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화장품 로드숍, ‘脫뷰티’로 생존 모색한다

반려동물 식품·카페·건기식까지 사업 영역 다각화…뷰티와 시너지는 미지수

[비즈니스 포커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에 바빴던 과거와 달리 번화가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폐점한 점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은 가뜩이나 어려웠던 로드숍 화장품 시장에 직격탄을 가했다’

지난해 6월 10일 한경비즈니스 기사 ‘위기의 화장품 로드숍…반전 카드는 O2O·플래그십 스토어 강화’는 로드숍 브랜드들의 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의 한한령(한류 금지령) 이후 좀처럼 회생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게 된 코로나19 사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로드숍들은 점포를 재단장하고 온라인 판매 비율을 높이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최근 로드숍들은 아예 화장품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1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니모리 펫 푸드부터 미샤 카페까지4월 4일 화장품업계와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 시스템에 따르면 로드숍 전성기를 이끈 에이블씨앤씨의 미샤는 지난해 매장 164개를 닫은 데 이어 올해 1~3월에도 30개를 추가 폐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매장 수는 400여 개로 줄어든 상태다. 한때 미샤 매장이 800여 개에 달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대기업 로드숍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이니스프리는 매장 수가 2019년 920개에서 지난해 656개로 줄었다. 에뛰드하우스는 2018년 393개에서 2019년 275개로 100개 이상 줄었고 4월 4일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나오는 매장 수는 164개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2019년 598개에서 지난해 463개로 감소했다.

이들은 한 때 한국 화장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K뷰티의 주역들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유통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를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특히 이들의 부진은 H&B(Health&Beauty) 스토어가 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화장품 시장의 최대 고객으로 성장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는 하나의 브랜드만을 볼 수 있는 로드숍보다 여러 브랜드를 탐색하는 H&B스토어에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유통 시장이 온라인 위주로 재편된 것도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로드숍들은 체험형 매장 강화, H&B 입점, 온라인몰 재단장 등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하지만 성과는 여전히 더디다. 마스크를 쓰면서 색조 화장품 수요가 줄었고 명품 브랜드부터 인플루언서 론칭 제품까지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로드숍들은 화장품 밖의 영역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토니모리는 한국 최대 단미 사료 제조업체인 ‘오션’을 인수한다. 2014년 설립된 오션은 사료와 간식 등 프리미엄 펫 푸드와 위생용품 등을 제조·유통하고 있다. 토니모리는 오션 인수를 통해 수출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오션은 2019년부터 펫 간식을 수출하고 있는데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록을 완료하고 캐나다 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 K뷰티 열풍으로 노하우를 다진 토니모리의 해외 인프라를 오션에 적용해 ‘K펫 푸드 붐’을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화장품과 펫 푸드의 주요 구매 결정권자가 20~40대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내세워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3월 31일 열린 주주 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물류 대행업과 휴게 음식점업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카페와 음식료 사업 진출 확장이 기대된다. 운영 중인 매장도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매장을 폐점하고 ‘웅녀의 신전’이라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아직 문을 연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웅녀의 신전’을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만 500개가 넘는다.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인테리어에 쑥을 원료로 만든 음료를 판매함으로써 미샤의 대표 상품인 개똥쑥 토너 등과 연결지었다. 또 4가지 주제로 운영되는 미디어아트존은 ‘인증샷’ 장소로 손색이 없다는 후문이다.

무조건적인 매장 철수 대신 다양화 필요 클리오와 페리페라 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색조 화장 전문 브랜드 클리오는 3월 26일 열린 주주 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식음료품 및 건강기능식품의 제조·유통·판매’를 추가했다. 이미 클리오는 지난해 9월 건강기능식품 제조 및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는 자회사 ‘클리오라이프케어’를 설립해 이너뷰티로 사업 다각화를 준비해 왔다. 뒤이어 연말에는 신규 사업인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를 기획하고 연구하는 건강식품 파트를 신설했다.

이들의 도전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손성민 리이치24시코리아 지사장은 “이미 이커머스 채널에서 발 빠르게 자체 상표(PB)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하고 건기식과 카페 창업 등이 포화 산업군이 돼가고 있어 기존 화장품 사업과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에뛰드하우스와 더페이스샵 등 K뷰티 공룡들이 보유한 로드숍들도 고민이 깊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매장 철수가 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매장을 접는 것보다 기존 점주들에게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시함으로써 ‘홍보 수단’의 역할을 이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손 지사장은 “제품을 직접 테스트할 수 있는 매장과 플래그십 스토어는 화장품 판매에 필수적 요소”라며 오프라인 매장의 형태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브랜드들은 스킨케어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색조 브랜드 매장을 확장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무조건 온라인 위주로 가기보다 품목 특성이나 브랜드 전략에 따라 복합적인 판매 형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적자에 시달리는 로드숍 중에서는 선방하는 곳도 있다. 특히 온라인 판매 전환을 서두른 브랜드들은 향후 기대해볼 만하다. 색조 화장품 브랜드 클리오는 온라인 채널 강화, 수출 확대, 신규 브랜드 론칭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현재 49개인 매장 수도 2021년 상반기 38개로 축소해 고정비 부담을 덜었다. 위기 속에서 사업 다각화의 속도를 높인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오프라인 판매 비율이 높은 곳들은 향후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란 우려를 안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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