보자. ‘Calls are worth more alive than dead.’

금융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문제다. ‘콜옵션은 만기 이전에 행사할 이유가 없다’란 뜻이니 말이다.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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