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선언이 ‘ESG 2.0’ 기폭제…이젠 C레벨이 챙겨야 할 생존 이슈죠”
입력 2021-04-13 07:09:01
수정 2021-04-13 07:09:01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RE100 한국에선 어려운 구조, 중국 사업장에서나 가능한 게 현실”
[ESG 리뷰]“‘탄소 중립’ 선언이 나오면서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ESG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비즈니스와 재무제표에 ESG가 투영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죠. 그래서 기업의 C레벨에서도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ESG가 자본 시장의 논리에 의해 기존과 완전히 다른 ‘결’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의 ESG는 ‘착한 투자’로 여겨져 온 게 사실이지만 ‘기후 리스크’와 함께 ‘ESG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협정 이후 주식·채권·대체 투자 모두에서 ESG를 반영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가 됐다. ‘ESG 1.0’이 비재무적 측면을 고려했다면 ‘ESG 2.0’에선 ‘기후 변화 이슈는 재무 이슈’로 모아진다.
- 3월 주주 총회 시즌의 최대 화두는 ESG였습니다. 기업들에 ESG가 중요해진 배경은 무엇입니까.
“국가 차원에서 탄소 중립을 선언했고 한국도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탄소 중립을 선언한 이상 에너지 구조는 바뀔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대규모 발전소에서 분산 에너지 시스템으로 가고 전력원도 기존 석탄과 석유 등 탄소계 원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비율이 높아지겠죠.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업종 전환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반 제조 기업은 ‘기후 변화 2도 시나리오’ 달성을 위해 필요한 규제 준수 비용이 이슈입니다. 업종에 따라 많게는 손익의 30~40%를 탄소 비용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죠. 그러다 보니 과거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ESG를 바라봤다면 지금은 재무제표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 업종에 따라 ESG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최근 탈석탄 기조가 강해지고 있어요. 그러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석탄 발전소를 지어 온 발전 회사들이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죠. 또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은 에너지 비용에 많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주요 업종의 기업들은 나름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어요. 탄소 중립의 과제에는 ‘순환 경제’ 이슈가 있습니다. 자원을 최대한 계속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죠. 기업으로선 최대한 빠르게 생산과 판매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존의 기업 경영 마인드와 다른 거죠. 재사용 가능하게 업사이클링해 서비스를 창출하는 쪽으로 기업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과거와는 경영 전략이 많이 달라져야 할 겁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가격이 생산 가격의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시나리오를 세우는 단계입니다.”
- 손익의 30-40%라는 것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제품을 생산할 때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품목이 있습니다. 탄소 집약도라고 하는데, 많게는 몇 조 단위로 탄소 비용이 나옵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단순 계산했을 때입니다. 현재 배출권의 평균 거래 가격은 한국에선 톤당 약 3만~4만원대, 유럽에선 톤당 7만~8만원대에 형성돼 있어요. 예를 들어 A 기업이 현재 1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가정해 보죠. 2050년 탄소 중립까지 업을 유지할 수도 있고 50%만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시나리오 중 현재의 업을 지속한다는 가정에서 남은 30년간 100만 톤을 0톤으로 줄이기 위해 기업이 지불해야 할 가치는 배출량에 거래 가격을 곱하는 것이 가장 단순한 계산입니다. 만약 철강업이라면 철강 생산에 들어가는 전기 에너지나 여러 원료 가격이 있을 겁니다. 탄소세도 점차 올라갈 거예요. 그러면 혁신적인 저탄소 생산 기술이나 글로벌 밸류 체인을 고려한 과감한 전환을 고민해야 합니다.”
- 그래서 기후 변화가 재무 리스크라는 설명이군요.
“특히 올해 변화를 위한 각종 계획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최근 기업들에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슈는 ‘탄소국경조정세’입니다. 유럽과 미국이 영내로 들어오는 품목에 대해 탄소국경세를 매긴다고 했죠. 유럽은 오래전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업이 배출권을 사 왔고 그게 제품 가격에 반영돼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세금을 많이 내 왔다는 겁니다. 세금 없이 제품을 만든 기업들은 가격적 우위를 가지고 있고 이는 불공정하다는 게 탄소국경세의 개념입니다. 여기에도 유럽에서 책정하는 기준점, 벤치마크 계수가 품목별로 있어요. 유럽연합(EU)이 6월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죠. 그에 따라 2021년은 한국 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무역 관세를 내야 할지 타진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도 RE100에 가입하는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석탄 에너지원의 비율과 이산화탄소(CO₂) 집약도가 높습니다. RE100은 생산 단계에서 재생에너지를 100%까지 끌어올리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선 RE100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재생에너지 산업 구조가 매우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RE100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아닌 중국과 같은 해외 사업장으로 나가는 겁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산업 비율이 30~40%에 이릅니다. 한국은 5% 미만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RE100을 이행하도록 빌미를 제공해 주는 안타까운 일들이 작년과 올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물론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에서 시급히 RE100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열어 놓긴 했습니다. 기업들도 따져보겠죠. 국내외 사업장과 수출 품목, 배출량과 탄소세 등을 고려해 유불리를 계산할 겁니다.”
- ESG 전략을 어떻게 세우는 게 좋을까요.
“무엇보다 현재 기업이 갖고 있는 ‘히든 리스크’를 찾아야 합니다. 그걸 찾아주는 게 전문가들의 역할이죠. 평소 ESG를 세 가지 관점으로 구분해 이야기합니다. ESG를 신규 사업으로 볼 것인지, 기존 업의 경쟁력 강화로 볼 것인지, 규제로 볼 것인지입니다. 첫째, ESG를 사업 기회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에너지 산업이 바뀌면 그 과정에서 물류와 정보기술(IT)도 달라집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어떤 혁신 비즈니스를 찾을 것인지 기업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둘째, ESG 요소를 고려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재생 원료로 플라스틱 병을 만들면 내수에만 의존하던 기업이 유럽에 수출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ESG를 규제로 보는 겁니다. 만약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거나 금융 회사와 거래하고 싶다면 지켜야 할 ESG 요소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거나 제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전략을 세울 것을 조언합니다.”
- ESG가 단기 유행이 아닌 기업 성장의 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강국들이 주도하는 변화라는 점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평소 중소기업 사장을 자주 만나는데 그들 역시 ESG를 고민하고 있더군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까지 ESG가 화두입니다. 협력사들에도 지속 가능 경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SG를 잘한다는 것은 투명해진다는 겁니다. 또 기업 경영 관점으로는 내재화하는 겁니다. ESG 2.0 시대는 ‘지표화’, ‘계량화’가 중요합니다. 물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가야 할 방향이라고 봅니다. 제2의 지구가 생기지 않는 한, 우리가 하나의 지구에서 살고 있는 한 이 흐름은 계속될 겁니다.”
- ESG 경영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할까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기업은 성장을 꿈꿉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으니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개념이 ESG입니다. 그래서 ESG 경영에서는 임직원·투자자·이해관계인이 모두 고려되죠. 과거에는 홀로 열심히 뛰어 ‘나만 성장’하는 것이 통했습니다. 지금은 ‘같이 성장’에 더 많은 가치가 부여됩니다. 투자자·소비자·정부 등이 모두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결국 조직 문화로 내재화되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고 봅니다. 조직 문화로 내재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기업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적합한 목표가 들어가는 것이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게 ESG를 위한 성공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큰 그림에서는 ESG 생태계를 강조하고 싶어요. 기업들의 기획안을 실제 실행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