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 해운대 아이파크 인근 주민들에게 태양 반사광 손해배상 판결
[법알못 판례읽기]인근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 벽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주민들이 눈부심 등의 피해를 봤다면 시공사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건물 태양반사광 손해 배상 소송과 관련된 대법원 첫 판례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들은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다. 그리고 피고는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해운대 아이파크 아파트)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이다.
원고들은 해운대 아이파크에서 약 300m 떨어진 A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여름철 일몰 직전 아이파크 외벽에 반사된 햇빛이 거실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겪는다며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강한 햇살로 인해 불쾌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등 생활 방해를 받고 있고 신축 건물로 인해 조망권과 일조권의 침해를 입게 됐다”며 시공사는 원고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는 “건물 신축으로 인해 생긴 경면 반사는 적절한 수단을 통해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침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고 반박했다.
1심 “수인한도 넘었다는 증거 없어”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반사되는 햇빛이 주민들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는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1심을 맡은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재판부는 “생활 방해(눈부심 등의 불편)로 인한 피해 주장에 대해 살펴보면 건물 외벽에서 반사되는 햇살로 원고들의 생활 방해 정도가 수인한도를 넘는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이를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조망권이나 일조권 침해에 대한 원고들의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조망권 침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건물이 위치한 곳은 일반 상업 지역으로 원고들로서도 어느 정도 업무용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원고들이 그간 누려 온 경관에 대한 조망은 주변에 이를 차단하는 건물이 없는 결과 반사적으로 얻어 온 이익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망권은) 사회 통념상 이익으로 승인돼야 할 정도로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조권 침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건물의 신축으로 인해 그 이웃 거주자가 직사광선이 차단되는 불이익을 받은 경우 그 신축 행위가 사법상 위법한 가해 행위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그 일조 방해의 정도가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인용하는 수인한도를 넘어야 한다”고 기준을 설명했다.
이어 “사회 통념상 수인한도를 넘었는지 여부는 피해의 정도, 피해 이익의 성질 및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 가해 건물의 용도, 지역성, 가해 방지 및 피해 회피의 가능성, 교섭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기준을 이번 사건에 적용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동지를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중 일조 시간이 연속해 2시간 이상 확보되거나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8시간 중 일조 시간이 최소한 4시간이 확보돼 있었는데 신축 건물로 이를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판단 바꾼 2심, “눈부심 생활 방해 수인한도 넘어”
판결은 항소심에 가서 뒤집어졌다. 원고 패소 판결한 1심과 달리 2심은 “피고(HDC현대산업개발)는 원고들에게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며 “별지 금액에 대해 피고는 2011년 11월부터 2013년 6월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주문에 넣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눈부심 등의 생활 방해 정도가 사회 통념상 수인한도를 넘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빛은 쾌적하고 건강한 생활에 필요한 객관적 생활 이익이기는 하지만 과도한 휘도(눈부심의 정도)의 빛이 전달될 경우 거주자가 누리는 주거의 평온에 침해가 발생한다”며 “원하지 않는 빛이 누군가의 영역에 들어갔을 때 시야의 방해를 일으키고 거실 벽면에 그림자가 생기거나 실내 온도를 상승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감정인의 감정 결과와 법원의 현장 검증 결과에 따르면 수인한도를 넘었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건물을 신축할 때 온열 환경 개선을 위해 로이 복층 유리를 사용했는데 로이 복층 유리는 일반적인 복층 유리에 비해 가시광선 반사율이나 자외선과 적외선을 포함한 전체적인 태양 광선 반사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 건물 중 북·서측 유리면은 표면이 거울과 같고 반사도가 높아 경면 반사를 훨씬 많이 하게 된다”며 “게다가 건물 외관은 큰 타원형을 이루고 있고 저녁 무렵에 서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의 입사각과 반사각을 지속적으로 일치시켜 건물의 북쪽에 위치한 원고들 아파트 일대에 경면 반사를 상당시간 지속시킨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 일조권 침해와 관련된 부동산 가치 하락 폭 등을 고려해 손해 배상금을 정했다. 다만 반사광 때문에 실내 온도가 높아져 더 내게 된 냉방비도 물어내야 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소를 기각하며 다시 한 번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은 “빛 반사 시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빛이 실내로 유입되는 경우에는 실내 밝기가 극대화돼 안정과 휴식을 취해야 할 공간인 주거에서 거주자가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며 “실내에서 외부 경관을 바라보기 어렵게 되는 등 일시적으로 주거로서의 기능을 잃게 돼 기본적인 주거 생활에 불편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원고에게 이 사건 건물의 외벽 유리에 반사된 태양 반사광으로 인해 참을 한도를 넘는 생활 방해가 있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대법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냉방비용 상당의 손해 배상을 구하는 주장은 배척한다고 덧붙였다.
돋보기》손해배상금 지불할 때 붙는 민사 법정이자율, 63년째 '5%'
민사 재판에서 손해 배상 등의 금전을 지급해야 하는 쪽이 원금에 붙여 내야하는 법정 이자 이율은 민법상 5%로 규정돼 있다. 1958년 해당 법안이 제정된 이후 한 번도 바귀지 않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패소 당사자는 통상 소송을 시작한 시점부터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 연 5%, 판결 선고 이후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소송 촉진 특례법상 금리)로 원금에 대한 이자를 물어야 한다.
해운대 아이파크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피고는 2011년 11월부터 2013년 6월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20%(2019년 개정돼 현재는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주문에 넣었다.
해당 법정 이율이 ‘제로 금리’와 다름없는 현 경제 상황과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법정 이율은 판결 선고 뒤 신속한 채무 이행을 위해 비교적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저금리 상황과 지나치게 동떨어지고 재판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 등을 고려하면 낮출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